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벚꽃이 늦게까지 남아 있는 골목이었다.
하굣길, 나는 하늬와 함께 뒷길로 돌아가고 있었다.
원래는 큰길로 가는 게 맞았다.
버스 정류장도 가깝고, 편의점도 있고.
근데 하늬가 뒷길로 가자고 했을 때, 나는 별 고민 없이 그러자고 했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 길로 가면 더 멀잖아."
"응. 근데 여기 벚꽃 예쁘잖아."
하늬가 나뭇가지를 올려다봤다.
바람이 불자 꽃잎 몇 개가 떨어져 어깨에 앉았다.
하늬는 그걸 털어내지 않았다.
그냥 두었다.
이상하게 그 모습이 눈에 오래 박혔다.
"이런 데 좋아해?"
"응. 아무도 안 보니까."
"뭘."
"내가 웃는 거, 안 웃는 거. 여기선 아무도 확인 안 해."
하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학교에선 항상 확인당하는 기분이거든. 표정이 이상한지, 성적이 흔들렸는지, 다들 지켜봐."
나는 잠자코 들었다.
이 얘기가 취재 노트에 들어갈 만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냥, 듣고 싶었다.
펜을 꺼낼 생각도 안 났다.
"넌 안 힘들어? 게임 만들고, 회사 다니는 것처럼 일하고."
"힘들지. 근데 학교보단 편해. 거기선 아무도 나한테 기대 안 하니까."
"기대 안 받는 게 편해?"
"어. 실망시킬 일이 없잖아."
하늬가 잠깐 멈춰 섰다.
발끝으로 떨어진 꽃잎을 톡, 건드렸다.
"나는 그게 제일 무서운데."
무슨 말이냐고 물으려 했다.
근데 하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기대받는 거. 그거 잃을까 봐. 그래서 계속 완벽해야 하고."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던 것 같다.
아니, 내가 착각한 걸 수도 있다.
하늬는 원래 목소리가 갈라지는 애가 아니니까.
뭔가 더 물어보려던 순간, 골목 끝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야, 만화책 내놔."
"놓으라니까!"
안경 쓴 남학생 하나가 벽에 밀쳐진 채 세 명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손에 든 만화책을 뺏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가방은 이미 바닥에 떨어져 내용물이 흩어져 있었다.
하늬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방금까지 그 여유롭던 표정이, 마치 스위치가 꺼진 것처럼 사라졌다.
"저거..."
"모른 척하자."
말은 그렇게 했는데, 발이 이미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방금 입으로 뭐라고 했으면서, 몸은 딴짓을 하고 있으니.
"거기 뭐 하냐."
세 명이 동시에 나를 돌아봤다.
체격이 나보다 좋아 보이는 애들이었다.
한 명은 팔뚝에 문신 같은 걸 그려놨는데, 아마 매직펜으로 그린 티가 났다.
"뭐야, 넌."
"별거 아니고, 그거 좀 놓고 가주면 안 되냐."
"참견하지 말고 가라."
"만화책 하나 뜯어서 얻는 게 뭔데."
괜히 도발적인 말투가 튀어나왔다.
뭔가에 화가 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학교 얘기를 듣고 난 직후라서였을까.
기대받는 게 무섭다는 말, 확인당하는 기분이라는 말.
그 말들이 아직 귀에 남아 있었다.
하늬가 뒤에서 옷깃을 잡았다.
"하준아, 그냥 가자."
"잠깐만."
안경 쓴 애가 이 틈을 타 만화책을 안고 도망쳤다.
발소리가 순식간에 골목 저편으로 사라졌다.
세 명의 시선이 그대로 나에게 옮겨왔다.
"야, 이거 재밌어졌네."
한 명이 씩 웃으며 다가섰다.
웃는 얼굴인데 눈은 안 웃고 있었다.
그게 더 소름 끼쳤다.
"하준아."
하늬의 목소리가 떨렸다.
손이 다시 내 옷깃을 꾹 잡았다.
그 손끝이 차가웠다.
방금까지 벚꽃 아래서 온기가 남아 있던 손인데, 순식간에 식어버린 느낌이었다.
"괜찮아. 별일 없을 거야."
말은 그렇게 했는데, 상황이 별로 괜찮지 않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세 명이 한 명을 둘러싸는 상황에서, 별일이 없을 거라는 말이 얼마나 우습게 들리는지도 알았다.
"쟤 좀 예쁘네."
한 명이 하늬를 힐끗거렸다.
눈빛이 위아래로 훑는 게 느껴졌다.
순간 뭔가 뒤통수를 확 스치고 지나갔다.
화 같은 게 아니었다.
그보다 더 뜨겁고 즉각적인, 몸이 먼저 반응하는 어떤 것.
"저 여자애는 신경 쓰지 마."
"왜, 여자친구야?"
"그럴 수도 있고."
웃기지도 않은 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지금 이 상황에 뭘 하는 건지 스스로도 몰랐다.
이 남자가 진짜, 싸움 나기 직전에 뭐 하는 거야.
근데 말은 벌써 나가버린 뒤였다.
"야, 저 새끼 재수 없는데."
한 명이 어깨를 밀쳤다.
생각보다 세게 밀려서 몸이 살짝 기울었다.
"하준아, 도망가!"
하늬가 소리쳤다.
나는 대답 대신 그 애의 손을 밀어냈다.
손끝이 닿는 순간 하늬가 놀란 눈으로 나를 봤다.
"뛰어. 뒤돌아보지 말고."
"싫어, 같이..."
"뛰라니까."
짧게 소리치자 하늬가 멈칫하며 물러섰다.
얼굴에 갈등이 그대로 드러났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 짧은 순간에 온갖 표정이 다 스쳤다.
그다음 순간, 옆에서 주먹이 날아왔다.
턱에 뭔가 둔한 충격이 퍼졌다.
시야가 잠깐 흔들렸다.
입안에서 쇠 맛 같은 게 느껴졌다.
골목 저편에서 하늬가 뛰어가다 멈춰서 뒤를 돌아보는 게 보였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입 모양으로 뭔가 외치고 있었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내 이름 같았다.
또 한 번, 옆구리에 뭔가 박혔다.
숨이 턱 막혔다.
쿵.
무릎이 꺾이면서 바닥에 손을 짚었다.
손바닥에 아스팔트의 거친 감촉이 그대로 박혔다.
따끔한 통증이 뒤늦게 올라왔다.
머리 위에서 세 명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뭐가 그렇게 웃긴지, 나는 하나도 이해가 안 됐다.
멀리서 하늬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거기 그만해!"
그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지, 아니면 내 정신이 흩어지는 건지 구분이 안 됐다.
시야 가장자리가 뭉개지듯 흐릿해졌다.
뛰라고 했잖아.
뒤돌아보지 말라고 했잖아.
근데 발소리가, 분명 이쪽으로 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마지막으로 본 건 하늬가 골목 안으로 다시 뛰어들어오는 모습이었다.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완벽하지 않았다.
숨은 이미 거칠어져 있었고, 눈에는 뭔가 그렁그렁한 게 차 있었다.
저러다 다치면 어쩌려고.
그 생각이 든 순간, 시야가 완전히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