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백설여자귀족학원의 정문은 눈처럼 새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졌다.
정문 옆에는 학교 이름이 금박으로 새겨져 있었는데, 아침 햇살을 받으니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였다.
'돈 좀 썼네.'
그 하얀 벽 안에 여학생이 90퍼센트, 남학생이 10퍼센트도 안 되는 학교가 있다는 걸 처음 들었을 때는 농담인 줄 알았다.
'농담이 아니었네.'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나를 향해 쏟아지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소리를 낮춰 속닥이기 시작했다.
"저기 봐, 남자애다."
"진짜 몇 명 안 된다더니."
'나도 알아, 나도 처음 알았거든.'
입학식은 별생각 없이 지나갔다.
교장이 무슨 말을 했는지 절반도 기억이 안 났다.
건국공로가문이라느니, 명문 사학의 전통이라느니, 그런 말들이 강당 스피커를 타고 울렸는데, 나는 그냥 옆에 앉은 여학생의 뒷목에 붙은 상표 스티커가 신경 쓰였다.
'저거 떼줘야 하나.'
결국 안 뗐다.
입학식 다음 날, 강당 전면 스크린에 클래스 배치 결과가 떴다.
A부터 K까지, 알파벳 순서로 등급이 매겨진 열한 개 반.
이번 학년 남학생 신입생은 정확히 열한 명이었고, 각 반에 딱 한 명씩 배치된다는 규칙을 나는 며칠 전에야 들었다.
왜 하필 열한 명이냐고 물었더니 김하린은 대답 대신 서류를 넘겼다.
"학교 방침이에요. 궁금하시면 홈페이지 찾아보세요."
"넌 알잖아."
"알아도 말 안 해요."
'이 여자는 진짜 왜 보좌관인 건데.'
김하린은 내 보좌관이다.
나이는 스물 초반쯤, 표정이 거의 변하지 않는 사람이고, 나에 대한 일이라면 뭐든 다 알고 있는 척을 한다.
실제로는 정말 다 알고 있어서 문제였다.
지난주에 내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두 개 먹은 것까지 알고 있었다.
그건 좀 무섭다.
강당 안은 배치 결과를 기다리며 조용한 긴장으로 채워져 있었다.
스크린에 이름이 하나씩 뜰 때마다 여기저기서 낮은 탄성이 터졌다.
"어, 저 애 A클래스래."
"쟤네 집안 대단하다더니."
나는 그냥 뒷줄에 서서 팔짱을 끼고 기다렸다.
'빨리 좀 불러줘.'
"강지우 학생."
스크린 앞에 선 교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왜 이름이 제일 늦게 나오냐.'
"K클래스."
순간 강당이 조용해졌다.
정확히는, 조용해졌다가 곧바로 웅성거림으로 바뀌었다.
주변에서 수백 개의 시선이 나에게로 꽂히는 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대놓고 뒤돌아서 나를 봤고, 누군가는 옆 사람 팔을 잡아당기며 뭔가를 속삭였다.
'뭔데, 왜 다들 그렇게 봐.'
나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K가 뭘 의미하는지 모르니까.
그런데 옆에 있던 여학생 하나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나를 힐끔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동정인지 흥미인지 구분이 안 되는 눈빛이었다.
멀찍이 앞줄에서는 안경 쓴 여학생이 아예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봐, 뿔 났나.'
입학 전 이 학교 홈페이지에서 본 소개 문구가 떠올랐다.
'백설여자귀족학원, 대한민국 건국공로가문의 자녀들이 다니는 명문 사학.'
건국 18대가라는 게 있다고 했다.
이가, 조가, 상원가 같은 오래된 성씨들이 이 나라의 뼈대를 세운 사람들 후손이라던가.
나는 그런 집안 출신이 아니다.
확실하다.
그러니 K클래스가 뭘 의미하는지도 감이 안 왔다.
식이 끝나고 강당을 빠져나오는데 김하린이 슬쩍 다가와 말했다.
"클래스 등급, 신경 쓰지 마세요."
"신경 안 쓰는데."
"쓰시는 것 같은데요."
'안 쓴다니까.'
사실 조금 신경 쓰였다.
복도를 걸어가는데 뒤에서 속닥이는 소리가 들렸다.
