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약속 장소는 학교 근처 오락실 옆 건물, 3층에 있는 작은 사무실이었다.
간판도 없었다.
계단은 좁고 어두웠다. 1층 오락실에서 흘러나오는 전자음이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삐빅, 삐빅. 게임오버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여기 뭐야."
하늬가 계단을 오르며 물었다. 신발 굽 소리가 또각또각 울렸다.
"내가 일하는 곳."
"일하는 곳이 왜 이렇게 후져."
"조용히 해. 곧 도착이야."
3층에 오르자 철문 하나가 나왔다. 정말 아무것도 안 붙어 있었다. 우편함에는 광고지만 잔뜩 꽂혀 있었고, 문 손잡이는 반쯤 녹슬어 있었다.
문을 열자 담배 냄새와 커피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책상 세 개, 모니터 여섯 대, 벽 한쪽엔 초콜릿 고스트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바닥엔 빈 컵라면 용기가 두어 개 굴러다녔고, 구석엔 접이식 매트리스가 반쯤 펴진 채 방치돼 있었다.
"이거..."
하늬가 포스터 앞에 멈춰 섰다.
눈동자가 포스터를 위아래로 훑었다.
"이 게임 알아?"
"당연히 알지. 우리 학교에도 이거 하는 애들 많아. 근데 이거 만든 사람이..."
"나야."
하늬의 눈이 커졌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완벽한 가면이 살짝 벗겨진 얼굴.
"거짓말."
"진짜야. 검색해봐, 개발자 인터뷰 있어."
하늬가 휴대폰을 꺼내 급하게 검색했다.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조급하게 움직였다.
화면을 보는 눈이 흔들렸다.
"...진짜네."
"뭘 그렇게 놀라."
"놀랄 만하잖아. 프로필 사진도 없고 이름도 가려놨는데 뭐야, 은둔형 개발자냐."
"비슷해."
"근데 진짜 얼굴 여기 있는 사람이었네."
하늬가 휴대폰을 든 채 나를 빤히 올려다봤다.
그 시선이 이상하게 오래 머물렀다.
"야, 하준이 왔냐."
안쪽에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호태 형이었다.
덥수룩한 머리에 슬리퍼를 신고, 손엔 컵라면.
젓가락으로 면을 후루룩 빨아들이며 걸어 나왔다.
"어, 형."
"옆에 여자애는 누구야."
"취재원."
"뭔 취재원이야, 여자친구 아니고?"
"여자친구인 척하는 취재원."
호태 형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컵라면 국물이 넘칠 뻔했다.
"뭐냐 그 설정, 신작에 넣을 거야?"
"안 넣어."
"아깝다. 요즘 그런 거 잘 팔리는데."
하늬가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어어, 편하게 있어. 여기 다 이상한 애들뿐이니까."
호태 형이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다른 자리에 앉은 개발자 두 명이 고개도 안 들고 손만 흔들었다.
한 명은 헤드셋을 낀 채 뭔가 중얼거리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모니터에 코드를 잔뜩 띄워놓고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저긴 준수 형, 저긴 태리 누나. 둘 다 개발자."
"인사도 안 해."
"바쁘면 저래. 신경 안 써도 돼."
하늬는 사무실을 둘러보며 계속 두리번거렸다.
낡은 화이트보드에는 알아볼 수 없는 그림과 일정표가 잔뜩 그려져 있었고, 벽 한쪽엔 팬들이 보냈다는 팬레터 몇 장이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여기 사람들 다 몇 살이야?"
"형은 스물아홉. 저기 둘은 스물넷, 스물다섯."
"근데 고등학생인 너랑 같이 일해?"
"내가 대표니까."
하늬가 말을 잃었다.
입이 살짝 벌어졌다가 다시 다물어졌다.
"..."
"왜 그런 표정이야."
"아니, 그냥. 너 진짜 뭐 하는 애야."
"학생."
"학생이 회사를 운영하냐."
"운영이라기보단 그냥... 시작한 거지."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하늬가 자리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슬쩍 봤다.
캐릭터 디자인 시트가 떠 있었다. 유령 캐릭터 몇 종의 표정 변화가 컷마다 나뉘어 그려져 있었다.
"이거 되게 잘 그렸다."
"우리 아트팀 실력이 좋아."
"이 캐릭터 이름 뭐야?"
"코코. 초콜릿 유령이라서."
"이름 되게 성의없다."
"직관적인 게 좋은 거야."
하늬가 픽 웃었다. 오늘 처음 보는 진짜 웃음이었다.
"...너 진짜 신기하다."
"뭐가."
"학교에서는 아무도 이런 거 몰라. 다들 너 그냥 조용한 애라고만 생각하는데."
"굳이 알릴 필요 없으니까."
"왜 안 알려. 이렇게 대단한데."
순간 말이 막혔다.
대단하다는 말을 들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났다.
손끝이 살짝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별거 아닌 말인데 왜 이렇게 낯설게 들리는지.
"몰라. 그냥 학교랑 이거는 분리하고 싶었어."
"분리라니."
"학교에서 나는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는 애고, 여기서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이고. 두 개가 섞이면 피곤해."
하늬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시선이 이상하게 집요했다.
"나도 그런 거 하나 있으면 좋겠다."
"뭐?"
"분리할 수 있는 거. 나는 학교에서도, 학교 밖에서도 다 똑같이 살아야 해."
말투가 잠깐 가라앉았다.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
"완벽해야 하니까."
그 말이 이상하게 무겁게 들렸다.
장난스럽게 넘길 수 없는 무게였다.
"완벽 안 해도 되지 않아?"
"넌 몰라."
짧게 답하고 하늬는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더는 묻지 않았다.
묻고 싶은 말이 몇 개 더 있었는데, 그냥 삼켰다.
호태 형이 저 멀리서 라면 국물을 후루룩 마시며 우리 쪽을 흘끔거렸다. 뭔가 눈치를 챈 표정이었지만, 다행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 형이 조용한 건 오늘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날 나는 노트북에 새로운 문장을 적었다.
『그녀는 완벽함이라는 갑옷을 입고 있었다.』
왜인지 그 문장이 취재 노트가 아니라 진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손끝으로 화면을 톡톡 두드리다가, 그 문장 아래 한 줄을 더 적었다가 지웠다.
지운 문장이 뭐였는지는 나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사무실을 나설 때쯤 하늬는 포스터 앞에 다시 한 번 멈춰 섰다. 코코의 웃는 얼굴을 손끝으로 살짝 스치듯 만지고는, 아무 말 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돌아가는 길, 오락실 앞을 지날 때 안에서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늬가 그 소리에 잠깐 걸음을 늦췄다.
"여기 자주 와?"
"가끔."
"혼자?"
"어. 형들은 안 오고."
"그럼 나도 와도 돼?"
"오락실을?"
"아니, 사무실."
하늬가 조용히 물었다.
"응. 다들... 신경 안 써서 좋았어."
그 말투가 평소보다 훨씬 낮고, 진짜 같았다.
가로등 불빛이 하늬의 얼굴 반쯤을 비추고 있었다. 표정에서 평소의 그 완벽한 각도가 슬쩍 무너져 있었다.
나는 잠깐 대답을 미뤘다가 끄덕였다.
"마음대로 해."
하늬의 얼굴에 아주 작은 미소가 스쳤다.
계약 관계라던 얼굴이 잠깐,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골목을 벗어나며 하늬가 휴대폰을 다시 꺼내 무언가를 검색했다. 화면 불빛이 얼굴을 아래에서 위로 비췄다. 나는 그게 뭔지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하늬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휴대폰 화면을 든 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이거 봤어?"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다.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