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다음 날, 나는 마을 어귀의 무관을 찾았다. 강도현의 아버지가 관주로 있는 곳이었다. 겉으로는 지나가는 나그네처럼 관도를 걸었으나, 눈은 무관의 규모와 병사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담장은 낮았으나 두꺼웠다. 병사들의 훈련 소리가 담을 넘어왔는데, 그 기합 소리에 절도가 없었다. 훈련이 형식에 그친다는 뜻이었다. 겉으로는 위세를 부리는 가문이나, 실속은 그만큼 단단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나는 그것을 마음 한편에 적어두었다.
무관 앞에서 나는 우연히 두 무사의 대화를 들었다. 창을 벽에 세워두고 쉬는 참이었는지, 둘의 말투에는 경계가 없었다.
"관주님이 강 공자 혼사를 위해 임가에 크게 손을 벌리셨다더군."
"임서희 낭자 쪽에서 오히려 먼저 작은 아내를 들이자 청했다던데."
"그게 이상하지 않나. 정실 될 사람이 먼저 첩을 들이자 청하다니."
"소문엔, 하가 낭자가 무재가 있다더라. 강 공자가 그걸 노린다고."
무재. 그 단어가 걸렸다. 단순히 아름다움이나 순박함 때문이 아니라, 하빙의 재능을 노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임서희가 먼저 청했다는 것도 이상했다. 위선적 친절로 위장한 다른 목적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나는 두 무사를 지나쳐 걸으며 속으로 계산을 정리했다. 강도현은 무재를 원한다. 임서희는 그 혼사를 막지 않고 오히려 앞서 나선다. 두 계산이 겹치는 지점이 있다면, 하빙이라는 사람 자체가 아니라 하빙이 가진 것에 관심이 있다는 뜻이었다. 사람이 아니라 도구로 보고 있다는 것—그 판단이 서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나는 그 정보를 마음에 새겼다.
돌아가는 길, 하빙의 집 앞에서 임서희와 마주쳤다. 그녀는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으나, 걸음걸이는 조심스러웠다. 신분을 과시하지 않으려는 듯한, 계산된 겸손이었다. 손짓 하나, 눈길 한 번까지 다듬어진 듯 매끄러웠다. 저잣거리에서 자란 사람의 몸짓이 아니었다.
"하빙 낭자를 뵈러 왔어요." 그가 하원구에게 말했다. 목소리가 부드러웠다. "낭자와 자매처럼 지내고 싶어서요."
자매처럼. 그 말에 나는 속으로 웃었다. 정실이 첩이 될 사람에게 자매를 청하는 것은, 경계를 풀게 하려는 수작이었다. 자매라는 말은 다정하게 들리지만, 그 이면에는 위아래를 미리 정해두는 뜻도 있었다. 언니와 동생. 그 서열 안에서 하빙은 자연히 아래에 놓이게 된다.
하빙이 마당으로 나왔다. 얼굴에는 억지로 만든 웃음이 걸려 있었다. 임서희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손을 잡는 동작이 지나치게 자연스러웠다. 여러 번 연습한 사람의 몸짓 같았다.
"낭자, 걱정 말아요. 제가 있으면 서방님도 낭자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거예요. 제가 지켜드릴게요."
지켜주겠다는 말과, 작은 아내로 들이겠다는 목적이 한 문장 안에 공존했다. 하빙은 그 말에 조금 흔들리는 듯했다. 위선적 친절이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사람은 외로울 때 가장 쉽게 흔들린다. 지금 하빙에게는 아버지의 병과 정해진 혼사밖에 없었다. 그 틈을 임서희가 정확히 짚고 들어온 것이었다.
나는 마당 구석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하빙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눈치채라는 신호였다.
하빙은 잠시 멈칫했으나, 곧 다시 임서희를 향해 웃어 보였다. 아직 완전히 믿지는 않는다는 뜻이었다. 다행이었다.
임서희는 마당을 나서며 나를 스쳐 지나갔다. 짧은 순간, 그녀의 눈이 나를 훑었다. 겉으로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한 얼굴이었으나, 눈동자의 움직임은 나를 재고 있었다. 저 여자도 계산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계산하는 자는 계산하는 자를 알아본다.
