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형님, 복수하러 왔습니다

3화

비명은 다급했다. 짐승의 울음이 아니었다. 인간의, 그것도 여인의 목소리였다. 나는 발걸음을 죄었다. 오백 년의 검 감각이 방향을 잡아주었다. 소리가 난 방향, 거리, 지형의 굴곡까지 순식간에 계산이 끝났다. 나무 사이로 뛰어들자, 산적 셋이 한 여인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여인은 등에 짐을 지고 있었다. 약초 냄새가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도망칠 곳을 찾는 눈이 빠르게 움직였으나, 발은 이미 지쳐 있었다. 짐의 무게에 어깨가 눌려 제대로 몸을 돌리지도 못했다. "조용히 따라오면 다치진 않을 게다." 산적 하나가 말했다. 눈은 웃고 있었다. — 거짓이다. 다치게 할 생각이 이미 정해져 있다. 저런 눈으로 웃는 자는, 이미 머릿속에서 다음 순서를 그려놓은 자다. 나는 소리 없이 다가갔다. 발밑의 마른 잎사귀 하나도 밟지 않았다. 검을 뽑을 필요조차 없었다. 손목을 가볍게 쳐서 첫 번째 산적의 칼을 떨어뜨렸다. 쇠가 땅에 부딪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두 번째는 어깨를 눌러 무릎을 꿇렸다. 세 번째는 도망치려다 발이 걸려 넘어졌다. 순식간이었다. 세 사람 모두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뭐, 뭐야, 이놈은." 하나가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가치가 없었다. 짐승 세 마리를 상대로 말을 섞을 이유는 없다. 산적들이 절뚝이며 도망친 후, 나는 여인을 돌아보았다. 키는 작았다. 어깨는 약초 짐 때문에 굽어 있었다. 얼굴에는 흙먼지가 묻어 있었고, 소매 끝은 여러 번 기운 자국이 있었다. 그러나 눈빛만은 굽지 않았다. 나를 경계하면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았다. — 쉽게 무너지지 않는 종류의 사람이다. "괜찮으십니까." 내가 물었다. "괜,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인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리고는 짐을 다시 등에 지려다 휘청거렸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방금 겪은 일의 여파였다. 나는 손을 뻗어 짐을 받쳐주었다. "짐이 무겁습니다." "약초입니다. 아버지 약값이 부족해서, 직접 캐러 다니고 있습니다." 간단한 대답이었으나, 그 안에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병든 부친, 부족한 돈, 그리고 그것을 대신 짊어진 딸. 나는 그것을 기록해뒀다. "이름을 여쭤도 되겠습니까." 내가 물었다. "하빙입니다." 그가 답했다. 숨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목소리였다. "저... 은인의 이름은."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서준이라는 이름은 아직 세상에 내놓을 수 없었다. 그 이름이 어떤 무게를 지녔는지, 이 세상에서는 아무도 몰라야 했다. "이연이라 불러주십시오." 가명이었다. 필요한 만큼의 진실만 내놓는 것, 그것이 지금의 방식이었다. 하빙은 마을까지 함께 걸어가자고 청했다. 산길이 다시 위험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나는 응했다. 걸으며 나는 그녀를 관찰했다. 걸음걸이에서 무술의 기초가 느껴졌다. 무게중심을 낮추는 습관, 발끝을 먼저 딛는 버릇. 그러나 진기의 흐름이 매끄럽지 않았다. 육중 초급 수준이었다. 재능은 있으나, 제대로 이끌어줄 스승이 없었다는 뜻이다. 원석이되,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무공을 배우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하빙이 놀란 얼굴로 나를 보았다.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걸음에서 보였습니다." "어릴 때 조금 배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력이 없어서요." 그가 말끝을 흐렸다. 여력이 없다는 말 속에는,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는 처지가 숨어 있었다. 손끝의 굳은살이 검이 아니라 약초 캐는 낫과 호미에서 생긴 것이었다. 마을이 가까워지자 낮은 지붕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하빙의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익숙한 길이었다. 마을에 도착하자 하빙은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연 님,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혹시 갈 곳이 없으시다면, 저희 집에서 하룻밤 묵으셔도 좋습니다." 그것은 무모한 제안이었다. 처음 본 사내를 집에 들이겠다니. 그러나 그 무모함 속에 담긴 선의가, 나는 오히려 흥미로웠다.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자는 드물다. 세상은 대개 받은 것을 잊는 쪽으로 흐른다. "신세를 지겠습니다." 나는 답했다. 하빙의 집은 작았다. 마당에 약초가 줄지어 널려 있었고, 볕에 말라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 안에서는 기침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아버지였다. 기침은 짧고 얕았다. 한 번에 끝나지 않고 몇 번을 연달아 이어졌다. "아버지, 다녀왔어요." 하빙이 방문을 열었다. 안에 누워있는 노인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나는 문틈으로 흘깃 살폈다. 오랜 병색이었다. 단순한 감기가 아니었다. 안색이 누렇고, 입술이 갈라져 있었다. 폐 깊은 곳부터 오래 곪은 병이었다. 하빙이 방을 나오며 작게 말했다. "양아버지십니다. 폐병을 오래 앓고 계셔요." 양아버지. 나는 그 단어를 마음에 새겼다. 핏줄로 이어지지 않은 관계, 그럼에도 저렇게 짐을 지고 산길을 헤매게 만드는 정. 저녁상은 소박했다. 나물과 잡곡밥, 그리고 국 한 그릇. 하빙은 자신의 몫을 아버지에게 덜어주려 했으나 노인은 손을 저으며 받지 않았다. 그 손짓 하나에도 부녀간의 오랜 실랑이가 배어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마당에서 밤하늘을 보았다. 오백 년 만에 보는 익숙한 별자리였다. 바람이 약초 더미를 스치며 마른 냄새를 실어왔다. 촛불이 방 안에서 흔들리는 그림자를 창호지에 드리웠다. 하빙이 아버지의 이마를 짚어주는 모습이었다. 손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형님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재능이 있으되 다듬어지지 않은 자, 은혜를 알되 갈 곳이 없는 자. 그리고 이 사람은, 쓸만한 첫 번째 씨앗이 될지도 몰랐다. 판을 짜기 시작해야 할 때였다. 다음 날 아침, 마당 밖에서 요란한 마차 소리가 들렸다. 말발굽 소리가 유난히 거칠었다. 마치 길 위의 모든 것을 밀어붙이며 오는 소리였다. 하빙이 창밖을 보고 얼굴이 하얘졌다. 손에 쥐고 있던 약초 다발이 툭 바닥에 떨어졌다. "강도현 도련님이 오셨습니다." 그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방 안의 기침 소리마저 순간 멎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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