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이서윤이 학교에 다시 나온 건 이틀 뒤였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는 여느 때처럼 무표정했다. 걸음걸이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자리로 걸어가 앉는 모습, 창밖을 잠깐 바라보다 시선을 거두는 모습까지. 아무도 그녀가 이틀 전까지 침대에서 숟가락 하나 들 힘도 없었다는 걸 몰랐다.
나만 알고 있었다.
나만 알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가슴 한쪽을 눌렀다. 수업 시간에 그녀의 뒤통수를 몇 번이나 훔쳐봤는지 모른다. 선생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열은 다 내렸을까. 밥은 잘 챙겨 먹을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날부터 이상한 루틴이 생겼다.
학교가 끝나면 나는 편의점에 들러 반찬거리를 사고, 그녀의 아파트로 향했다. 처음 며칠은 감기가 다 나을 때까지 봐주는 게 목적이었는데, 다 나은 뒤에도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 편의점 봉투를 들고 익숙한 골목을 걸을 때마다, 이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잠깐씩 스쳤다. 그러다 곧 지웠다. 그냥 가는 거니까. 별 이유 없이 가는 거니까.
"오늘도 왔어." 그녀가 문을 열며 말했다. 말투에는 여전히 뾰족함이 남아 있었지만, 예전 같은 거리감은 아니었다. 문틈으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에 열기 대신 옅은 피곤함만 남아 있었다.
"밥은 먹었어요?" 내가 물었다.
"안 먹었어." 그녀가 소파에 털썩 앉으며 답했다. "기다렸어."
그 말이 아무렇지 않게 나왔는데, 나는 순간 얼굴이 뜨거워졌다. 봉투 속 반찬거리를 괜히 다시 정리하는 척했다. 심장이 괜히 빨리 뛰었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볶음밥을 만들었다. 요리는 여전히 서툴렀다. 계란을 태우고, 간을 잘못 맞추고, 프라이팬 손잡이를 잡다가 데인 적도 있었다.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계란을 풀어 넣는데 기름이 너무 뜨거웠는지 사방으로 튀었다. "아." 나는 짧게 소리 내며 손을 뒤로 뺐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지켜보다가 한마디씩 던졌다.
"불 좀 줄여."
"소금 그만 넣어."
"그거 탄 거 아니야?"
나는 그 말들에 하나하나 반응하며 불을 줄이고, 소금통을 내려놓고, 프라이팬을 흔들었다. 그녀는 식탁 의자에 걸터앉아 턱을 괴고 나를 구경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이상하게 편안했다. 잔소리인데도, 그 목소리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한 부엌에 그 목소리가 없으면 더 어색할 것 같았다.
볶음밥이 완성되면 우리는 작은 식탁에 마주 앉아 먹었다. 그녀의 그릇에는 늘 밥알이 조금 더 많이 담겼다. 일부러 그렇게 담았다는 걸 그녀는 모르는 눈치였다. 그녀는 맛없다고 투덜대면서도 그릇을 늘 깨끗이 비웠다. 숟가락이 그릇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날 때까지.
"넌 요리 진짜 못한다." 그녀가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도 다 먹었잖아요." 나는 웃으며 답했다.
"배고파서 먹은 거야." 그녀가 눈을 흘겼다.
하지만 입가에는 미세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그 웃음을, 나는 그날 처음 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는데도, 나는 그 장면을 통째로 눈에 새겨 넣었다. 나중에 몇 번이고 다시 떠올릴 것 같았다.
식사가 끝나면 우리는 각자 숙제를 하거나, 그녀가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봤다. 그녀는 텔레비전 앞에서만큼은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소파에 다리를 접고 앉아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다가, 화면 속 누군가가 넘어지거나 엉뚱한 소리를 하면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웃었다. 학교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 웃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숙제를 하다가도 시선을 슬쩍 그녀 쪽으로 옮겼다. 펜을 쥔 손이 멈췄다.
"뭘 봐." 그녀가 눈치채고 물었다.
"아니, 그냥요." 나는 서둘러 다시 노트를 내려다봤다.
"너 학교에서는 진짜 얼음꽃 같은데." 어느 날 내가 말했다.
"그럼 뭐, 여기서는 아니야?" 그녀가 되물었다.
"여기서는... 그냥 이서윤 같아요."
그녀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텔레비전 화면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밝고 어두운 색이 번갈아 스치면서, 그녀의 표정을 잠깐씩 가렸다가 드러냈다.
"그게 좋은 거야?" 그녀가 작게 물었다.
"네, 좋아요."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귀 끝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나는 그 귀 끝을 못 본 척하려고 애썼다. 애쓸수록 자꾸 눈이 갔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매일이 비슷하게 흘러갔다. 편의점, 부엌, 식탁, 소파. 반복되는데도 지겹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복이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어 갔다. 학교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면, 나는 다른 애들보다 먼저 가방을 챙겼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서로 모른 척했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눈만 살짝 마주치고 지나갔다. 그런데 그 눈빛 안에는 예전에 없던 온도가 담겨 있었다. 스치는 순간이 짧아도, 그 짧은 순간에 뭔가가 오갔다.
반 아이들도 조금씩 이상한 걸 느끼는 눈치였다.
"강하준 요즘 되게 밝아졌다." 옆자리 애가 지나가듯 말했다.
"그런가?" 나는 얼버무렸다.
"그런가, 는 뭐야. 얼굴에 다 티 나." 그 애가 웃으며 덧붙였다. "이서윤도 그렇고. 둘이 뭐 있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손끝이 순간 차가워졌다.
"아니야, 그런 거 없어." 나는 서둘러 손을 저었다.
"에이, 진짜?" 그 애는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나를 훑었지만, 이내 다른 얘기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오는 순간, 나는 스스로도 확신이 안 섰다. 진짜 그런 거 없는 게 맞나. 아니면 이미 뭔가 시작된 건가. 그 질문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도, 급식을 먹으면서도, 자꾸만 되풀이됐다.
그날 오후, 나는 여느 때처럼 이서윤의 집으로 향했다. 편의점 봉투를 손에 들고 걸으면서도 마음이 평소 같지 않았다. 아까 그 애의 말이 계속 귓가에서 맴돌았다. 둘이 뭐 있냐는 그 질문이, 대답하지 못한 내 침묵이.
문을 열어준 그녀는 조금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뾰족한 말투도, 익숙한 무심함도 아니었다. 뭔가를 삼키다 만 사람 같은 얼굴이었다.
"왜 그래요?" 내가 물었다.
"아니, 그냥." 그녀가 시선을 피했다. 손끝으로 문틀을 괜히 매만졌다. "오늘 애들이 좀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
"무슨 소리요?"
그녀는 잠시 말을 고르는 듯했다. 숨을 한 번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
"너랑 나, 뭐 있는 거 아니냐고."
그 말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봉투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봉투 속 반찬 통이 서로 부딪히며 작게 소리를 냈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현관 바닥과 내 얼굴 사이를 몇 번이나 오갔다.
우리는 한동안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좁은 현관에 서 있었다. 형광등 불빛이 조용히 깜빡였다. 그 정적 속에서, 나는 문득 이 말을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술이 떨렸다.
그리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녀의 눈을 마주 보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