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냄새였다. 썩은 풀과 고인 물, 그리고 뭔가 비릿한 것이 뒤섞인 냄새가 코를 찔러왔는데, 나는 반사적으로 코를 틀어막으며 몸을 일으켰다. 숙취인가. 머릿속이 멍했다. 어제 회사 동기들이랑 소주 몇 병 나눠 마신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로는 필름이 완전히 끊겼다. 분명 삼겹살집에서 시작해서 노래방까지는 갔던 것 같은데, 노래방에서 누가 탬버린으로 내 머리를 쳤는지 아니면 내가 취해서 넘어졌는지도 가늠이 안 됐다. 흔한 클리셰라면 이럴 때 침대에서 눈을 떠야 하는 법인데, 눈앞에 펼쳐진 건 회색빛 하늘과 시커먼 물웅덩이, 그리고 발밑까지 뻗어 있는 뿌리들이 마치 뱀처럼 엉킨 늪지였다.
나는 손바닥으로 뺨을 두어 번 때려봤지만 통증만 선명하게 돌아올 뿐, 상황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한 번 더 세게 때려볼까 싶었지만, 이 이상 때리면 숙취가 아니라 자해로 넘어갈 것 같아서 그만뒀다. 주변을 둘러보니 발밑은 진창이었고, 무릎 높이까지 자란 갈대 같은 풀들이 바람도 없는데 스스슥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하늘은 흐린 회색이었는데, 해가 어디 있는지도 가늠이 안 될 정도로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이런 날씨는 서울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서울 자체가 이제는 먼 나라 얘기처럼 느껴졌다.
이거 설마 그 흔한 이세계 회귀물 클리셰인가. 나는 실없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28년 인생 동안 온갖 알바를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버텨왔던 나였다. 경비 서다가 밤새 순찰차 지나가는 소리에 놀라 자빠진 적도 있고, 시장에서 붕어빵 팔다가 손님한테 욕먹은 적도 있고, 폐지 줍다가 트럭에 치일 뻔한 적도 있었다. 편의점 야간 알바 하다가 술 취한 손님한테 멱살 잡힌 적도 있었고, 물류창고에서 박스 나르다가 허리를 삐끗해서 사흘을 골골댄 적도 있었다. 그런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이세계에 떨어졌다고 해서 패닉에 빠질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이거 뭔가 반전 인생 시작 아닌가 싶은 헛된 기대감마저 들었다면, 그건 순전히 내가 정신이 나가서였을 거다. 어쩌면 여기서는 스탯창이 뜨고 레벨업을 하면서 강해지는 그런 세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손바닥을 펼쳐놓고 괜히 "상태창" 같은 말을 중얼거려보기도 했다. 물론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기대감은 채 오 분도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났다. 늪지 저편에서 나무들이 우수수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낮고 굵은 울음소리가 대기를 갈랐다. 나는 그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기도 전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는데, 인간의 본능이란 참 신기하게도 위험을 언어로 설명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는 걸 그 순간 뼈저리게 실감했다. 심장이 벌써부터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손끝이 저릴 정도로 긴장이 밀려왔다. 나무 사이로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온 건 그 직후였다. 표범을 닮은 몸체에 몸통만 한 이빨을 가진 짐승이 나를 향해 곧장 달려들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표범이 아니라는 걸 곧바로 알아챘다. 표범이라면 저렇게 눈알이 세 개일 리 없었다. 게다가 그 세 번째 눈은 이마 정중앙에 박혀서 마치 나를 조준하듯 정확히 나를 향해 있었다.
