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딸랑, 알람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새벽 다섯 시 반. 평소보다 삼십 분은 이른 시각이었는데도 눈은 이상하게 맑았다. 나는 이불을 걷어내고 몸을 일으키며 어젯밤 오하린이 보낸 메시지를 다시 떠올렸다. [선배 오늘 급식 말고 도시락 싸올까요? 저 요리 잘 못하지만ㅋㅋ] 그 문장을 읽었을 때부터 이미 마음은 부엌으로 달려가고 있었던 것 같다.
부엌은 조용했다. 아버지는 아직 방에서 자고 있었고, 냉장고 문을 열자 서늘한 바람이 손끝을 스쳤다. 어젯밤 야근을 마치고 사다 놓은 계란 한 판과, 시들기 시작한 애호박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애호박을 꺼내 도마 위에 올리고 칼끝으로 꼭지를 잘라내는데, 예전에 어머니가 이렇게 애호박을 썰며 "너무 얇게 썰면 볶을 때 다 부서져"라고 말해주던 목소리가 문득 귓가에 스쳤다. 손끝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계란을 깨서 그릇에 담고, 젓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소금을 살짝 뿌렸다. 팬에 기름을 얇게 두르고 달궈지길 기다리는 동안, 애호박을 채 썰어 소금에 절이고, 멸치를 볶을 팬을 따로 준비했다. 손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오하린의 웃는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계란말이가 프라이팬 위에서 도르르 말리는 소리, 지글지글 기름 튀는 소리 사이로 나는 웃음이 새어나오는 걸 몇 번이고 참았다.
도시락 두 개를 완성했을 때는 이미 창밖이 희끗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하나는 아버지 몫으로 식탁 위에 올려두고, 메모지에 "저녁 늦으시면 이거 데워 드세요"라고 적어 붙였다. 나머지 하나는 가방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뚜껑을 여러 번 확인하며 국물이 흐르지 않았는지 살피는 손끝이, 이상하게 들떠 있었다.
***
교실 문을 열자 오하린이 벌써 자리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가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그녀의 단발머리 끝에 걸려 있었는데, 나를 보자마자 눈이 반짝 커지며 손에 들고 있던 작은 보온 도시락통을 내밀었다.
"이거 제가 아침에 만든 건데, 맛없어도 이해해주세요."
말끝이 살짝 흔들렸다. 자신 없는 티가 역력했다. 나는 뚜껑을 여는 손끝에 조심스러움을 담았다. 안에는 삐뚤빼뚤한 김밥이 몇 줄 담겨 있었는데, 속 재료가 여기저기 삐져나온 모양이 오히려 정겨웠다. 마치 처음 걸음을 뗀 강아지가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 같았다.
"먹어봐도 돼요?"
"네…… 근데 진짜 맛없을 수도 있어요."
나는 그 자리에서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짠맛이 조금 강했지만, 그 맛이 이상하게 따뜻했다. 씹을수록 목이 메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게 슬픔 때문인지 다른 감정 때문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맛있어요."
진심이었다. 오하린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지며 볼이 살짝 붉어졌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살짝 가리며 "정말요? 다행이다……"라고 중얼거렸는데, 그 모습이 꼭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가 처음으로 사람 손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여려 보였다.
나는 답례로 어제 만들어 온 도시락을 그녀 앞에 내밀었다. 계란말이와 볶음멸치, 소시지볶음이 정갈하게 담긴 도시락을 보고 오하린이 눈을 크게 떴다.
"선배 요리 진짜 잘하네요? 이거 완전 프로 같아요."
나는 대답 대신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아버지 대신 부엌을 맡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익힌 솜씨였는데,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인정받는 기분이 낯설고도 벅찼다. 가슴 한쪽이 조용히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나는 젓가락으로 계란말이를 하나 집어 오하린의 도시락 위에 슬쩍 옮겨주었다.
"이건 서비스."
"어? 저 이거 두 배로 먹는 거예요?"
그녀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눈을 접었다. 그 웃음이 교실 안 다른 소음들을 다 지워버릴 만큼 크게 느껴졌다.
***
그날 오후, 아버지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늘도 늦을 것 같다. 저녁 챙겨 먹어라.]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피로가 느껴져서, 나는 답장 대신 냉장고 사정을 떠올렸다. 계란은 반 판 정도 남았고, 애호박은 다 썼고, 김치는 거의 바닥이었다. 이번 달 생활비가 넉넉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하교 후 마트에 들러 할인 코너부터 살폈다.
형광등 불빛 아래 진열된 채소들 중 유통기한이 임박한 것들을 골라 담았다. 애호박 하나, 콩나물 한 봉지, 계란 열 개짜리 한 판. 계산대 앞에서 지갑을 열어 동전을 세는 손끝이 조금 떨렸다. 천 원짜리 몇 장과 동전들을 세는 동안 뒤에 줄 선 사람의 시선이 뒤통수에 닿는 것 같아 목덜미가 뜨거워졌다. 부끄럽지는 않았지만, 이런 계산이 익숙해진 나 자신이 씁쓸했다.
봉투를 들고 마트를 나서는데 손목이 봉투 무게에 눌려 살짝 시큰거렸다. 하늘은 벌써 옅은 주황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오하린이었다. [선배, 저 오늘 선배 덕분에 진짜 맛있는 반찬 먹었어요. 다음에 또 만들어주세요!]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노을이 구름 사이로 번져가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콧잔등이 시큰거리는 걸 느꼈다.
누군가가 내가 만든 음식을 기다린다는 사실이, 어머니를 잃고 처음으로 느껴보는 온기 같은 것이었다. 나는 답장을 [다음엔 뭐 만들어줄까요]라고 짧게 보내고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
그런데 다음 날 아침, 학생회실 앞을 지나던 나는 익숙하지 않은 시선을 느꼈다. 딸깍, 유리문 안쪽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시선이 정확히 나에게 꽂혔다.
안경을 쓴 긴 생머리의 선배가 유리창 너머에서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학생회 부회장, 한소은이었다. 그녀는 내가 지난주 자원봉사로 작성했던 학생회 업무 보고서를 손에 든 채, 서늘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걸음을 멈추자 그녀도 문을 열고 걸어나왔다. 또각또각, 구두 굽 소리가 복도 바닥을 울렸다. 그녀는 내 앞에 멈춰 서서 보고서를 살짝 들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이거, 네가 쓴 거 맞지?"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나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걸 느꼈다. 그녀의 눈빛이 마치 먹잇감을 살피는 뱀처럼 차갑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네, 맞는데요. 뭐가 잘못됐나요?"
한소은은 대답 대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 미소가 웃음이라기보다는 경고처럼 느껴졌다.
"잘못된 건 없어. 그냥, 궁금한 게 있어서."
그녀가 보고서 마지막 페이지를 손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곳에는 내가 무심코 적어놓은 시간대별 활동 기록이 적혀 있었는데, 그 기록이 유난히 신경 쓰인다는 듯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시간에, 정말 거기 있었어?"
심장이 갑자기 갓 잡은 활어처럼 펄떡이기 시작했다. 나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