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역전세계 호스트남

2화

도현은 사흘째 같은 천장을 보고 있었다. 천장에는 물이 샜던 흔적인지 누런 얼룩이 넓게 퍼져 있었고, 그 얼룩의 모양이 마치 사람의 옆얼굴 같다는 생각을 도현은 벌써 수십 번째 하고 있었다.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몸을 일으키면 머리가 핑 돌았고, 눈을 감으면 자꾸 사고가 나던 순간의 기억이 되풀이해서 떠올랐다. 죽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서야 몸에 온기가 조금 돌아왔다. 뜨거운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 낯설게 반가웠다. 창밖의 여자들은 오늘도 활기차게 걸었고, 그 뒤를 따르는 남자는 고개를 반쯤 숙인 채 보폭을 맞추고 있었다. 걸음이 조금이라도 빨라지면 여자가 뒤돌아보며 눈치를 줬고, 남자는 곧바로 속도를 늦췄다. '저게 정상인가.' 이상하다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하루가 갈수록 짙어졌다. 소율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지갑도 없고 휴대폰도 없는 낯선 남자를 사흘 동안 재워주고 먹여주면서도, 그녀는 그저 이마에 손을 얹어보고 물수건을 갈아주는 일을 반복했을 뿐이었다. 열이 있는지 확인할 때의 손길은 건조했고, 딱 필요한 만큼만 머무르다 떨어졌다. '어떻게 저렇게 태연할 수가 있지.' 도현은 그 무심함이 오히려 고맙고, 동시에 미안했다. "기억이 안 난다고 했죠." 소율이 쟁반을 치우며 물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확인이었다. 목소리에 별다른 감정의 굴곡이 없었다. "네. 병원 복도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다음부터는……" 도현은 말을 흐렸다. 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낯선 골목이었다고, 그것도 이상한 세계의 낯선 골목이었다고 말한들 누가 믿어줄까. 소율은 더 캐묻지 않고 쟁반을 든 채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 그날 밤, 도현은 눈을 감고서야 비로소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볼 수 있었다. 원래 세계에서 그는 평범한 대학 1학년이었다. 시험을 보러 가던 길에 신호를 무시한 차에 치였고, 정신을 차렸을 땐 병원 복도의 하얀 형광등 아래 누워 있었다. 의사가 뭔가 말을 했고, 가족들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그 이후는 텅 비어 있었다. 마치 필름이 통째로 잘려나간 것처럼. 그리고 다음 순간 그가 눈을 뜬 곳은 낯선 골목이었다.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손끝 하나 움직이기 힘들었다. 지나가던 누군가—소율—가 그를 발견해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나중에 들으니 그녀는 퇴근길에 골목 안쪽에 쓰러진 그를 보고 잠깐 고민했다고 했다. 신고를 할까, 그냥 지나칠까. 결국은 부축해서 집으로 데려왔다는 게 소율의 설명이었는데,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그녀 자신도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죽은 건가.' 도현은 담담하게 그 가능성을 받아들였다. 오히려 이상하게 침착했다. 죽음보다 더 이상한 건 지금 이 세계 자체였으니까. 천장 얼룩을 보며 사후세계라는 게 이렇게 남의 집 손님방처럼 생겼을 리는 없다고, 도현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 다음 날 아침, 소율이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피의자 여성은 인근 거주 30대로, 피해 남성을 뒤따라가 폭행 후 강제로……" 앵커의 목소리는 지극히 사무적이었다. 도현은 죽 그릇을 든 채로 그 자리에서 굳었다. 숟가락에서 국물이 뚝뚝 떨어졌지만 알아채지 못했다. "저게 무슨 소리예요?"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떨렸다. "뭐가요?" 소율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사건 보도일 뿐이었다. "피의자가, 여자가……" 도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럼요. 원래 그런 사건 대부분이 여자 쪽이 저지르잖아요." 소율은 당연한 소리를 왜 묻느냐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리모컨을 들어 채널을 넘겼다. 다음 채널에서도 비슷한 소식이 흘러나왔다. 