미친, 저건 뭐야. 속으로 그렇게 외치면서도 다리는 벌써 반대쪽으로 뛰고 있었다. 발이 늪 속에 푹푹 빠지는 감각이 온몸을 짓눌렀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신발이 진흙에 잡혀 벗겨질 것 같았는데, 신발 벗겨진 채로 도망치는 것보단 신발 신고 넘어지는 게 나을지 판단이 안 될 지경이었다. 등 뒤에서 짐승의 숨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걸 느끼며 나는 죽을힘을 다해 팔다리를 휘저었는데,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오르는 느낌이 들 정도로 뛰었다. 이렇게 열심히 뛴 게 언제였더라. 군대에서 삼천 미터 뛸 때도 이렇게는 안 뛰었던 것 같은데, 목숨이 걸리니까 몸이 알아서 최대 출력을 내는 모양이었다. 폐가 찢어질 듯 아팠고 목구멍에서는 쇠맛이 났다. 표범괴물의 발톱이 등에 닿을락 말락 하는 순간, 나는 옆으로 몸을 굴려 나무 뒤로 몸을 숨겼고, 짐승의 발톱이 나무껍질을 긁어내는 소리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나무껍질이 종이처럼 뜯겨나가는 걸 보면서, 저게 내 등이었으면 어땠을지 상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짐승은 잠깐 멈춰서 코를 킁킁거렸다. 세 번째 눈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나를 찾는 게 느껴졌는데, 나는 숨소리조차 죽이며 나무 그림자 속에 몸을 최대한 밀착시켰다. 이대로 죽으면 진짜 억울하겠다. 취업도 못 하고 서른 되기 전에 이런 데서 짐승 밥이 되는 건 너무 서글픈 결말이었다. 이력서 백 통 넣고 면접 세 번 본 게 내 인생 최대 업적이었는데, 그게 마지막 업적이 되는 건 너무 초라했다. 나는 나무 뒤에서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살폈고, 저 멀리 안개 속에서 뭔가 낡은 석조 구조물이 어렴풋이 보이는 걸 발견했다. 사람이 만든 건축물이라면 숨을 곳이 있을 거란 생각에, 나는 다리에 남은 힘을 전부 끌어모아 그쪽으로 달렸다.
짐승은 여전히 내 뒤를 쫓고 있었고, 나는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진흙탕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발목까지 잠기는 물웅덩이를 몇 개나 지나쳤는지 셀 수도 없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다리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짐승의 발소리가 진흙을 철벅거리며 따라붙는 소리와 겹쳐서, 나는 그게 짐승 발소리인지 내 심장 뛰는 소리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숨을 쉴 때마다 폐 속에서 뭔가 타는 듯한 느낌이 났고, 목구멍은 이미 사포처럼 거칠어져 있었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멈추는 순간 저 세 번째 눈알이 나를 정확히 조준할 게 분명했으니까.
석조 구조물에 가까워질수록 그 규모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무너진 기둥들이 마치 거인이 뽑아던진 나무처럼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고, 그 사이로 이끼가 두껍게 자라 있었다. 기둥 표면에는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흐릿한 안개 속에서도 그 문양이 은은한 푸른빛을 내고 있는 게 보였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문양의 선들이 미세하게 일렁이는 걸 보면서, 나는 이게 대체 뭘 만들어놓은 건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중앙에는 사람 키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돌 제단이 그 푸른빛을 더 진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대리석처럼 매끄러운 표면에 습기가 배어 있었고, 제단 주변으로는 마치 오랫동안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것처럼 이끼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나는 그게 뭔지 알 도리가 없었지만, 저것이 무엇이든 지금 당장 죽는 것보단 나을 거란 판단이 섰다. 애초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등 뒤에서 짐승의 숨소리가 다시 가까워지고 있었으니까. 표범괴물이 바로 등 뒤까지 따라붙은 순간, 나는 짐승의 이빨이 내 목덜미를 스치듯 지나가는 걸 느끼며 마지막 힘을 다해 몸을 던지듯 제단 위로 뛰어올랐다. 손바닥이 차가운 돌 표면에 닿는 순간, 짐승의 포효가 등 뒤에서 울려 퍼졌고,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이번엔 진짜 끝인가 싶은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손바닥에 닿은 돌의 온도가 순식간에 얼음처럼 차가워지더니, 그 냉기가 팔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세상이 새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마치 눈을 뜨고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본 것처럼, 시야 전체가 빛으로 가득 차올랐고, 나는 그 빛 속에서 내 몸이 붕 떠오르는 듯한 이질적인 감각을 느꼈다. 이거 죽는 건가. 아니면 또 다른 클리셰가 시작되는 건가. 짐승의 포효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걸 느끼며, 나는 그 하얀 빛 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