4화
‹ ›다음 날부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출근하자마자 몇몇 낭관들이 나를 힐끔거렸다.
평소엔 존재감 없는 신참이었는데, 갑자기 시선을 받는 게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았다.
복도를 걷는데 누가 등 뒤에서 소곤거리는 게 들렸다.
"저 사람 맞지?"
"어제 그 청원 건으로 원장님 얼굴 시뻘개졌다며."
들으라고 하는 소린지, 안 들리게 하려던 건데 실패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기분이 미묘한 건 똑같았다.
"자네가 그 청원 회의에서 원장을 몰아붙였다는 그 낭관인가?" 어느 상관이 지나가며 물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나는 늘 하던 대답을 그대로 했다.
운이 좋았다는 말이 이렇게 자주 쓰일 일인가 싶었다.
하루에 몇 번씩 같은 대답을 반복하다 보니, 나중엔 내가 진짜로 운이 좋아서 태어난 사람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 정도면 그냥 명패에 새기고 다녀야 하나. 운이 좋았습니다.'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누군가는 내가 좌승지의 숨겨진 친척이라 했고, 누군가는 내가 원래 고고학연구원 쪽에서 정보를 빼돌린 첩자라고 했다.
둘 다 말도 안 되는 얘기였는데, 사람들은 그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진짜처럼 주고받았다.
심지어 어떤 버전에서는 내가 원장의 처가 쪽 서얼이라는 설까지 붙어 있었다.
그건 대체 누가 지어낸 건지 궁금할 정도였다.
소문이란 게 원래 사람 손을 몇 번 거치면 아예 다른 생물로 변하는 모양이었다.
[알림: 대상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급상승]
이런 것도 시스템에 표시되는 건가.
실없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웃을 상황은 아니었다.
곧이어 알림 하나가 더 떴다.
[알림: 정체 노출 위험도 소폭 상승]
'노출 위험도까지?'
조용히 4년을 버텨온 게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낭관이라는 자리가, 눈에 띄지 않아야 오래 살아남는 자리라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청원 회의 한 번으로, 4년 치 익명성이 통장 잔고처럼 순식간에 빠져나가고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는 척했지만, 실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재판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인장을 찍었다가 다시 지웠다가.
평소라면 오전 안에 끝낼 일을, 점심시간이 다 될 때까지 붙잡고 있었다.
*
"괜찮아?" 점심시간, 박정민 선배가 국밥을 내 앞에 놓으며 물었다.
"익숙하지 않아서요."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그럼 이번엔 익숙해질 겸 하나 물어봐도 돼?" 선배가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뭡니까?" 나는 숟가락을 들며 물었다.
"진짜 어젯밤에 서류만 보고 그걸 다 알아낸 거야?" 선배가 눈을 가늘게 떴다.
순간 숟가락이 멈췄다.
국밥 위에 뜬 기름이 살짝 흔들리는 게 보였다.
그것만 한참 쳐다봤다.
'말해도 될까.'
악몽 얘기를 누군가에게 해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 몇 번 시도했다가 이상한 눈으로 보는 반응을 겪은 뒤로는 그만뒀다.
그 후로는 그냥 혼자 노트에 적고, 혼자 삭이고, 혼자 정리하는 식으로 살아왔다.
그게 훨씬 편했다.
아무도 나를 이상하게 안 보니까.
하지만 박정민 선배는 좀 다른 사람 같았다.
적어도 이상한 눈으로 보진 않을 것 같았다.
근거는 없었다.
그냥 이 사람이 3년 내내 나한테 국밥을 사줬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그 하나가 생각보다 크게 작용했다.
"...가끔 이상한 꿈을 꿉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이상한 꿈?" 선배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 죽는 꿈인데, 매번 같은 사람한테 배신당해서 죽습니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 사람이 지닌 물건 몇 가지가, 그 청원서 인장 문양과 겹쳐 보였습니다."
말하고 나니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이런 걸 근거라고 말할 수 있나.
법정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 아마 바로 정신감정 넘어가는 수준이었다.
박정민 선배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숟가락을 국밥에 담근 채로, 딱 그 자세로 멈춰 있었다.
'또 이상한 애 취급하겠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거 힘들었겠다." 선배가 낮게 말했다.
예상 밖의 반응이었다.
"안 이상합니까?" 나는 되물었다.
"이상하긴 한데, 네가 지어낼 애는 아니잖아." 선배가 씩 웃었다.
"게다가 결과적으로 맞았잖아, 그 문서 이상한 거."
그 말에 뭔가 목 안쪽이 뜨끈해졌다.
누군가 내 말을 믿어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니, 오랜만이 아니라 아예 처음이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근데 몇 년째 그 꿈이야?" 선배가 물었다.
"...정확히는 기억 안 납니다. 오래됐습니다." 나는 대충 넘겼다.
"매번 같은 놈한테 죽어?" 선배가 다시 물었다.
"매번 그런 건 아닌데, 요즘은 자주 그렇습니다." 나는 말끝을 흐렸다.
사실 선배한테도 다 말할 수는 없었다.
꿈속에서 몇 번이나 다르게 죽었는지, 죽는 방식이 얼마나 다양했는지까지 말하면, 아무리 이 사람이라도 표정이 변할 게 뻔했다.
