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결제가 끝나고 문이 닫히기까지, 그 짧은 몇 초 사이에 도현의 머릿속에는 수십 가지 계산이 스쳐 지나갔다. 얼굴을 아예 못 본 척할 걸 그랬다는 후회, 저 셋이 내일 학교에서 이 일을 아무렇지 않게 떠벌리면 반 전체가 자신을 어떻게 볼지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저 애들과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사실을 저들이 신기해하는 그 눈빛 자체가 견디기 힘들었다는 자각까지. 도현은 오토바이에 다시 올라타면서도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느꼈고, 그건 추운 날씨 때문이 아니었다. 헬멧을 눌러쓰는 손가락이 자꾸 미끄러졌고, 시동을 걸기 전까지도 현관문 너머로 세 사람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 같아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재수 없게 걸렸네.' 그는 스스로에게 짧게 되뇌었다. 학교에서 배달 알바 뛰는 걸 들키는 것과, 학교 최고 미녀 3인조에게 정면으로 들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무게였다. 골목을 빠져나오는 내내 도현은 자꾸만 헤드라이트 불빛 속으로 그 셋의 얼굴이 겹쳐 떠오르는 걸 애써 지워내야 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도현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배달 가방을 벗어 던지고 방 안에 널브러진 채, 천장을 올려다보며 내일 아침 교실 문을 열었을 때 벌어질 상황들을 미리 그려보았다.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저들이 자신 같은 애한테 그렇게까지 관심을 둘 리 없다고 애써 되뇌었지만, 그 되됨 자체가 이미 불안을 증명하고 있었다. 결국 도현은 알람을 두 번이나 다시 맞추고서야 겨우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아침, 도현은 평소보다 십 분 늦게 교실에 들어섰는데, 문을 열자마자 반 아이들 몇몇이 자신을 향해 슬쩍 시선을 던지는 걸 느끼며 걸음을 멈췄다. 정확히는, 강서윤과 박은서와 윤채린이 창가 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는 걸 발견한 순간이었다. 도현은 그 세 사람이 자기 반이라는 걸 처음 안 것도 아니었지만, 지금까지는 그저 존재감 없는 배경처럼 그들을 지나쳐 왔을 뿐이었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유난히 셋의 자리에만 고르게 내려앉는 것처럼 보였고, 그 빛 속에서 세 얼굴은 마치 작정한 듯 도현을 향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은서가 그를 발견하자마자 손을 번쩍 들어 흔들며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어, 배달 오빠!" 순간 교실 전체의 시선이 도현에게 쏟아졌고, 그는 명치가 꽉 막히는 폐쇄 공포와 함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하필 저렇게 크게 말할 건 또 뭐야.' 도현은 자리로 서둘러 걸어가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등 뒤에서 소곤거리는 소리들이 귀에 박히듯 들렸다. 누군가는 "배달 오빠가 뭐야?" 하고 웃으며 물었고, 또 누군가는 "쟤 서윤이네 반이었어?" 하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도현은 책상에 앉아 가방을 정리하는 손끝이 자꾸 헛도는 걸 느끼면서도 눈은 칠판만 노려보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도현의 책상 주변으로 몇몇 남학생들이 슬쩍 모여들었다. "야, 진짜야? 어제 걔들 집에 배달 갔었다고?" 무리 중 하나가 눈을 빛내며 물었을 때, 도현은 대답 대신 애매하게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그냥 배달이었어." 짧게 대답했지만, 그 말이 오히려 더 궁금증을 부추기는 모양이었다. "그냥 배달이 아니라 걔들이 문 열어줬다며. 얼굴 보고 놀랐다며." 누군가 확인하듯 되물었고, 도현은 그런 자잘한 소문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부풀어 올랐는지조차 알 수 없어 대꾸할 기운조차 없었다. 그런 그의 반응이 오히려 이야기를 더 부풀리게 만든다는 걸 알면서도, 상황을 정정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창가 쪽에서는 서윤이 팔짱을 낀 채 도현 쪽을 흘긋거리고 있었는데, 그 눈빛에는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것이 담겨 있는 듯했다. "쟤, 뭔가 있는 거 아냐?" 서윤이 은서에게 낮게 속삭였고, 은서는 대답 대신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글쎄, 재밌잖아." 그 말을 곁에서 듣던 채린은 여전히 무표정하게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아무런 감정도 없다고 하기엔 눈동자가 유난히 오래 도현 쪽에 머물러 있었다. 마치 그 시선이 도현의 뒤통수에 눌어붙기라도 한 것처럼, 도현은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걸 몇 번이나 느꼈다.
점심시간, 도현이 급식실에서 혼자 밥을 먹으려 자리를 찾던 중, 반 중심부에 앉아 있던 차유준이 그를 향해 낮게 코웃음을 쳤다. 축구부 에이스이자 반 남학생들의 구심점 같은 존재였던 유준은, 잘생긴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눈빛만은 서늘했다. "배달이나 하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저렇게 관심을 받냐." 그가 옆자리 친구에게 들으라는 듯 흘린 말이 도현의 등 뒤에 정확히 꽂혔다. 곁에 있던 친구가 킥킥거리며 맞장구를 쳤고, "그러게, 뭐 별거라고" 하며 도현의 식판을 흘끔거렸다. 도현은 순간 얼굴이 굳었지만, 어차피 대꾸해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기에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식판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끼면서도, 표정만은 애써 무너지지 않게 붙잡았다. 그러나 며칠 사이 자신을 둘러싼 시선의 결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걸 체감하면서, 도현은 이 격차가 단순한 우연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급식실을 빠져나오며 뒤돌아본 순간, 창가 자리에 앉은 채린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녀는 시선을 피하지도 않고 그저 도현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어서, 도현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잠시 걸음을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