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짝사랑 왕따, 여왕의 공범

2화

그날부터 정확히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소미가 급식실에서 몇 번 더 옆자리에 앉았고,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손을 흔들어줬으며, 어느 날은 매점에서 우유 하나를 사서 내 자리에 슬쩍 놓고 갔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처음엔 그게 다른 애 자리에 놓으려다 잘못 놓은 건 아닐까 싶어서, 나는 우유팩을 손에 쥐고도 한참을 뜯지 못한 채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겉면에 서린 물방울이 손바닥으로 스며들어 축축해질 때까지도. 그렇게 두 달이 흘렀다. 두 달이라니. 시간이 그렇게 빠르게 지나갔다는 걸, 나는 그 애가 건네는 사소한 호의들을 하나씩 세면서야 깨달았다. 손가락을 접어가며 세어보니 우유가 세 번, 급식실 옆자리가 여섯 번, 복도에서의 손 흔들기는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숫자들이 쌓여가는 걸 지켜보는 게, 요즘 내 유일한 취미가 되어 있었다. 소미는 나에게 먼저 문자를 보내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오늘 급식 뭐야?" 같은 별것도 아닌 질문들이었지만, 나는 그 문자 하나를 받으면 하루 종일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답장을 쓰다가 지우고, 다시 쓰다가 지우고. "돈까스"라고만 보내면 너무 무뚝뚝한 것 같고, "돈까스야! 너도 좋아해?"라고 보내면 너무 들이대는 것 같아서, 나는 몇 번이나 문장을 고쳐 쓰다가 결국 "돈까스"라고만 짧게 보내고 나서 후회했다. 답장이 오기까지의 몇 분이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핸드폰 화면이 밝아질 때마다 심장이 갓 잡은 활어처럼 펄떡였다. 그런 시간이 쌓일수록 나는 점점 소미라는 이름에 기대는 법을 배워갔다. 하지만 이상한 감각도 함께 쌓였다. 소미가 나를 부를 때, 아주 가끔 그 눈빛이 마치 나를 관찰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스치고 지나갔다. "태오야, 넌 취미가 뭐야?" 물어보고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시선이 저 멀리 창밖으로 빠져나가곤 했다. "어, 그냥…… 책 읽는 거?" 대답을 하고 나서 소미의 얼굴을 살피면, 소미는 이미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처럼 눈동자가 흐릿했다. 마치 내 대답 자체는 중요하지 않고, 내가 대답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하려는 것처럼. 착각이겠지. 나는 애써 그렇게 생각했다. 관심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어서, 그 안에 있는 미세한 균열까지 알아차릴 여유가 없었다. 그 무렵 나는 자주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삼 년 전 겨울, 퇴근길 빗길에서 트럭에 부딪혀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다. 그날 나는 학교 급식실에서 국을 뜨고 있었는데, 담임선생님이 조용히 나를 불러내던 순간의 서늘한 공기가 지금도 선명했다. 국그릇을 든 손이 허공에서 그대로 멈췄던 것도, 식판 위로 국물이 조금씩 흘러넘치던 소리도, 지금 다시 들으면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웃는 법을 잃었고, 나도 웃는 법을 잃었다. 우리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서로에게 조용해졌다. 저녁을 먹을 때도 텔레비전 소리만 방 안을 채웠고, 어머니는 밥을 먹다가도 자주 젓가락을 내려놓고 창밖을 오래 바라봤다. 그 조용함이 습관이 되어, 나는 어느새 누구와도 눈을 오래 맞추지 못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상대의 눈이 아니라 어깨나 옷깃 어딘가를 보는 게 편했다. 그런 내게 소미의 존재는 마치 겨울 한복판에 켜진 작은 불빛 같았다.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손을 뻗으면 온기가 느껴지는 그런 불빛. 소미가 웃으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따라 올라갔고, 소미가 내 이름을 부르면 콧잔등이 시큰거렸다. 그 온기를 한번 맛본 뒤로는, 다시 예전의 조용함으로 돌아가는 게 견딜 수 없이 무서워졌다. 나는 그 불빛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 위화감이 스칠 때마다, 그건 착각일 거라고, 소미가 나를 놀릴 이유는 없다고 되뇌면서. 어느 날 방과 후, 나는 교실에 남아 사물함을 정리하고 있었다. 딸랑, 문에 달린 방울 소리가 나서 고개를 들었더니 복도 저편에 소미가 반 친구들과 함께 서 있는 게 보였다. 지나치듯 본 것뿐인데도, 발이 그 자리에 붙박인 듯 멈춰버렸다. 그 무리 중 한 명이 나를 힐끔 보며 뭔가 소미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는데,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지만 어깨가 들썩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소미는 그 말을 듣더니 순간 웃음을 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눈가가 접히고, 입술 끝이 씰룩이고, 그러다 뭔가를 삼키듯 목이 한 번 움직이는. 그 표정이 사라지고 나서 소미는 다시 나를 향해 평소처럼 다정하게 웃어 보였지만, 나는 그 웃음의 뒤편에서 뭔가가 서걱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태오야, 뭐 해?" 소미가 이쪽으로 걸어오며 물었다. 평소와 똑같은 목소리, 똑같은 걸음걸이였는데도 나는 사물함 문을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어, 그냥…… 정리." "같이 나갈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소미와 함께 교문을 나서는 동안, 조금 전 그 무리 속에서 흘러나온 웃음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뭐라고 했을까. 무슨 말을 했길래 소미가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물어볼 수도 없었다. 물어보면 내가 이상한 애처럼 보일까 봐, 아니 어쩌면 정말로 이상한 걸 눈치챈 애처럼 보일까 봐. 그날 밤 나는 이불 속에서 그 짧은 순간을 몇 번이나 되짚어봤다. 형광등을 끄고 어둠 속에 누워 있으면서도 눈은 말똥말똥했다. 착각일 거야. 나는 몸을 뒤척이며 그렇게 결론지었다. 벽을 보고 누웠다가, 다시 천장을 보고 누웠다가, 핸드폰 화면을 켜서 소미와의 대화창을 위아래로 스크롤해봤다. "오늘 급식 뭐야?" "돈까스" "나도 좋아해!" 아무렇지 않은 말들뿐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대화들. 그런데 왜 자꾸 그 웃음이 걸리는 걸까.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미세한 소름이 계속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마치 아주 작은 벌레 한 마리가 살갗 위를 스치고 지나간 것처럼, 지워지지 않는 이물감이었다. 손등을 몇 번이나 문질러도 사라지지 않는, 그런 종류의 감각. 그리고 그 이물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더 짙어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내 등 뒤에서 조용히 나를 지켜보다가, 내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에만 얼른 시선을 거두는 것 같은. 확인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그런 감각이 매일 밤 나를 잠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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