"그런데 선배는 요즘 괜찮으십니까?" 나는 화제를 돌렸다.
"왜, 얼굴이 안 좋아 보여?" 선배가 되물었다.
"신혼인데 매일 늦게 퇴근하시니까요." 나는 지적했다.
선배의 얼굴이 살짝 흐려졌다.
"...아내가 요즘 좀 서운해 하긴 해." 그가 국밥을 뒤적이며 말했다.
"이 청원 사건 때문에 벌써 몇 주째 야근이잖아. 신혼여행도 미뤘는데."
"어디로 가시려고 했었는데요?" 나는 물었다.
"별거 아니야. 그냥 온천 좀 다녀오려고 했어." 선배가 손을 저었다.
"근데 그것도 못 가고 있어. 이번 주 안에 청원서 재검토 끝내야 하거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제 회의에서 시간을 끌게 만든 게 나였으니까.
회의가 예정보다 두 시간이나 늘어졌던 건, 다 내가 원장한테 질문을 던진 탓이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나는 말했다.
"됐어, 네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선배가 손을 저었다.
"이건 그냥 우리 부서 인력 문제고, 네가 미안해할 일도 아니고."
"그런데 방금 말한 그 꿈 얘기, 다음에 또 그런 게 있으면 나한테 먼저 말해줘." 그가 진지하게 덧붙였다.
"믿지 못할 이유 없으니까."
믿지 못할 이유 없다니.
이 사람은 참 쉽게도 그런 말을 한다.
세상에 그렇게 쉬운 말이 어디 있다고.
국밥을 다 먹고 나서도,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믿지 못할 이유 없다.
누가 나한테 그런 말을 해준 게 언제였더라.
기억이 잘 안 났다.
*
오후 업무는 평소보다 힘들었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계속 신경 쓰였고, 결재판을 넘길 때마다 누군가 곁눈질로 보는 게 느껴졌다.
원장실 쪽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어제 그렇게 몰아붙였는데도 조용한 게, 오히려 더 불안했다.
차라리 크게 화를 내거나 불러다가 뭐라고 하면 마음이 편할 텐데.
조용한 건 보통 더 큰 게 준비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경험상 그랬다.
퇴근 무렵, 좌승지 쪽에서 짧은 메모 하나가 내려왔다.
"청원서 관련 사안, 재조사 진행 예정. 담당자 협조 요망."
담당자가 나라는 걸 굳이 언급하진 않았지만, 그게 나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메모를 접어서 서랍에 넣으며 생각했다.
'재조사라.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퇴근길, 박정민 선배는 나보다 먼저 자리를 떴다.
드물게 일찍 가는 날이었다.
그 뒷모습을 보며 잠깐 안심했다.
적어도 오늘은 아내분한테 덜 미안한 날이 되겠구나 싶었다.
*
그날 밤, 나는 또 악몽을 꿨다.
이번엔 조금 달랐다.
배경은 늘 같은 그 방이었다.
낮은 등불 하나, 좁은 방, 그리고 익숙한 그 목소리.
칼이 옆구리를 파고드는 감각은 매번 조금씩 달랐는데, 이번엔 유난히 차가웠다.
얼음을 몸속에 밀어넣는 느낌이랄까.
배신자가 걸친 옷이 관복이었다.
어느 부서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색깔이 진한 남색이었다.
소맷단에 은실로 짠 무늬가 하나 있었는데, 그게 낯설지 않았다.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신규 단서 확보 — 정신력 -15]
'정신력은 또 왜 깎아. 이게 무슨 정기구독이야.'
꿈에서 깬 직후엔 늘 그렇듯 숨이 가빴다.
심장이 아직도 그 방 안에 있는 것처럼 뛰었다.
땀에 젖은 이불을 발로 걷어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깨어나서 노트에 이 사실을 적어 넣었다.
남색 관복.
소맷단에 은실 무늬.
그 두 줄을 적어놓고, 한참을 그 글씨만 쳐다봤다.
의정부 안에도 남색 관복을 입는 부서가 몇 있었다.
사헌부, 사간원, 그리고 몇몇 승정원 산하 부서까지 합치면 후보가 적지 않았다.
좁혀야 했다.
좁히지 않으면 이건 단서가 아니라 그냥 색깔 취향 조사표가 될 판이었다.
'설마 안에서 나오는 사람인가.'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청원서 문제만이 아니라, 훨씬 더 가까운 곳에서 뭔가가 얽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노트를 덮고 다시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천장을 보며 남색 관복을 입은 얼굴 없는 사람을 하나씩 떠올렸다.
같은 건물 안, 같은 복도, 어쩌면 같은 층.
매일 스쳐 지나가면서도 몰랐을 그 얼굴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웃으며 걸어 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문득 낮에 박정민 선배가 입고 있던 관복 색깔이 뭐였는지 떠올려보려고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스스로한테 조금 놀랐다.
'설마.'
아니, 그건 아닐 거다.
아닐 거라고 몇 번이나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되뇌었다.
하지만 다짐이 길어질수록, 그게 오히려 더 불안하다는 증거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