"저 얼굴로 K클래스라니."
"뭔가 사고 쳤나 봐."
'사고 친 건 맞는데, 그거랑 이거는 상관없거든요.'
나는 그냥 걸었다.
얼굴이 어떻다는 말은 익숙했다.
중성적이라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딱히 기분이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다.
다만 예전에는, 그러니까 중학교 때는 저런 시선들 앞에서 숨이 턱 막히곤 했다.
여자애들이 나를 보고 웅성거리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손끝이 얼음처럼 굳었다.
병원에서는 그걸 여성공포증이라고 불렀다.
급식실에서 여자애 여럿이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등에 식은땀이 흘렀고, 체육시간에 여학생 조와 짝이 되면 손끝이 떨려서 공을 놓쳤다.
그때는 정말 죽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그때는 진짜였다.
그게 사라진 건 작년 겨울, 교통사고를 당한 뒤였다.
트럭에 치여서 병원에 두 달 있었는데, 그 두 달 사이에 뭔가가 머릿속에 통째로 흘러 들어왔다.
다른 삶을 살았던 기억 같은 것.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그 기억을 겪고 나니 여자애들 무리 앞에서도 손끝이 떨리지 않았다.
대신 이상하게 사람이 좀 무심해졌다.
뭘 봐도 별로 놀랍지가 않았다.
병원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담당 의사가 내 얼굴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던 게 기억난다.
"이상하네, 검사 결과는 다 정상인데."
'그렇겠지, 안에 뭐가 들어왔는지는 검사로 안 나오니까.'
'이 학교도 그중 하나고.'
교실로 들어서자 문 앞에 붙은 명패가 눈에 들어왔다.
'K클래스'.
숫자가 아니라 알파벳으로 등급을 나누는 것부터가 이상했는데, K는 열한 개 중 가장 끝, 즉 최하위였다.
명패 글씨체마저 다른 반보다 좀 작게 인쇄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착각인가.'
착각이 아닌 것 같았다.
교실 안은 조용했다.
남학생이 한 명, 여학생이 스물아홉 명.
비율이 그럴싸하게 여자 학교임을 보여주는 숫자였다.
뒷자리에서 나를 흘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누군가는 노트북을 펴고도 화면 대신 나를 보고 있었고, 누군가는 필통을 여닫으며 괜히 소리를 냈다.
'또 시작이네.'
선생님이 들어와 교탁 앞에 서더니 종이 뭉치를 넘기며 말했다.
"이번 학기 K클래스 명단, 다들 확인했죠. 강지우 학생, 자리는 창가 두 번째 줄입니다."
"네."
짧게 대답하고 자리로 걸어갔다.
지나가는 길에 누군가 나를 향해 손을 살짝 흔들었다가 옆자리 애한테 뭐라고 눈치를 받고 도로 손을 내리는 게 보였다.
'뭐하는 건데.'
자리에 앉으니 옆 사람이 유난히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키가 큰 여학생이었다.
앉아 있는데도 나보다 머리가 반쯤 더 위에 있었다.
어깨가 넓고 손도 큰 편이었는데, 그런 체구와 안 어울리게 자꾸 몸을 작게 만들려는 게 눈에 보였다.
"저기……"
그 애가 뭔가 말하려다 얼른 입을 다물었다.
'말을 하다 마는 건 또 뭔데.'
"뭔데."
내가 먼저 물었다.
"아, 아니에요. 그냥……"
"그냥 뭐."
"아니에요, 진짜."
그 애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시선을 피했다.
'뭐야, 무섭게 안 했는데.'
나는 그냥 창밖을 봤다.
운동장 너머로 본관 건물이 보였고, 그 위 옥상에서 몇몇 여학생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나를 보는 건지, K클래스라는 표지판을 보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중 한 명은 팔짱을 끼고 서서 한참을 그렇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건 또 뭔데.'
수업 시작종이 울렸다.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고, 이름이 하나씩 불릴 때마다 대답하는 목소리들이 조용한 교실을 채웠다.
내 이름이 불렸을 때, "네" 하고 대답하는 순간 교실 뒤편에서 누군가 작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환청인가.'
확실한 건, 이 학교에서 나는 이미 뭔가의 표적이 되어 있다는 거였다.
왜인지는 아직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