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네 약점, 나만 알아

3화

세트 사이 휴식 시간, 벤치로 물러난 서은의 얼굴은 관중석에서 볼 때보다 훨씬 창백했다. 이마에 흐른 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내려와 턱 끝에 매달려 있었는데, 그녀는 그것을 닦아낼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시선을 코트 바닥에 고정하고 있었다. 코치가 뭐라 말을 건넸지만 그녀는 고개만 끄덕일 뿐, 정작 무슨 말이 오갔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물병을 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도윤은 관중석에서 자리를 옮겼다. 벤치 근처, 팀 스태프들이 드나드는 통로 쪽이었는데, 그곳은 그가 데이터 분석 보조로 종종 드나들던 자리였기에 누구도 그의 움직임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걸음을 서두르지 않았다. 급하게 다가가는 순간 누군가의 시선을 끌 것이고, 시선을 끄는 순간 서은에게도 그 무게가 전해질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태블릿을 꺼내는 손이 화면의 밝기를 낮췄다. 그래프 위로 빛이 번지지 않도록. 그는 코치에게 다가가 화면을 내밀었다. "상대 세터, 3세트부터 서은 선수 왼쪽 라인으로 서브 몰아넣을 겁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패턴이 명확해요. 지난 세트 데이터 보면." 코치가 태블릿을 받아 화면을 훑었다. 서브 낙하 지점을 표시한 그래프가 왼쪽으로 뚜렷하게 몰려 있었다. 붉은 점들이 하나의 선을 이루듯 왼쪽 구역에 밀집해 있는 모양이, 우연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정직했다. "이거 확실해?" 코치가 물었다. "네. 서은 선수 리시브 자세가 왼쪽에서 무너지는 패턴을 상대가 이미 파악한 것 같습니다." 코치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서은을 불렀다. 그녀가 벤치 끝에서 다가왔을 때, 도윤은 일부러 시선을 태블릿 화면에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학교의 규칙,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는 그 암묵의 약속을 코트 위에서도 지키기 위해서였다. "눈 마주치면 다 들켜." 언젠가 서은이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뭘 들켜." 그때 도윤은 되물었었다. 서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윤은 지금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왼쪽으로 몰릴 거야." 코치가 서은에게 전했다. "미리 대비해." 서은의 시선이 잠깐 도윤 쪽으로 흘렀다. 아주 짧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순간이었지만 도윤은 그 시선의 무게를 정확히 느꼈다.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이 정보를 준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사람이 지금 자신을 어떤 얼굴로 보고 있는지. 도윤은 여전히 화면만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손끝이 태블릿 모서리를 짧게 두드리는 동작, 그것이 서은에게는 익숙한 신호였다. 걱정하지 마. 알고 있어. 라는 말 대신 건네는 유일한 언어였다. 서은이 다시 벤치로 돌아갈 때, 그녀의 걸음은 조금 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 보였다. *** 3세트가 시작됐다. 호루라기 소리가 체육관 천장을 때리고 흩어졌다. 예상대로 상대의 서브는 서은의 왼쪽 라인으로 집중됐다. 첫 서브가 날아드는 순간, 관중석 어딘가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서은은 미리 자세를 낮추고 왼발을 살짝 앞으로 내밀며 리시브 준비 위치를 조정했고, 공이 날아오는 순간 정확한 각도로 받아냈다. 팔뚝에 부딪히는 공의 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는데, 그 소리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의 리듬을 담고 있었다. 리시브가 안정적으로 세터에게 연결됐고, 세터의 토스가 올라갔고, 서은이 도약했다. 그녀의 몸이 허공에서 잠시 정지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스파이크가 상대 블로킹 사이를 정확히 뚫고 지나갔다.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졌다. 도윤은 통로 구석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특별한 변화가 없었지만, 태블릿을 쥔 손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가 있었다. 그 이후로 서은의 리듬이 조금씩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완벽하지는 않았다. 몇 번은 여전히 흔들렸고, 몇 번은 발끝이 코트 라인을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무너지지는 않았다. 실점과 득점이 교차하는 가운데 팀은 서서히 균형을 되찾았고, 결국 3세트를 가져가며 경기 전체를 승리로 마무리했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코트 전체가 함성으로 뒤덮였다. 경기가 끝난 뒤, 팀원들이 서로를 안으며 환호하는 사이 서은은 그 무리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그녀의 눈이 관중석과 벤치 통로를 번갈아 훑었지만, 도윤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체육관 조명이 하나둘 꺼지고, 관중들의 목소리가 멀어질 때까지도 그녀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그날 밤, 체육관 뒷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을 때 도윤은 이미 코트 중앙에서 공을 정리하고 있었다. 조명이 절반쯤 꺼진 체육관은 낮보다 훨씬 넓어 보였고, 그의 그림자는 바닥 위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서은의 것이었다. "왜 도와줬어." 서은이 물었다. 목소리에 평소와 다른 떨림이 섞여 있었다. "데이터 분석이 내 일이야." 도윤이 담담하게 답했다. "그게 다야?"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공을 하나 집어 들며 그녀를 향해 짧게 던졌는데, 서은은 그 공을 받아 든 채로도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공을 쥔 그녀의 손끝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오늘." 그녀가 말했다. "무너질 뻔했어." "알아." "근데 왜." "왜 뭐." "왜 아무도 몰랐는데, 너만." 도윤은 잠시 침묵했다. 형광등 불빛 아래 서은의 눈동자가 평소보다 짙게 흔들리고 있었는데, 그 흔들림이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려는 신호처럼 보였다. 그는 공 하나를 더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보였으니까." 그가 말했다. "안 보이는 척할 수가 없었어." 서은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가 다시 닫혔다. 무언가 말하려다 삼킨 흔적이었다. 체육관 밖에서 바람이 문틈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은 채였고, 서은은 그 침묵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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