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짝꿍이 전교 왕자라니

5화

나는, 교문 밖에서 오소영이 낯선 남학생들과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봤을 때, 처음엔 그저 다른 학교 친구들인가 하고 무심히 지나쳤다. 가방을 고쳐 메며 몇 걸음 더 걷다가, 문득 걸음이 멈췄다. 뭔가 눈에 걸리는 게 있었다. 그 남학생들의 옷차림이 우리 학교 교복이 아니라, 근처 남고인 정림고 교복이라는 걸 알아차린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스쳤다. 정림고라니. 우리 학교와는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인데, 학생들끼리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오소영이 그런 곳 남학생들과 나란히 서서, 웃고 있었다. 평소 그녀가 웃는 방식과는 조금 다른, 어딘가 힘이 들어간 웃음이었다. 다음 날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오소영, 저 사람들 누구야?"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흐렸다. "그냥, 선배들이야. 소개받았어." 오소영의 목소리에서 미묘한 불안이 느껴졌지만, 나는 그때 그걸 그저 낯선 관계에서 오는 어색함 정도로만 여겼다. 소개를 받았다는 게 누구를 통해서인지, 왜 굳이 정림고 선배들과 얽히게 됐는지, 더 캐물어야 했는데. 그때는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어리석었다. 서하늘은 그 소문을 듣고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평소라면 무슨 얘기를 들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던 그녀였는데, 이번엔 달랐다. 손에 들고 있던 펜을 책상 위에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정림고 선배들이라니." 그 말투에서 평소와는 다른 종류의 경계심이 느껴졌다. 단순한 불쾌함이 아니라, 뭔가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경계였다. "왜, 뭐 문제 있어?" 내가 묻자, 서하늘은 잠시 침묵했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그녀의 옆얼굴이, 늦가을 햇살 아래에서 유난히 창백해 보였다. 그러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거기 애들, 좀 소문이 안 좋아. 예전부터 여학생들한테 이상하게 접근하는 걸로 유명했거든." 그녀의 설명에 나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단순한 소문이라기엔, 서하늘의 목소리에 담긴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이상하게 접근한다는 게, 정확히 어떤 거야?" "몇 명씩 몰려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애를 정하고, 계속 주변을 맴도는 식이야. 처음엔 다정하게 굴다가, 나중엔……" 서하늘은 말을 끝맺지 않았다. 그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놓았을 뿐이었다. 오소영이 그런 무리와 얽혔다는 사실이, 단순한 우려를 넘어선 불안으로 다가왔다. 가슴 한복판이 뭔가에 눌린 것처럼 답답해졌다. 그날 오후, 나는 오소영을 따로 불러 다시 물었다. 복도 끝, 사람이 잘 지나지 않는 창가 자리였다. "그 선배들이랑 자주 만나?" 내 질문에 그녀는 잠시 시선을 피했다가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몇 번, 만났어. 그냥 재밌는 사람들이라 그래." 오소영의 대답에서 나는 그녀가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재밌는 사람들이라는 말과, 그 말을 하면서 자꾸만 손끝으로 소매 끝을 만지는 손짓이 어울리지 않았다.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는 나름 진심으로 걱정하며 말했지만, 오소영은 오히려 방어적인 태도로 응수했다. "너까지 이렇게 나올 필요 없어. 내 일이야." 그녀의 말투가 평소보다 딱딱해서, 나는 더 이상 파고들지 못하고 물러섰다. 복도를 걸어 나오면서, 나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오소영은 창가에 그대로 서서, 창밖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뒷모습이 유난히 작아 보였다. 한편 서하늘은 이 일을 계기로 오소영에게 더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마다 슬쩍 오소영 쪽을 살피는 시선이나, 점심시간에 굳이 오소영 근처에 앉는 자연스러운 동선 같은 것들이, 눈에 밟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그녀가 자신의 팬클럽 아이들을 단순히 성가신 존재로만 여기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내가 왕자 역할을 맡은 이상, 걔들을 지켜야 할 책임도 있는 거야." 서하늘이 창밖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에서 그녀가 짊어진 무게를 다시 한번 체감했다. 왕자, 라는 말이 그녀 입에서 나올 때마다 어딘가 조소가 섞여 있는 것 같았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그저 담담한, 오래전부터 짊어져 온 짐을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이제서야 왜 그녀가 그토록 팬클럽이라는 역할에 순응해왔는지 조금은 이해가 가는 것 같았다. 단순히 부여받은 이름표가 아니라, 그녀 스스로 선택한 보호자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왕자님, 이라 부르며 반짝이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겠지만, 그녀는 그 시선들 속에서 자신이 지켜야 할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새겨두고 있었던 걸까. 며칠 후, 학교 근처 분식집에서 우연히 마주친 오소영은 낯빛이 유난히 어두웠다. 떡볶이 국물이 담긴 접시를 앞에 두고도 손도 대지 않은 채, 창밖만 보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 내가 묻자, 그녀는 애써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어 보였지만, 그 웃음이 평소와 달리 부자연스러웠다. 입꼬리만 올라가고 눈은 전혀 웃지 않는, 그런 웃음이었다. "그냥, 좀 복잡한 일이 있어서." 오소영의 대답은 짧았고, 나는 더 캐묻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떠났다. 분식집 문을 나서면서도, 자꾸만 뒤가 신경 쓰였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오소영의 옆모습이, 여전히 국물 한 숟갈도 뜨지 않은 채 그대로 굳어 있었다. 서하늘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자, 그녀의 표정이 다시 한번 굳어졌다. 손끝으로 책상 모서리를 톡톡 두드리던 그녀가, 그 손짓을 멈추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선배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 다른 학교 여학생을 상대로." 그녀가 낮게 읊조린 말에, 나는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어떤 일이었는데?" "자세히는 몰라. 다만 그 여학생이, 한동안 학교를 못 나왔다는 것만 들었어." 그 한 문장이, 방금 먹은 것도 없는데 속을 뒤집어놓았다. "그럼 오소영도……" 내가 말을 잇지 못하자, 서하늘은 결연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우리가 눈여겨봐야 해." 그녀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무뚝뚝함 대신, 단호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 그 눈빛을 마주하고 있으니, 이상하게도 안심이 되면서도 동시에 더 큰 불안이 밀려왔다. 서하늘조차 이렇게 조심스러워한다는 건, 정말로 뭔가 심각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날 밤, 나는 오소영의 어두운 얼굴과 서하늘의 결연한 눈빛을 번갈아 떠올리며 잠들지 못했다. 이불 속에서 뒤척이다가, 휴대폰을 켜고 오소영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낼까 몇 번이나 고민했다. 결국 아무 말도 적지 못한 채 화면을 꺼버렸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걱정하지 말라던, 딱딱했던 그녀의 목소리가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정림고 선배들이라는 존재가, 단순한 스쳐 지나가는 인물들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 모두를 뒤흔들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그날 이후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가로등 불빛이 방 안 벽지 위에 흔들리는 그림자를 만들어냈고, 나는 그 그림자를 오래도록 바라보며, 내일은 오소영에게 다시 말을 걸어야겠다고, 이번엔 물러서지 않겠다고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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