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나는,
임원이 된 이후로 서하늘과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그녀를 둘러싼 팬클럽의 경계심도 비례해서 짙어졌다.
처음엔 그저 지나가는 시선 정도였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 힐끗거리는 눈빛, 급식실에서 내 뒤통수에 꽂히는 따가운 기운 같은 것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시선들은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갔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 등 뒤에 눈이 달린 것처럼 그들의 존재를 의식하며 걷게 되었다.
하늘회라 불리는 그 무리는 이제 대놓고 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교실 문 앞에 서 있다가 내가 나오면 슬쩍 눈을 마주치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고개를 돌리는 아이들, 복도 모퉁이에서 소곤거리다가 내가 지나가면 뚝 끊기는 대화. 그럴 때마다 나는 애써 못 본 척했지만, 손끝이 조금씩 차가워지는 걸 감출 수는 없었다.
"쉬는 시간마다 도서실에 가는 거, 다 봤어." 어느 날 오소영이라는 여학생이 내게 다가와 조심스레 말을 건넸는데, 그녀는 하늘회의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적의도 아니고 경계도 아닌, 그냥 어딘가 궁금한 듯한 눈빛.
오소영은 하늘회에서도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고, 나에게 적의보다는 순수한 호기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다른 아이들처럼 팔짱을 끼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고, 그저 옆에 슬쩍 붙어서 툭 던지듯 말을 걸어오는 식이었다.
"둘이 무슨 사이야?" 그녀가 묻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냥 임원 업무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목소리가 조금 빨리 나온 것 같아서, 스스로도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다.
"그렇구나." 오소영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표정에는 완전히 믿지는 못하겠다는 미묘한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그녀는 더 캐묻지 않고 돌아섰는데, 그 뒷모습이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서하늘과 나 사이의 미묘한 변화는 다른 방식으로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그녀가 나에게 도시락 반찬을 나눠주는 일이 잦아졌는데, 그럴 때마다 주변 시선이 따가워지는 걸 느끼면서도 나는 그 순간이 은근히 기다려지고 있었다.
"이거 먹어봐, 우리 엄마가 해준 건데 맛있어." 서하늘이 반찬통을 내 쪽으로 슬쩍 밀며 말했을 때, 나는 그 사소한 배려에서 그녀의 다정함을 느꼈다. 젓가락으로 집어 든 계란말이는 특별한 맛이 있을 리 없었는데도, 이상하게 오래 씹게 되었다.
"맛있어?"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을 때,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라는 게 정확한 이유였다.
주변에서 몇몇 아이들이 힐끗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서하늘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반찬통 뚜껑을 다시 닫았다. 그 무심함이 오히려 나를 더 조바심 나게 만들었다.
왕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그녀가, 나에게만은 조금씩 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는 걸, 나는 그때 확신하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늘 시원시원하게 웃고 누구에게나 다정한 서하늘이었지만, 나와 둘이 있을 때는 종종 말이 없어지거나, 괜히 딴청을 부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서야 왜 이런 감정이 자꾸 커지는 걸까. 처음엔 그저 신기하고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시작했을 뿐인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녀의 표정 하나, 말투 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흠칫 놀랄 때가 많았다. 수업 시간에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도, 정신을 차려보면 서하늘의 옆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한심했다.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한편 하늘회의 반응은 점점 더 예민해지고 있었다. 어느 날 방과 후, 나는 교문 앞에서 여학생 무리에게 둘러싸였다. 다섯 명쯤 되는 무리였는데, 그중 몇 명은 낯이 익었다. 늘 서하늘 곁을 맴돌던 아이들.
"너, 하늘 언니한테 무슨 짓 했어?" 가장 앞에 선 여학생이 팔짱을 끼며 물었는데, 그 목소리에는 명백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주변을 지나가던 아이들이 힐끗거리다가 슬쩍 발걸음을 빨리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나는 당황해서 손사래를 쳤지만, 그들의 눈빛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심장이 이상하게 빨리 뛰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떨리는 건지.
"언니가 요즘 좀 달라졌다고, 다들 그래." 다른 여학생이 덧붙인 말에, 나는 뭐라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목이 조금 메었다.
실제로 서하늘이 달라진 게 사실이었으니까, 그 변화를 만든 게 나라는 걸 부정할 수도 없었으니까. 예전보다 잘 웃고, 예전보다 나를 더 자주 찾고, 예전보다 조금 더 솔직해진 그녀. 그게 나 때문이라는 확신이 들 때마다, 기쁘면서도 동시에 두려웠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저 애매한 사과의 말을 남기고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는데, 그 과정에서 오소영이 무리 뒤편에 서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걸 보았다.
그녀의 표정에는 다른 아이들과 다른, 뭔가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화가 난 것도 아니고, 동정하는 것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에 걸쳐 있는 얼굴. 나는 그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려서, 걸어가는 내내 뒤를 한 번 돌아보고 말았다.
다음 날, 오소영이 다시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너, 하늘 언니 진짜로 좋아해?" 그 질문이 너무 직접적이어서,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복도의 소음이 갑자기 멀어지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나는 반사적으로 부정했지만, 내 목소리에 확신이 없다는 걸 스스로도 느꼈다. 손끝이 괜히 옷자락을 만지고 있었다.
오소영은 그런 내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알겠다는 듯 짧게 웃었다. 그 웃음이 비웃음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완전히 다정한 것도 아니었다.
"솔직하지 못하네." 그녀의 말이 정확히 내 마음을 찔러서,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어리석었다. 부정하는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는 걸, 나조차 알고 있었으니까.
그날 이후로 오소영은 종종 나에게 다가와 하늘회 안의 사정을 슬쩍 흘려주곤 했는데, 그 정보들 속에서 나는 서하늘이 짊어지고 있는 역할의 무게를 조금씩 더 이해하게 되었다.
"언니는 사실, 좀 힘들어해. 다들 자기를 왕자로만 보니까." 오소영이 나지막이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이 서하늘 본인의 입에서 나온 것보다 더 무겁게 다가왔다. 항상 씩씩하고 흔들림 없어 보이던 그녀가, 사실은 그 이름표를 버거워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가슴 어딘가를 눌렀다.
"다들 언니가 강하다고만 생각하지, 힘들 거란 생각은 안 하거든." 오소영은 그렇게 덧붙이며 먼 곳을 보는 눈을 했다. "그래서 네가 좀 신경 쓰였어. 언니 옆에 다르게 있어주는 사람 같아서."
그 말에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한편 오소영의 말투와 눈빛 속에서, 나는 그녀가 하늘회의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방향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지만, 그때는 그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그저 그녀가 조금 특이한 아이라고, 그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오소영이 낯선 남학생 무리와 함께 서 있는 모습을 교문 밖에서 목격하게 되면서, 나는 그 미묘한 시선의 의미를 뒤늦게 곱씹게 될 참이었다. 오소영은 평소와 다른 표정으로, 그 남학생들 중 하나와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나는 걸음을 멈춘 채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