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최애가 내 의붓동생이라니

1화

새벽 두 시, 이서윤의 방은 모니터 불빛 하나로만 밝았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가로등 빛조차 차단한 방 안. 유일한 광원은 책상 위 모니터였다. 화면 속에는 파스텔 색 머리카락을 흔들며 웃는 캐릭터가 있었다. 별나래. 서윤이 반년째 밤마다 접속하는 이름이었다. — 나래 짱, 오늘도 늦게까지 있어줘서 고마워요. 채팅창에 후원 문구가 올라갔다. 서윤의 이번 달 알바비 절반이 그 세 줄짜리 문구 속에 들어 있었다. 후회는 없었다. 늘 그랬다. '저 목소리 하나로 하루를 버틴다니까.' 그녀는 턱을 괴고 화면을 바라봤다. 나래의 웃음소리는 언제나 청량했다. 꾸밈없이 맑은, 그러면서도 어딘가 사람을 홀리는 웃음. 화면 속 캐릭터가 손을 흔들 때마다 서윤의 입꼬리도 따라 올라갔다. 방송은 새벽 세 시까지 이어질 예정이었다. 서윤은 내일 아침 아홉 시 수업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마우스를 놓지 못했다. 채팅창을 스크롤하며 다른 팬들의 반응을 확인했다. 다들 비슷했다. 나래의 웃음 하나에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는 사람들. 그런데 그날 밤, 커뮤니티 알림이 떴다. [단독] 별나래 비공개 방송 유출.. 남성 프로게이머와 2인 방송? 서윤의 손끝이 멈췄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화면 하단에 떠 있는 나래의 웃는 얼굴과, 방금 본 저 자극적인 제목이 겹쳐지지 않았다. 아니, 겹쳐지지 않아야 했다. '뭐야, 이거. 조작 아니야?' 딸깍. 링크를 눌렀다. 화질이 거친 캡처 영상이었다. 나래의 목소리가, 낯선 남자의 목소리와 뒤섞여 흘러나왔다. 영상 속 나래는 방송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더 편안하고 느슨한 말투를 쓰고 있었다. — 나래님 이거 또 저 이겼는데요? — 아 진짜, 봐줘요 오빠~ 오빠. 그 두 글자가 귀에 박혔다. 서윤은 숨을 들이켰다.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 배신감인지 질투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손바닥에 땀이 배었다. 영상은 삼 분 남짓이었지만, 서윤에게는 삼십 분처럼 느껴졌다. '유니콘'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서윤은 웃어넘겼다. 좋아하는 크리에이터에게 연애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소유욕이 강한 팬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후원도, 밤마다의 접속도, 단지 취향의 문제라고. 하지만 지금 이 감정은— 손이 떨렸다. 영상을 다시 재생했다. 한 번, 두 번. 나래의 웃음소리가 남자의 목소리에 겹칠 때마다 속에서 뭔가가 뒤틀렸다. 자신에게만 보여주는 웃음이라고 믿었던 그 웃음이, 실은 다른 누군가에게도 똑같이 흘러가고 있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었다. 서윤은 익명 계정으로 커뮤니티 창을 열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추지 않았다. 타이핑 속도는 평소보다 두 배는 빨랐다. [겜창놀이 아니고 별나래 이거 선 넘은 거 아니냐. 팬들 다 속이고 뒤에서 남자랑 놀아난 거잖아.] 문장을 쓰고 지우고 다시 썼다. 조금 더 자극적인 단어를 골랐다. '배신', '위선', '가짜'. 어느새 세 문단짜리 글이 완성되어 있었다. 엔터를 눌렀다. 철컥. 방문을 닫는 소리처럼, 그녀의 손끝에서 무언가가 닫혔다. 게시글이 올라간 화면을 바라보며 서윤은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후련한 것 같기도 했고, 뭔가 잘못한 것 같기도 했다. 두 감정이 뒤섞여 잠들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새벽 네 시가 넘어서야 눈을 감았다. 다음날 아침, 등굣길 지하철 안에서 서윤은 핸드폰을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게시글은 어느새 조회수 십만을 넘겼고, 캡처되어 트위터로, 인스타로 옮겨 붙었다. 실검에는 '별나래 저격'이 걸려 있었다. 댓글창은 이미 전쟁터였다. 누군가는 서윤의 글을 인용하며 나래를 향한 비난을 쏟아냈고, 또 누군가는 사생활 침해라며 반박했다. 서윤은 그 소용돌이의 시작점이 자신이라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는데.' 