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웃으며, 헤어지기로 했다

5화

그로부터 두 주가 더 흘렀다. 늦가을의 해는 짧아져서 하교 무렵이면 이미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고, 그 색이 매번 소희와 걷는 길 위로 길게 늘어져 마치 우리 사이의 시간이 조금씩 저물어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붉은빛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도 속이 서늘해졌는데, 아름다운 것을 보면서 왜 두려움을 느끼는지, 그 이유를 굳이 캐묻고 싶지 않았다. 그 사이 나는 소희의 일정을 더 촘촘히 기록해 나갔다. 학원 퇴실 시간과 실제 귀가 시간의 간극은 평균 삼십 분에서 사십 분 사이로 일정하게 벌어져 있었고, 그 시간마다 소희는 늘 같은 골목, 같은 편의점 앞을 지나갔다. 나는 노트 한 귀퉁이에 날짜와 시간, 간극을 숫자로 적어 내려갔는데, 그 숫자들이 쌓일수록 마치 내가 무언가를 증명해내고 있다는 이상한 성취감마저 느껴졌다. 한심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거짓을 세는 일에서 성취감을 느끼다니, 나는 대체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몇 장 더 확보했다. 처음에는 흐릿하게 찍혔던 얼굴이 이제는 또렷하게, 각도까지 여러 방향에서 잡혔다. 어느 날에는 그가 조수석에 놓인 서류봉투를 소희에게 건네는 장면까지 찍을 수 있었는데, 그 손이 스치는 순간을 렌즈 너머로 보면서, 나는 손끝이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봉투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무게가 나와 소희 사이의 거리와 정확히 비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학교 안에서는 여전히 소문이 무성했다. 이번에는 서은채라는 이름이 조금 더 자주 들려왔는데, 누군가는 그녀가 나이 많은 남자에게 돈을 받는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그저 근거 없는 헛소리라고 반박했다. 복도에서는 그 이름이 마치 유행하는 노래처럼 반복적으로 흘러나왔고, 나는 그 소음 속에서 이상하게도 냉정해졌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소문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만들어지고, 또 얼마나 쉽게 진실을 덮어버릴 수 있는지를. 나는 복도에서 마스크를 쓴 채 조용히 걷는 그녀를 몇 번 스치듯 본 적이 있었는데, 소문 속의 이미지와는 어딘가 다르게, 걸음걸이가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눈빛이 오히려 무표정에 가까울 만큼 단정했다는 것이 이상하게 기억에 남았다. 한번은 그녀가 계단에서 넘어질 뻔한 누군가를 무심히 붙잡아주는 것을 보았는데, 그 손짓이 소문 속의 인물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아서, 나는 잠깐 걸음을 멈추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제서야 왜 그런 사소한 인상이 마음에 걸렸던 걸까. 아마 나는, 소문과 실제가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소희를 통해 이미 배우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 속에 감춰진 것 사이의 간극, 그것이 얼마나 잔인하게 사람을 속일 수 있는지, 나는 매일 조금씩 더 깊이 깨달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서은채를 보면서, 소희의 얼굴을 겹쳐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표정 뒤에 감춰진 것이 무엇인지, 나는 그 답을 알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소희와의 데이트는 여전히 이어졌다. 손을 잡고, 카페에 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은 서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소희는 여전히 나를 향해 웃었고, 그 웃음의 각도, 눈매가 접히는 방식, 목소리가 살짝 올라가는 순간까지도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그 모든 순간이 겉으로는 평온했지만, 그 평온 아래 흐르는 균열을 매번 느끼고 있었다. 마치 얇은 얼음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발밑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얼음이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희가 무심코 흘리는 문장들, 예를 들어 [아, 오늘은 좀 늦게 잘 것 같아] 라는 말 뒤에 숨겨진 시간, 혹은 [친구랑 있어] 라는 대답 뒤에 감춰진 얼굴. 나는 그 문장들을 들을 때마다 표정을 관리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래, 무리하지 마." 나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속으로는 이미 그 시간의 뒤편에 무엇이 있는지를 계산하고 있었다. 이중적이었다. 겉으로는 다정한 연인이었고, 속으로는 냉정한 감시자였다. 그 두 얼굴 사이에서 나는 점점 더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균열들을 하나하나 사진처럼 마음속에 저장해두었다. 그리고 그 저장의 목적은 더 이상 단순한 상처 확인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내가 미친 게 아니라는 것을, 내 의심이 근거 없는 망상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한 번에 터뜨릴 것인지를 계획하고 있었다. 어느 장소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떤 순서로 증거를 내밀어야 소희가 도망칠 구멍조차 없게 만들 수 있을지를, 나는 밤마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했다. 주말이 다가올수록, 소희는 놀이공원 이야기를 더 자주 꺼냈다. "애들이랑 다 같이 가는 거니까 재밌을 거야." 소희는 밝게 웃으며 말했고, 나는 그 웃음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버석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 웃음이 진짜인지, 아니면 또 다른 가면인지, 이제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누구누구 가는데?"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고, 소희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이름을 몇 개 말했다. 그 이름들 중 낯익은 것은 없었지만, 낯익지 않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더 의심스러웠다. 나는 그 명단을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되짚어보았다. "너도 같이 갈 거지?" 소희가 물었을 때, 나는 잠깐 대답을 미뤘다. 함께 가서 그 모든 웃음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은 마음과, 차라리 멀리서 지켜보며 확실한 순간을 포착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하지." 결국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소희의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그 환함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를 여전히 캐묻고 있었다. 데이트 전날 밤, 나는 폴더 속에 모아둔 사진들을 다시 한번 정리했다. 편의점 앞의 두 사람, 손목의 붉은 자국, 서류봉투를 건네는 손, 그리고 저장명이 바뀐 메신저 알림 화면까지. 하나하나가 모여 이제는 제법 두터운 증거의 더미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사진들을 순서대로 배열해보았다가, 다시 날짜순으로 바꿔보았다가, 결국 아무 순서도 마음에 들지 않아 전부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이 증거들이 소희를 무너뜨릴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힘을 손에 쥔 채로, 나는 이상하게 그것을 쓰는 순간이 두려웠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일이면 끝날 수도 있다고. 놀이공원의 불빛 아래에서, 어쩌면 나는 소희의 표정이 무너지는 순간을 목격하게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동시에, 그 끝이 다가올수록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더 무거워졌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이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분노인지 슬픔인지, 아니면 그저 두려움인지, 나조차 구분할 수 없는 밤이었다. 핸드폰이 짧게 울렸다. 소희였다. [내일 몇 시에 만날까?] 나는 그 짧은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물음이었는데, 그 안에 숨겨진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스쳐 지나갔다. 나는 답장을 쓰다 지웠다가, 다시 썼다. [열 시.] 짧게 보내고 나서, 나는 핸드폰 화면이 꺼질 때까지 그것을 바라보았다. 화면 속 어둠에 내 얼굴이 흐릿하게 비쳤는데, 그 표정이 낯설어서 나는 눈을 돌렸다. 내일, 놀이공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나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만 하나는 분명했다. 이 밤이 지나면,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이상하게도 확신처럼 가슴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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