흉기를 소지한 여성이 남성을 위협했다는, 그런데 정작 처벌 수위가 낮다는 시민단체의 항의가 이어졌다. 도현은 그릇을 내려놓고 방을 두 바퀴쯤 돌았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몸을 떨었고, 다시 창밖을 내다봤다. 여자들이 씩씩하게 걷고, 남자들이 눈치를 보며 길을 비켜주던 그 풍경이 새삼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골목 어귀에서 한 남자가 여자 무리에게 인사를 하며 고개를 숙이는 것도, 편의점 앞에서 여자가 남자의 어깨를 툭 치며 웃는 것도, 전부 예전 같으면 아무 의미 없이 지나쳤을 장면들이었다. 이제는 하나하나가 낯설고 뒤틀린 신호처럼 읽혔다. '이 세계는 완전히 뒤집혀 있다.' 성별에 따른 힘의 방향이, 그가 알던 세계와는 정반대였다. "괜찮아요?" 소율이 물었다. 걱정스러운 기색이라기보다는 상태를 점검하는 말투였다. "아니요. 안 괜찮아요." 도현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제가 알던 세상이랑… 뭔가 완전히 다른 것 같아서요." 소율은 그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채널을 다시 넘기며 짧게 답했다. "세상은 다 그런 거예요."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도현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엔 며칠이 더 걸렸다. 소율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죽을 끓였고, 회사에는 아픈 조카를 돌본다는 핑계로 며칠 더 휴가를 냈다. 그녀의 손길엔 낭비가 없었다. 정확하고, 조용하고, 필요한 만큼만 베풀었다. 도현이 몇 번 고맙다는 말을 건넸을 때도 소율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만 살짝 들어 보일 뿐이었다. '이 사람에게 언제까지 신세를 질 수 있을까.' 도현은 이불을 걷고 처음으로 스스로 몸을 일으켜 앉았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버틸 만했다. 벽을 짚고 몇 걸음 걸어보니 어지럼증은 있었지만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그 사실에 묘하게 안심했다. "몸이 좀 괜찮아졌나 봐요." 소율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놀라는 기색도 없이, 담담하게. 손에는 새로 끓인 죽이 담긴 쟁반을 들고 있었다. "네.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할 것 같아요." 도현이 대답했다. "계속 신세만 지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소율은 잠시 그를 바라봤다. 피곤이 배어난 눈매가 살짝 좁아졌다. 그 시선이 도현을 위아래로 훑는 게, 마치 이 남자가 혼자서 뭘 할 수 있을지 가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뭘 하려고요." 질문이라기보단 확인이었다.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니까." 도현은 솔직하게 답했다. "하지만 이름도, 신원도 없는 채로 계속 살 수는 없잖아요. 대학이든 뭐든, 발붙일 곳이 필요해요." 소율이 짧게 웃었다.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그 웃음에는 옅은 비웃음과 옅은 호기심이 반씩 섞여 있었다. "대학이라. 좋네요." 그녀가 말했다. "서류는 내가 만들어줄 수 있어요. 아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렇게 쉽게요?" 도현이 되물었다. 이름도 없는 사람에게 서류를 만들어준다는 게 얼마나 큰일인지, 이 세계에서는 얼마나 다른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그는 알 도리가 없었다. "쉽진 않죠. 근데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소율은 그 이상은 설명하지 않았다. 도현은 그 말이 얼마나 큰 도움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다만 이 여자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만은 분명했다. '스스로 뿌리내려야 한다.' 그것이 목표였다. 아직 이 세계의 규칙조차 다 모르면서도, 그는 그렇게 결심했다. 성별의 방향이 뒤집힌 이 낯선 세계에서, 이름도 신원도 없는 채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아무런 답도 없었지만, 일단은 발을 딛고 서야 했다. 그리고 이 결심이 앞으로 이어질 모든 고생의 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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