죄책감이 슬쩍 스쳤지만, 서윤은 애써 지웠다. 잘못한 건 나래다. 팬들을 속인 건 나래다. 나는 그저 진실을 말했을 뿐이다. 그렇게 몇 번이고 되뇌었다. 지하철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서윤은 애써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수업 시간에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노트에 필기를 하다가도 자꾸 실검 순위가 궁금해졌다. 쉬는 시간마다 화면을 켜서 확인했다. 나래의 채널 구독자 수는 이미 몇천 명이 줄어 있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그날 저녁, 서윤의 아버지가 식탁 앞에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서윤아. 오늘 새엄마랑 동생이 이사 온다. 서윤은 눈을 깜빡였다. 숟가락을 들고 있던 손이 잠시 멈췄다. — 갑자기요? — 갑자기는 아니지. 진작 말했잖니. 오늘부터 같이 사는 거야. 아버지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서윤은 그 담담함 속에 숨은 조심스러움을 읽어냈다. 재혼이 결정되고, 새엄마와 그 딸이 이 집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을 몇 주 전부터 들었지만, 실제로 오늘이라는 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초인종이 울렸다. 딩동. 서윤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현관으로 나갔다.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문을 열었다. 캐리어 두 개, 그리고 그 옆에 선 여자아이. 하얀 얼굴, 살짝 처진 눈매, 서윤보다 한 살 어려 보이는 앳된 얼굴이었다. 낯선 얼굴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서윤은 짧게 눈으로 훑었다. 캐리어 손잡이를 쥔 손, 어깨에 멘 작은 가방, 그리고 조금 긴장한 듯한 자세. — 안녕하세요, 언니. 저는 나래예요. 이나래. 그 순간, 여자아이가 웃었다. 에헷. 웃는 방식이, 웃음소리의 높낮이가, 그 짧은 웃음 뒤에 붙는 숨소리까지— 서윤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이 웃음소리, 나 알아.' 숫자로 셀 수도 없이 반복해서 들었던 웃음이었다. 매일 밤, 화면 너머로.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던, 서윤의 하루를 버티게 해줬던 그 웃음소리가 지금 눈앞에서, 사람의 입으로, 실제로 울리고 있었다. 서윤의 손에서 핸드폰이 떨어질 뻔했다. 간신히 다시 움켜쥐었지만, 손끝은 여전히 떨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어젯밤 자신이 올린 그 글이, 자신이 조롱했던 그 영상 속 목소리가, 지금 자신의 새 동생이 되어 서 있었다. — 언니? 왜 그래요, 얼굴이 하얘요. 나래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 몸짓조차, 방송에서 봤던 그 각도였다. 익숙한 각도, 익숙한 웃음, 익숙한 숨소리. 서윤은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목 안쪽이 바짝 말라 있었다. 어제 자신이 쓴 문장들이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배신', '위선', '가짜'—그 단어들을 눈앞의 이 아이에게, 이제는 가족이 될 이 아이에게 쏟아부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목을 조여왔다. '설마, 아니겠지. 설마.' 서윤은 애써 부정하려 했지만, 저 웃음소리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였다. 반년 동안 매일 밤 들어온 소리를 잘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나래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린 채, 캐리어 손잡이를 놓지 않고 서윤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진하게,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그 무해한 표정이, 서윤에게는 어떤 칼날보다 날카롭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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