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다음 날 아침, 나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학교에 도착해서 복도 끝 창가에 서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아직 옅은 안개가 걷히지 않은 운동장이 보였고, 그 안개 사이로 학생들이 하나둘 정문을 통과해 들어오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딱히 누군가를 기다린 것은 아니었지만 자꾸 시선이 정문 쪽으로 쏠리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창틀에 팔을 괴고 서 있는 내 모습이 유리에 어렴풋이 비쳤고, 그 표정이 스스로 보기에도 초조해 보여서, 나는 애써 팔을 풀고 등을 곧게 세웠다. 한심했다. 누군가를 감시하듯 서 있는 이 꼴이.
뒤에서 반 친구 몇 명이 소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흘려들었는데, 대화가 이어지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귀를 세우고 있었고, 손에 쥐고 있던 교과서의 모서리를 자꾸 손톱으로 긁고 있었다.
"그 옆반 애 알아? 서은채라고, 완전 소문 무성한 애." 한 명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어, 알지. 마스크 쓰고 다니는 애. 뭐 용돈벌이한다는 소리도 있고, 나이 많은 남자들이랑 다닌다는 얘기도 있고." 다른 하나가 맞장구를 쳤다.
"근데 걔가 그런 애치고는 존재감이 별로 없지 않아? 조용하잖아." 세 번째 목소리가 심드렁하게 덧붙였다.
"조용한 애들이 더 무서운 거지. 아무도 모르게 뒤에서 다 하고 다니는 거잖아." 첫 번째 목소리가 다시 끼어들었고, 나머지 둘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별다른 감정이 일지 않았다. 그저 소문이란 것이 얼마나 쉽게 사람을 하나의 이미지로 굳혀버리는지, 그 냉소적인 생각이 잠깐 스쳤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서야 왜 그 생각이 소희와 겹쳐졌던 걸까. 소희 역시 학교 안에서는 밝고 다정한 인기녀로만 알려져 있었고,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는 것이, 갑자기 서늘하게 느껴졌다. 아무도 모르게 뒤에서 다 하고 다니는 거잖아, 라는 말이 귀에 박힌 채로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을 몇 번이나 속으로 되풀이하다가, 결국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안개는 여전히 완전히 걷히지 않은 채였다.
점심시간, 소희의 친구 중 한 명인 지민이 나에게 다가와 은근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식판을 든 채로 다가온 그녀는 내 옆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으며, 마치 별 뜻 없는 안부처럼 말을 걸었다.
"서준아, 요즘 소희랑 잘 지내지?"
"응, 그럭저럭."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대답했지만, 젓가락을 쥔 손끝이 미세하게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소희가 요즘 좀 바쁘긴 한 것 같더라고. 학원도 늘리고, 뭐 스터디도 한다고 하고." 지민의 말투에는 어딘가 조심스러운 무언가가 섞여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단순한 잡담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그녀는 국물을 뜨는 척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가, 다시 슬쩍 나를 살피듯 올려다보았다.
"그래?" 나는 짧게 되물었지만, 속으로는 이미 몇 가지 가능성을 빠르게 계산하고 있었다. 지민이 무언가를 알고 있으면서도 정확히 말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인지, 그 경계가 애매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눈빛에선 아무것도 읽어낼 수가 없어서, 나는 더 캐묻는 대신 그저 웃어 보였다.
"학원 늘렸어? 나한텐 그런 말 안 했는데."
"어, 뭐, 요즘 좀 정신없나 보더라고. 너도 알잖아, 걔 원래 이것저것 잘 못 말하는 성격." 지민이 웃으며 넘겼지만, 그 웃음 끝에 붙은 미묘한 떨림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묻는다고 해서 답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언가를 캐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날 오후 나는 다시 학원가로 향했다. 소희가 학원을 끝내고 나오는 시간과, 실제로 집에 도착하는 시간의 간극을 기록하기 시작한 지 벌써 열흘째였다. 그 간극은 매번 조금씩 달랐지만, 짧게는 이십 분, 길게는 한 시간 가까이 벌어져 있었고, 나는 그 시간의 틈을 채우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했다. 알고 싶지 않으면서도 알아야 했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마음인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오늘도 소희는 학원 정문에서 나온 뒤 곧바로 큰길로 가지 않고 골목으로 꺾어 들어갔다. 가방끈을 고쳐 메며 주위를 한 번 둘러보는 그 모습이, 마치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보여서, 나는 가슴 한쪽이 무겁게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나는 조금 떨어진 거리를 두고 뒤따랐다. 심장이 턱까지 차오르는 것 같았지만,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골목 안쪽, 지난번과 같은 편의점 앞에 낯익은 차 한 대가 서 있었고, 그 옆으로 소희가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다. 가로등 불빛이 아직 켜지지 않은 시간이라 골목은 어둑했고, 그 어둠 속에서 차의 전조등만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차창이 내려가고, 안에서 얼굴을 내민 남자는 확실히 학생이 아니었다. 이십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정장 재킷을 걸친 남자였다. 소희는 그 남자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무언가를 건넸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거리 때문에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 봉투 같기도 했고, 서류 같기도 했다. 남자는 그것을 받아들며 뭔가 짧게 말했고, 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웃었다. 그 웃음이, 내가 알던 소희의 웃음과 다르지 않아서, 오히려 그것이 더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조용히 셔터를 눌렀다. 손끝이 떨렸지만, 사진은 흔들리지 않고 선명하게 찍혔다. 그 남자의 얼굴이, 이번에는 화면 속에 또렷하게 담겨 있었다. 나는 한 장을 더 찍었고, 화면을 내려다보며 그 얼굴을 확대해 보았다. 어딘가 익숙한 인상이었지만, 정확히 어디서 본 것인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 순간, 남자가 고개를 돌려 정확히 내가 서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나는 재빨리 몸을 숨겼지만, 그의 눈빛이 스치듯 나를 향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등이 벽에 닿는 순간까지도, 숨을 죽인 채로 몇 초를 그대로 서 있었다. 그가 나를 본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지나가는 시선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손끝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골목 밖으로 조용히 발을 옮겼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겨우 걸음이 편해졌지만, 그 편안함도 오래가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그 얼굴을 몇 번이나 다시 들여다보며 어딘가 낯익다는 이상한 감각에 휩싸였다. 방 안의 불을 끈 채로, 휴대폰 화면의 빛만이 얼굴을 비추고 있었고, 그 빛 속에서 남자의 얼굴은 점점 더 선명하게, 그러면서도 점점 더 불길하게 다가왔다. 어디서 봤을까.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낯익음의 정체를 알아내기 전까지는, 도저히 잠들 수 없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