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웃으며, 헤어지기로 했다

4화

며칠이 더 지나고, 나는 학원 앞에서 찍은 그 남자의 얼굴을 몇 번이나 확대해 들여다보았다. 화질이 나쁜 사진 속에서 그 남자는 반쪽만 얼굴을 보이고 있었는데, 눈매가 조금 처져 있었고 턱선이 유난히 뾰족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라는 감각은 갈수록 짙어졌지만 정확한 기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마치 물속에 잠긴 돌을 손끝으로 더듬는 기분이었다. 만져지는데 잡히지 않는, 그런 애매함이었다. 그리고 그 애매함이, 오히려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나는 사진을 몇 번이나 다시 저장하고, 다시 열어보고, 다시 지우려다 말았다. 손끝으로 화면을 넓혔다가 좁혔다가 하는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무엇을 확인하려는 건지도 흐릿해졌다. 소희의 얼굴일까, 아니면 그 남자의 얼굴일까. 어느 쪽을 더 오래 들여다보고 있었는지, 나조차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날 오후, 소희와 나는 학교 앞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약속 시간보다 십 분쯤 일찍 도착해서 창가 자리를 잡았다. 늦가을 오후의 햇살이 유리창을 비스듬히 통과해 테이블 위에 옅은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나는 그 빛의 결을 멍하니 바라보며 손끝으로 컵의 테두리를 문질렀다. 소희가 도착하기 전 휴대폰이 짧게 두 번 울렸다. 화면을 얼핏 보니 발신인이 여전히 [형]으로 저장된 그 이름이었고, 미리보기에는 [오늘도 그 자리야?] 라는 문장이 떠 있었다. 나는 그 문장을 두 번 더 읽었다. 오늘도, 라는 단어가 유난히 눈에 걸렸다. 오늘도, 라는 건 이전에도 있었다는 뜻이었으니까. 휴대폰을 뒤집어 놓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그 떨림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창밖을 보았다. 소희가 골목 끝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가벼운 걸음으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 태연함이 나를 더 이상하게 만들었다. 소희가 도착하자마자 나는 그 얘기를 꺼냈다. 최대한 담담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목소리를 고르는 데 몇 초가 걸렸다. "저번에 봤던 손목, 아직도 좀 남아 있는 것 같던데." 나는 소희의 소매 끝을 가볍게 잡으며 말했다. "아, 그거? 완전 다 나았어." 소희는 웃으며 손을 슬쩍 뺐지만, 그 웃음이 너무 빠르게 얼굴에 걸렸다는 것이, 오히려 나를 확신하게 만들었다. 사람은 정말 아무렇지 않을 때 저렇게 빨리 웃지 않는다. 저건 준비된 웃음이었다. "넘어졌다고 했잖아." 나는 다시 물었다. "어디서 넘어졌는데?" "그냥... 계단에서." 소희의 목소리가 아주 조금 흔들렸다. "왜 자꾸 그런 걸 물어?" "그냥 걱정돼서." 나는 웃으며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손마디가 하얗게 도드라질 만큼 힘이 들어가 있었다. 테이블 아래 무릎 위에 올려둔 손을 나도 모르게 꽉 쥐고 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이 순간, 나는 진심으로 화가 나는 동시에, 여전히 이 애를 걱정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배신감과 애정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이토록 지독한 감정인지 나는 그전까지 알지 못했다. 둘 중 하나만 있었다면 차라리 견디기 쉬웠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 두 개가 한꺼번에 가슴을 짓누르는 걸까. 소희는 잠시 나를 응시하다가, 갑자기 화제를 돌려 다음 주말 얘기를 꺼냈다. 그 타이밍이 너무 정확해서, 나는 순간 이 애가 미리 준비해둔 대답을 꺼내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 놀이공원 갈까? 애들이 서울랜드 가자고 하더라고. 지민이랑 다른 애들도 같이." 소희의 목소리가 갑자기 밝아졌다. 그 급격한 온도 변화가, 나에게는 오히려 더 수상하게 느껴졌다. 방금까지 손목 얘기에 흔들리던 목소리가, 몇 초 만에 저렇게 명랑해질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위화감으로 다가왔다. "그래, 좋지." 나는 대답했다. 놀이기구를 나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런 것을 티 낼 여유는 없었다. 오히려 이건 기회였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자리라면, 소희가 감추고 있는 것들이 어딘가에서 삐져나올 가능성도 있었다. 사람이 많으면 방심하는 순간도 늘어나는 법이니까. 나는 속으로 그 계산을 하며, 겉으로는 최대한 즐거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민이도 같이 가는 거야?" 나는 넘어가듯 물었다. "응, 지민이랑, 또 몇 명 더." 소희가 손가락을 꼽으며 이름을 늘어놓았다. 그 이름들 속에 내가 궁금했던 이름은 당연히 없었다. 학원 오빠라는 사람이, 저 목록에 낄 리는 없었으니까. 카페를 나서며 손을 잡았을 때, 손바닥에 닿는 소희의 손이 유난히 차가웠다. 그 손을 잡은 채로 몇 걸음 걷는 동안, 소희의 휴대폰이 다시 진동했다. 이번에는 소희가 먼저 화면을 확인했는데, 그 순간 그녀의 표정이 아주 짧게 굳었다가 이내 풀어졌다. 그 짧은 순간의 균열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뭐야?" 내가 묻자, 소희는 "학원 알림"이라고 짧게 대답하며 휴대폰을 가방 깊숙이 넣었다. 그 동작이 너무 빨라서, 나는 오히려 그 안에 뭔가 감춰야 할 것이 있다는 확신을 더 굳혔다. 나는 그 화면을 완전히 보지 못했다. 하지만 짧은 순간, 저장된 이름 자리에 [오빠]라는 두 글자가 스쳐 지나갔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학원 오빠라던 그 존재가, 어느새 그냥 [오빠]로 바뀌어 있었다는 사실이, 가슴 한쪽을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형에서 오빠로. 그 한 글자의 변화가 얼마나 많은 것을 함의하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호칭이 바뀐다는 건, 관계의 거리가 바뀌었다는 뜻이었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 나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볼 뻔했다. 마치 누군가가 나를 따라오고 있는 것처럼, 아니면 소희가 그 자리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처럼.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저 내 머릿속에서 반복되는 의심과 확신이 만들어낸 착각일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다시 메모장을 열었다. 화면 위에 커서가 깜빡이는 걸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저장명 변경 확인. 형 → 오빠. 놀이공원 계획 잡힘. 주말 예정.] 문장을 적어 내려가는 손끝이 차가웠지만, 동시에 이상하게 냉정해지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화가 나고 슬픈 감정은 여전히 가슴 밑바닥에 뭉쳐 있는데, 손끝은 오히려 차분하게 문장을 이어가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 아래 한 줄을 더 적었다. [주말, 사람 많은 자리. 지켜볼 것.] 그리고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이제는 그저 상처받는 쪽이 아니라, 조용히 판을 짜는 쪽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그날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각인시켰다. 소희가 웃으며 놀이공원 얘기를 꺼냈던 그 순간의 표정을, 나는 몇 번이나 다시 떠올렸다. 그 웃음 뒤에 무엇이 있을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하지만 주말이 오면, 무언가는 반드시 드러날 것이라는 예감이, 이상하게도 확신처럼 굳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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