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딸랑, 사물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복도 저편에서 울렸다. 나는 가방을 고쳐 메며 교실로 들어서려던 참이었는데, 사물함 앞에 서 있던 윤서아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발견하자마자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늘 여유롭게 웃던 얼굴에 금이 가는 걸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녀는 사물함 문을 채 닫지도 않고 성큼성큼 다가왔는데, 그 걸음이 너무 빨라서 나는 뒷걸음질 칠 틈도 없이 손목을 붙잡혔다.
"너 왜 갑자기 차단했어? 무슨 일 있어?"
그녀의 손끝이 사시나무처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 떨림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늘 확신에 차 있던 사람이었는데, 마치 언제나 정답을 알고 있다는 듯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던 사람이었는데, 지금 이 순간의 그녀는 손끝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손목을 붙잡은 손가락에 힘이 실릴 때마다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고, 나는 그 감각을 떨쳐내려 애써 시선을 피했다.
"할 말 없어요."
나는 손을 빼며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다시 앞을 막아섰다. 등 뒤로 반쯤 열린 교실 문 사이로 몇몇 아이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게 느껴졌다.
"이도윤. 나 지금 진지하게 묻는 거야."
낮게 깔린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에는 평소의 여유가 사라지고 대신 무언가 절박한 것이 스며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알아차리면서도 애써 모른 척했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복도를 지나던 아이들도 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힐끔거렸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꺼내려다 옆 사람의 팔에 저지당했고, 또 누군가는 그저 재밌다는 듯 팔짱을 낀 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 시선들 속에서 옴짝달싹 못 하는 기분이었다. 마치 유리병 속에 갇힌 벌레처럼, 사방에서 쏟아지는 눈길이 나를 짓눌러왔다.
그때 복도 끝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또각또각, 규칙적이면서도 힘 있는 걸음이었다. 오하린이었다. 그녀는 우리 둘 사이의 공기를 단번에 읽어낸 듯 표정을 굳히고는 성큼성큼 걸어와 내 옆에 섰다. 그녀에게서 늘 나던 그 은은한 시트러스 향이 코끝을 스쳤는데, 그 순간만큼은 그 냄새가 이상하게도 안도감을 주었다.
"선배 여기 있었네요, 찾았어요."
밝은 목소리였지만, 윤서아를 향한 눈빛은 낮보다 훨씬 차가웠다. 나는 그 눈빛의 온도차를 느끼며 속으로 숨을 삼켰다.
"저기, 실례지만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오하린이 또박또박 물었을 때, 윤서아의 표정이 순간 얼어붙었다. 자신보다 한 학년 아래인 후배에게 이런 식으로 질문을 받은 게 처음인 듯, 그녀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넌 또 뭔데."
윤서아가 날카롭게 되물었다. 목소리에 가시가 박혀 있었다.
"선배 후배요."
오하린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도윤 선배 손목 놓아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짧고 단호한 대구가 복도에 오갔다. 두 사람의 말은 마치 서로 칼끝을 겨눈 것처럼 팽팽했고, 그 팽팽한 침묵 속에서 나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누군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나였을 것이다.
윤서아의 손끝에 잠시 힘이 더 실리는 게 느껴졌다. 놓지 않겠다는 듯한 그 힘에 나는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는데, 그 순간 그녀가 결국 손을 놓았다. 놓는 순간 그녀의 손톱이 내 손목을 스치듯 긁었다. 그 짧은 마찰의 감각이 이상하게도 오래전 병원 복도에서 누군가 내 손을 놓던 순간과 겹쳐졌다.
사고 소식을 들은 그날이었다. 밤늦게 걸려온 전화, 잠에서 덜 깬 채로 뛰쳐나가던 발걸음, 병원 복도의 차갑고 하얀 불빛. 아버지가 내 손을 붙잡고 뛰다가, 응급실 문 앞에서 그 손을 놓고 안으로 뛰어들어가던 그 짧은 순간의 감촉이 손목에 되살아났다.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나가던 온기, 그 뒤로 남은 서늘한 공기, 문이 닫히는 소리. 그 소리가 지금 귓가에 다시 울리는 것 같았다.
나는 순간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옴짝달싹 못 하는 몸, 얼어붙은 시야,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감각. 복도의 불빛이 갑자기 병원의 흰 조명처럼 눈부시게 번져 보였고, 주변의 소음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엄마, 일어나……
마음속으로 그 말이 튀어나왔고, 눈앞이 흔들렸다. 심장이 갓 잡은 활어처럼 펄떡였다. 나는 그 자리에 선 채로 숨을 쉬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얕게, 짧게 숨을 몰아쉬었다.
"선배?"
오하린이 내 팔을 잡았다. 그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몸이 굳는 걸 느꼈다. 붙잡힌 감각이 조금 전 윤서아의 손톱 자국과 겹쳐지며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손이 닿는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병원 복도의 그 서늘한 공기를 다시 느꼈고, 손을 놓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눈앞에 겹쳐 보였다.
오하린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순수한 염려밖에 없었는데, 나는 그 눈빛조차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녀의 손을 뿌리치듯 밀어냈다.
밀어내는 손끝에서 느껴진 반발감, 그리고 그 반발감이 만들어낸 짧은 정적. 오하린의 표정이 흔들리는 걸 보고서야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죄송해요."
나는 곧바로 사과했다. 하지만 방금 내가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밀어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손끝에 남은 감각이 낯설고 무서웠다. 마치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어떤 스위치가 눌리면 저절로 반응해버리는 기계처럼 느껴졌다.
오하린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손을 거두며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아요, 놀랐죠."
그 말투에는 원망이나 서운함이 조금도 섞여 있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배려하듯 한 걸음 물러서는 그 태도가, 나는 더 견디기 힘들었다. 미안함과 알 수 없는 불안이 동시에 가슴을 조여왔다.
윤서아는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입술을 깨물더니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떠났다. 그녀의 뒷모습이 복도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짙은 재스민 향이 옅게 남아 있었다. 그 향은 그녀가 늘 곁에 있을 때 나던 냄새였는데, 이제는 그 냄새조차 어딘가 서늘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 냄새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눈을 감고 서 있었다.
주변에 몰려 있던 아이들도 하나둘 흥미를 잃은 듯 흩어졌다. 누군가는 낮게 수군거리며 지나갔고, 누군가는 나를 힐끔 돌아보며 교실로 들어갔다. 그 시선들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나는 마치 발가벗겨진 듯한 기분이었다.
"괜찮아요, 선배?"
오하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걱정이 배어 있었는데, 나는 그 걱정조차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끝은 여전히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손목에는 윤서아의 손톱이 남긴 희미한 자국이 발갛게 올라와 있었고, 그 위로 조금 전 오하린이 잡았던 온기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두 개의 감촉이 겹쳐지며 손목 전체가 이상하게 저릿거렸다.
나를 구해준 사람의 손조차 온전히 믿을 수 없는 지금의 내가, 낯설고도 무서웠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문득 깨달았다. 오하린의 눈빛 어딘가에, 방금 전 내가 미처 읽어내지 못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는 것을. 그것이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는 걸, 나는 그녀가 몸을 돌려 교실 쪽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뒤늦게 깨달았다. 그녀의 어깨가 평소보다 조금 더 굳어 있었다.
무엇을 본 걸까. 아니면, 무엇을 알아차린 걸까.
나는 그 답을 알지 못한 채, 여전히 떨리는 손끝을 다른 손으로 감싸 쥐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