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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대강당 안의 소음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누군가 마이크를 테스트하던 소리도, 의자를 끄는 소리도, 전부 멈췄다. — 서윤아, 오늘 진짜 예쁘다. 그 한마디가 공기를 가른 순간, 사람들의 고개가 일제히 두 사람 쪽으로 돌아갔다. 시선들이 화살처럼 꽂혔다. 서윤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목덜미까지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 뭐, 뭐야 갑자기. 여기서 왜 그런 소리를... 목소리는 날카로웠지만, 그 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서윤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도윤은 그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발 더 다가섰다. 거리가 좁혀졌다. — 나 너 좋아하는 마음, 하나도 안 변했어. 서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허공을 헤맸다. 주변에서 수군거림이 커졌다. '뭐야, 저 두 사람 헤어졌다더니.' '고백하는 건가?' '와, 저기서 저걸 저렇게 대놓고...' 말들이 겹치고 섞여 웅웅거리는 소음이 되어 대강당을 가득 채웠다. 서윤은 그 소음 속에서 팔짱을 끼며 애써 시선을 피했다. 손끝이 팔뚝을 움켜쥐고 있었다. — 헤어졌잖아. 이제 와서 뭐 하는 거야. 하지만 그 목소리는 평소의 서슬 퍼런 독설과는 확연히 달랐다.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서윤 자신도 그 떨림을 숨기지 못했다는 걸 알았는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도윤은 잠시 숨을 골랐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지만, 지금 물러서면 다시는 이 말을 못 할 것 같았다. — 네가 나쁜 말 해도, 나는 네가 좋은 사람이라는 거 알아. 한 박자 쉬었다. — 어제 은채한테 보낸 음성메시지 들었어. 너 계속 울고 있었잖아. 서윤의 표정이 완전히 무너졌다. 방금까지 서 있던 방어벽이 순식간에 균열을 일으켰다. — ...뭐? — 나 좋아한다고 했잖아. 좋아한다는 말 한 번을 못 해봤다고. 서윤의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 은채, 너... 그걸 왜 걔한테... 목소리가 갈라졌다. 멀찍이서 상황을 지켜보던 은채가 슬쩍 다가와 어깨를 으쓱했다. 표정에는 죄책감과 확신이 반씩 섞여 있었다. — 미안, 서윤아. 근데 이러지 않으면 너희 둘 영영 어긋날 것 같아서. — 은채야, 너 진짜... 서윤은 뭔가 더 쏘아붙이려다 말을 삼켰다. 화를 낼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당황한 얼굴로 도윤과 은채를 번갈아 보았다. 평소의 냉정하고 도도한 표정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지금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속마음을 들켜버린 어린아이 같았다. — 나...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뺨은 이미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시선은 바닥과 도윤의 얼굴 사이를 정신없이 오갔다. 침묵이 길어졌다. 그 침묵을 깬 건 주변에서 터진 작은 외침이었다. — 야, 인정해! 좋아하잖아! 곧이어 다른 목소리가 뒤따랐다. — 서윤아 힘내! 솔직하게 말해봐! — 안 부끄러워해도 돼, 우리 다 알아! 동아리 사람들 몇몇이 웃으며 두 사람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휘파람을 불었고, 누군가는 박수를 치는 시늉을 했다. 대강당 안의 분위기는 어느새 두 사람을 지지하는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 있었다. 서윤은 그 시선들을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어깨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지금 이 순간, 서윤을 압박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저 그녀가 스스로 입을 열 때까지, 숨죽이고 서 있었다. 그러다 문득, 작은 목소리로 서윤이 입을 열었다. — ...좋아해. 너무 작아서 도윤은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 뭐라고? 서윤이 고개를 들었다.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표정에는 처음으로 방어벽이 없었다. 완전히 벗겨진 얼굴이었다. — 좋아한다고, 이 바보야! 목소리가 커졌다. 이번엔 떨림보다 확신이 앞섰다. — 처음부터 좋아했어. 그런데... 그런데 부끄러워서 그렇게밖에 말을 못 했어. 좋아한다고 하면 네가 이상하게 볼 것 같아서, 그래서 계속 못된 말만 하고, 밀어내고... 말이 쏟아져 나왔다. 오랫동안 눌러왔던 것들이 한꺼번에 터진 것처럼. — 근데 진짜 힘들었어. 매번 너한테 나쁘게 말하고 나서 집에 가서 혼자 울고. 그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 알면서도 못 고쳤어. 도윤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며칠간 쌓였던 오해와 상처가 한꺼번에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목이 메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도윤은 천천히 손을 뻗어 서윤의 손을 잡았다. 손끝이 맞닿는 순간, 서윤의 몸이 살짝 떨렸다. — 이상하게 안 봐. 오히려 이제야 네 진짜 마음을 알게 돼서 다행이야. 서윤은 그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손가락을 살짝 말아 쥐었다. 마치 이 온기를 놓치면 다시 사라질 거라 믿는 사람처럼. 대강당 안에는 박수 소리가 조금씩 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몇 명이었지만, 곧 여기저기서 손바닥 마주치는 소리가 겹쳐졌다. 은채는 흡족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팔짱을 낀 채로, 마치 자기가 다 이뤄낸 일처럼 뿌듯한 표정이었다. '그래, 이거면 됐다.' 하지만 그 순간, 도윤의 시선이 대강당 입구 쪽으로 향했다. 거기, 문틀에 반쯤 몸을 걸친 채로. 아까 카페 앞에서 서윤과 웃으며 이야기하던 그 경영학과 선배가, 문 앞에 서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웃고 있지 않았다. 입가는 굳어 있었고, 눈빛은 이 상황을 저울질하는 것처럼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치 방금 벌어진 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계산하는 얼굴이었다. 도윤과 눈이 마주치자, 그는 아무 표정 변화 없이 조용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대강당을 빠져나갔다. 발걸음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도윤은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방금 되찾은 온기 속에서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가슴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저 사람, 그냥 넘어갈 사람 같지 않은데.' 카페 앞에서 봤던 그 미소가 떠올랐다. 서윤을 향해 짓던, 지나치게 여유롭던 그 미소. 지금 이 순간의 표정과는 완전히 달랐던 그 미소가. 도윤의 손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갔다. 서윤은 아직 그 시선을 보지 못한 채, 도윤의 손을 조금 더 세게 움켜쥐고 있었다. 뺨은 여전히 붉었고, 눈에는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채였다. 주변의 박수 소리와 응원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도윤의 시선은 이미 텅 빈 입구 쪽에 붙박여 있었다. 무언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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