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최애가 내 의붓동생이라니

2화

거실 시계가 밤 열 시를 가리켰다.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서윤은 자기 방 침대에 걸터앉아 여전히 손끝을 떨고 있었다. 손바닥에 밴 땀을 이불에 문질러 닦아냈지만, 떨림은 가시지 않았다. '말도 안 돼. 말이 안 되잖아.' 머릿속에서 같은 문장이 몇 번이고 되풀이됐다. 마치 고장 난 재생기처럼. 확인이 필요했다. 눈으로 봐야 했다. 서윤은 숨을 한 번 크게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문을 여는 손끝이 미끄러웠다. 끼익— 문이 낮게 삐걱거렸다. 서윤은 그 소리에 놀라 자기 어깨를 움츠렸다. 복도는 어두웠고,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맞은편 방— 새로 나래에게 배정된 방— 문틈으로 옅은 파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방송용 조명이었다. 서윤은 벽에 몸을 붙이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발바닥에 닿는 마룻바닥이 서늘했다. 심장이 목 끝까지 올라온 것 같았다. 문에 귀를 붙였다. — 여러분, 오늘 좀 정신이 없었죠? 그 얘기는 나중에 할게요. 지금은 그냥, 나래랑 놀아요. 목소리가 문틈을 타고 흘러나왔다. 부드럽고, 나긋나긋하고, 어딘가 다정한 톤이었다. 서윤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분명했다. 그 목소리. 그 톤. 아침에 들었던 '이나래'의 목소리와 어젯밤 화면 너머 '별나래'의 목소리가 완전히 같았다. 억양의 끝맺음, 웃을 때 살짝 올라가는 어미, 숨을 고르는 타이밍까지. 서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그 감각이 너무 선명해서,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았다. '내 최애가... 내 동생이라고?' 머리가 새하얗게 비었다. 며칠 전까지도 화면 속에서만 존재하던 사람이, 자신이 그토록 응원하고 지켜봤던 사람이— 바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숨을 쉬고 있었다. 그리고 곧, 더 끔찍한 사실이 머리를 때렸다. 어젯밤 저격글. 그 저격글을 쓴 게 바로 나였다. 서윤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 아니, 어쩌면 자기 안에서 터져 나오려는 무언가를 막기 위해서였는지도 몰랐다. '내가... 내가 그걸...' 무릎이 후들거렸다. 서윤은 벽에 등을 기댄 채 그대로 미끄러져 앉았다. 문 너머로 나래의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지만, 이제는 그 내용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날 밤, 서윤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 천장을 바라보며 몇 번이고 어젯밤 자신이 썼던 문장들을 떠올렸다. 그 순간에는 정당하다고 믿었던 말들이, 지금은 칼날처럼 목을 겨누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학교에서도 서윤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수업 시간 내내 칠판의 글씨가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 선생님이 뭔가를 물었을 때도 대답을 하지 못해 반 아이들의 시선을 받았다. 급식실에서 친구들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소란을 떨었다. — 야 이거 봤어? 별나래 사생활 논란 진짜 커졌다. 프로게이머랑 사귀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와. — 소속사에서 반박 자료 낸다던데? — 근데 처음 글 쓴 애 누군지 진짜 궁금하다. 완전 디테일하게 알던 사람 같던데. 서윤은 숨을 죽이고 식판을 내려놓았다. 젓가락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내가 만든 불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어.' 옆자리 친구가 스마트폰 화면을 들이밀었다. — 서윤아, 너도 이거 봤어? 완전 난리 났던데. — ...안 봤어. — 왜 그래, 얼굴이 하얘. — 그냥... 속이 안 좋아서. 서윤은 대충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에서 친구들이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서윤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현관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그 얼굴을 떠올리자, 손이 저절로 굳었다. '들어가야 하는데...' 결국 문을 열었다. 조심스럽게 거실을 지나갔다. 새엄마는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고, 도마질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나래는 소파에 앉아 태블릿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서윤은 최대한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방까지 몇 걸음만 더 가면— — 언니. 부르는 소리에 서윤이 멈췄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등 뒤로 돌아보는 목이 뻣뻣했다. 나래가 태블릿 화면을 슬쩍 서윤 쪽으로 돌렸다. 서윤이 어제 쓴 게시글의 캡처였다. 화면 속 문장 하나하나가 눈에 박혔다. 자신이 손끝으로 눌러 완성했던 그 문장들. 서윤의 심장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 이거, 언니 계정 맞죠? 나래의 목소리에는 방송에서 들었던 달콤함이 조금도 없었다. 차분하고, 서늘했다.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 같았다. — 무, 무슨 말인지— — IP 추적 얘기는 안 할게요.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언니 표정 보면 답 나오는데. 서윤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어떤 변명도 떠오르지 않았다. '들켰다.' 나래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다가왔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마치 재판정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아까 낮에 봤던 여동생의 얼굴이 아니었다. 화면 밖에서 처음 본, 다른 얼굴이었다. — 저는요, 언니. 팬한테 배신당하는 것도 익숙하고, 저격 당하는 것도 하루이틀 일이 아니에요. 근데 그게 우리 집 안에서, 내 새언니 손에서 나왔다는 게 좀 재밌지 않아요? — 재, 재밌다고? — 네. 웃기잖아요. 언니는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제 목소리 듣는 거 좋아하고 있을걸요. 서윤의 얼굴이 새하얗게 굳었다. 부엌에서 들려오던 도마질 소리조차 멀어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알았지—' — 언니 방송 시청 기록, 다 남아 있는 거 알아요? 매일 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어떤 영상을 몇 번씩 돌려봤는지. 심지어 제가 방금 올린 영상에도 제일 먼저 달려와서 댓글 남기던 사람이었잖아요. 서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들이 하나씩 쌓여 목을 조여왔다. 나래가 눈을 살짝 접으며 웃었다. 방송에서 보던, 그 팬서비스용 미소였다. 하지만 지금은 무기처럼 느껴졌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지만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 언니. 우리, 얘기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그 말투는 질문이 아니었다. 통보였다. 서윤의 손끝이 떨렸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등 뒤는 벽이었고, 앞에는 나래가 서 있었다. 부엌 쪽에서 새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 얘들아, 밥 다 됐어. 나와서 먹어. 나래가 태블릿을 슥 내리며 다시 웃었다. 방금 전까지의 서늘한 얼굴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언제나처럼 사랑스러운 여동생의 얼굴로 돌아왔다. — 네, 엄마! 금방 가요. 그리고 서윤을 향해 낮게 속삭였다. — 밥 먹고, 제 방으로 오세요. 안 오면 어떻게 되는지... 언니도 알잖아요. 서윤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나래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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