임서희가 돌아간 후, 하원구는 다시 방으로 하빙을 불러들였다. 나는 방문 밖 마당에 남아, 흙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발끝으로 밀어내며 안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들었다.
"빙아, 임 낭자까지 저리 청하시는데, 더 미룰 이유가 없다."
"아버지, 저는..."
"열흘 안에 대답을 드려야 한다. 강가에서 재촉이 심하다."
열흘. 시간이 정해졌다. 나는 방문 밖에서 그 대화를 듣고, 속으로 계산을 시작했다. 열흘 안에 하빙을 지킬 명분을 만들어야 한다. 단순한 호의로는 부족하다. 이 집안이 인정할 만한, 물질적이거나 신분적인 근거가 필요했다.
명분의 축은 셋으로 나뉜다. 하나,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여 은혜를 세운다. 둘, 그 은혜를 계약이라는 형태로 못박아 놓는다. 셋, 계약이 깨질 경우의 손해를 하원구 쪽에서 먼저 두려워하게 만든다. 세 가지가 맞물려야, 강가의 재촉도 임서희의 위선도 힘을 잃는다.
방을 나오는 하빙의 얼굴은 창백했다. 걸음도 힘이 없어, 문지방에서 잠시 비틀거렸다. 나는 그녀를 마당으로 불렀다.
"이연 님,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빙이 낮게 말했다.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아버지는 이미 마음을 정하신 듯하고, 임 낭자까지 저리 나서시니..."
"아버님의 병은 어느 정도입니까." 내가 물었다.
"명의도 고개를 저었습니다. 폐병이 깊어서, 웬만한 약으로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나는 잠시 침묵했다. 오백 년의 시간 동안 배운 것은 검뿐만이 아니었다. 허공검전의 벽에는 검로만이 아니라, 인체의 기맥을 다루는 법도 새겨져 있었다. 폐병 정도라면,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제가 아버님을 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말했다.
하빙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이연 님이 의술도 아십니까?"
"조금 배운 것이 있습니다."
하빙의 방으로 들어가 노인의 손목을 짚었다. 손끝에 닿는 맥이 가늘고 끊길 듯 이어졌다. 기맥이 심하게 막혀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손쓸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다. 진기로 며칠에 걸쳐 다스리면 호전될 가능성이 있었다. 노인은 눈을 반쯤 감은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낯선 손길에 경계하는 기색이 있었으나, 저항할 힘조차 없어 보였다.
"치료할 수 있습니다." 나는 방을 나오며 말했다. "다만, 시간과 조건이 필요합니다."
"조건이라 하시면." 하빙이 물었다.
나는 그녀를 마주 보았다. 지금이 판을 드러낼 순간이었다.
"낭자께서, 저와 계약을 맺어주십시오." 나는 말했다. "검시로."
"검시... 라 하시면."
"제가 낭자를 지키는 검이 되겠습니다. 그 대가로, 낭자는 제 곁에서 검을 배우고, 저를 도와주십시오. 아버님의 치료는 그 계약의 시작으로 삼겠습니다."
하빙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놀람과 의문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나를 바로 보았다.
"어째서... 저에게 이런 제안을 하십니까."
좋은 질문이었다. 나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진짜 이유를 다 말할 수는 없었다. 형님을 넘어서기 위해, 이 도성에 발판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 여인의 재능과 선량함이, 쓸만한 씨앗이라 판단했다는 것도.
"은혜를 입었으니, 갚고 싶은 것뿐입니다." 나는 그렇게만 답했다.
반은 진실이었다. 반은 계산이었다.
하빙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마당의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만 들렸다. 그러다 마당 밖에서 다시 마차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하원구가 먼저 뛰어나갔다.
"강 공자님, 아니 이렇게 또 오셨습니까!"
하빙의 얼굴이 다시 하얘졌다. 열흘이라던 기한이, 벌써 앞당겨지려는 조짐이었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발소리가 점점 커졌다. 강도현의 것이었다. 걸음이 무거웠다. 자신의 것을 확인하러 오는 자의 걸음이었다.
"낭자." 나는 낮게 말했다. "결정은 지금 내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마당 너머로, 강도현의 웃음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