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여왕님 전담 셔틀 졸업

1화

딸랑, 교문 옆 편의점 문에 달린 종이 흔들리는 소리와 동시에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짧게 두 번 울렸다. 진동이 허벅지를 타고 올라오는 걸 느끼며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액정을 확인할 필요도 없이 몸이 먼저 반응한다는 게 새삼 서글펐지만, 그런 감정을 곱씹을 새도 없이 손끝이 먼저 움직여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서아야." "빨리 와, 목 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사서 3층 라운지로." 인사도, 부탁도 아니었다. 명령이었다. 짧고 건조한 그 말투에 나는 이미 몸을 돌려 냉장고 문을 열고 있었다. 유리문에 서린 김이 손바닥에 닿는 순간의 냉기조차 낯설지 않았다. 컵을 꺼내 계산대 앞에 서서 카드를 긁으며, 나는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헤아려보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중학교 1학년 봄, 처음 그녀의 손에 이끌려 이 편의점 냉장고 앞에 섰던 순간부터였으니 벌써 다섯 해가 넘었다. 계단을 두 개씩 뛰어오르며 3층으로 향하는 동안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손에 든 컵의 얼음이 부딪히며 잘그락거리는 소리를 냈고, 그 소리에 섞여 짙은 재스민 향수 냄새가 코끝에 먼저 닿았다. 그녀는 늘 그 냄새를 뿌리고 다녔다. 겨울에도, 여름에도, 시험 기간에도. 나는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명치 어디쯤이 조용히 조여드는 걸 느꼈는데, 그게 반가움인지 두려움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었다. 라운지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윤서아는 내가 내민 컵을 받아들며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빨대를 톡톡 꺾어 꽂았다. "늦었어." "죄송해요." 습관처럼 사과가 먼저 튀어나왔다. 미안할 일이 없었는데도 몸이 저절로 고개를 숙였다. 그녀 옆에 앉은 친구들이 낄낄거리며 나를 위아래로 훑었고, 그중 한 명이 손톱을 다듬던 손을 멈추고 나를 가리켰다. "야, 도윤이 완전 서아 몸종이네. 부르면 오고, 시키면 하고." 웃음이 라운지 안에 짧게 번졌다. 윤서아는 대답 대신 입꼬리만 살짝 올렸다. 부정하지 않았다. 그게 늘 그랬던 방식이었다. 그녀가 침묵으로 인정할 때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조금씩 투명해지는 기분이었다. 집에 가려고 가방을 챙기는데 윤서아가 다시 나를 불렀다. "야, 이거." 그녀는 수학 노트를 내 쪽으로 휙 던졌다. 노트가 책상 모서리에 걸려 바닥으로 떨어질 뻔한 걸 내가 얼른 받았다. "오늘 숙제 대신 좀 해줘. 나 미용실 예약 있어서 늦게 와." 나는 별다른 대답 없이 그녀의 노트를 받아들었다. 손에 쥐어진 노트가 유난히 가볍게 느껴졌다. 겉표지에는 그녀가 좋아하는 아이돌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안쪽 종이는 거의 백지에 가까웠다. 언제부턴가 그녀의 부탁은 부탁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 되어 있었고,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거절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순순히 노트를 펼쳤다. 그날 밤, 방 안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나는 그녀의 문제를 풀어주고 있었다. 이차방정식, 인수분해, 그래프 그리기. 익숙한 손놀림으로 연필을 굴리면서도 머릿속 어딘가는 계속 다른 곳을 헤매고 있었다. 책상 한쪽에 놓인 낡은 액자 속에서 엄마가 웃고 있었다. 사진 속 엄마의 웃음이 방 안의 정적을 조금 채워주는 것 같다가도, 문득 그 사진을 볼 때마다 가슴 한쪽이 뻐근하게 저려왔다. 나는 문득 연필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봤다. 이 관계에 이름을 붙여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친구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다섯 해 동안 단 한 번도 스스로에게 묻지 않았던 질문이 그날 밤 처음으로 내 안에서 고개를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교실 문을 열자마자 윤서아가 팔짱을 낀 채 내 자리로 걸어왔다. 하이힐 굽 소리가 또각또각 복도를 울렸고, 그 소리가 내 자리 앞에서 멈췄다. 그녀는 어제 그 숙제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이거 틀렸잖아. 다시 해." 나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밤새 세 번이나 검토하며 풀어준 문제였다. "제가 확인했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코웃음을 치며 내 어깨를 툭 밀었다. "됐고, 오늘 방과 후까지 다시 갖고 와." 그녀는 몸을 돌리려다 말고 다시 나를 내려다봤다.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아, 그리고 우리 엄마가 니네 엄마 얘기 물어보시던데. 사고로 돌아가신 거 맞지? 안됐다 진짜." 그 말이 귀에 박히는 순간, 나는 뭔가가 뚝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심장 어딘가에서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현이 소리 없이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것도, 손끝이 떨리는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죽었다. 뭔가가 완전히 죽어버렸다. 나는 그녀를 올려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목구멍 안쪽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가 이내 차갑게 식어버렸다. 윤서아는 내 표정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채 다시 한 번 노트를 던지듯 내 책상에 올려놓고 자리로 돌아갔다. 또각또각, 그 발소리가 멀어지는 동안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봤다. 교실 안 아이들의 웅성거림도,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도 어느 순간부터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 그녀의 이름이 떠 있었다. 5년 동안 하루도 지워지지 않았던 그 이름. 손끝이 화면 위에서 잠시 멈췄지만, 그 멈춤은 망설임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정말 이래도 괜찮은가, 하는 확인이 아니라,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다는 확인이었다. 나는 차단 버튼을 눌렀다. 딸깍, 하는 작은 진동이 손바닥에 남았고, 나는 그것이 5년 만에 처음으로 내가 스스로 선택한 소리라는 걸 알았다. 창밖으로 구름이 흘러가는 것처럼, 그녀와 나 사이의 무언가도 함께 흘러가버린 것 같았다. 그날 오후, 방과 후 종이 울리기도 전에 교실 문이 벌컥 열렸다. 윤서아였다. 평소와 다른 걸음걸이, 평소와 다른 얼굴빛. 그녀의 눈이 나를 향해 곧게 날아왔다. "야, 도윤. 너 지금 뭐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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