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계룡산 초입부터 안개가 짙었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자마자 코끝으로 스며드는 공기가 서울과는 다르다는 걸 느꼈다. 습기를 머금은 나무 냄새, 흙 냄새, 그리고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서늘함. 도관까지 걸어 올라가는 삼십 분 내내, 나는 몇 번이나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들여다봤다. 화면 귀퉁이에 X표시가 뜬다.
"또 안 되네."
혼잣말이 입 밖으로 샜다. 이 산에 들어오면 늘 이랬다. 통화도, 문자도, 인터넷도 전부 먹통. 서울에서는 흔한 불편이 여기서는 당연한 일상이다. 처음 몇 번은 짜증이 났는데, 이제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긴다. 어차피 연락할 사람도 몇 없었다.
계룡산 도관, 정확히는 청허궁(淸虛宮)이라 불리는 이곳은 할아버지 이묵원이 천 년째 지키고 있다는 곳이다. 물론 천 년을 산 사람은 없다. 할아버지가 지킨 건 삼십 년, 그 앞으로 대대손손 이어진 게 천 년이라는 얘기다. 어릴 때 할아버지한테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진짜로 할아버지가 천 살인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이다.
돌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방학 때마다 오르는 계단인데도 매번 낯설게 느껴진다. 숨이 조금씩 가빠질 때쯤,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기와지붕, 낡은 단청, 마당 한가운데 우뚝 선 향나무.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할아버지.
"왔느냐."
짧은 인사였다. 할아버지는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도사복 차림으로 마당 한가운데 서 있는 모습이, 몇 달 만에 봐도 그대로다. 나이가 든 것 같지도, 젊어진 것 같지도 않다. 그냥 늘 저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네. 방학 끝나기 전에 인사드리려고요."
"인사는 무슨. 얼굴 보러 왔다 하면 될 걸."
말투는 무뚝뚝했지만, 그 안에 다른 게 섞여 있다는 걸 나는 안다. 반가움 같은 거. 도사복 소매를 늘어뜨린 채 할아버지가 몸을 돌렸다. 나는 그 뒤를 따라 걸었다.
마당을 지나며 나는 오래된 습관처럼 주변을 훑었다. 대문 옆 오래된 감시등, 반쯤 부서진 담벼락, 마당 구석에 쌓인 장작더미, 그리고 저 안쪝 별채—신상을 모신 방.
어릴 때부터 저 방에 함부로 들어가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이유는 몰랐다. 그냥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초등학생 때는 몰래 문틈으로 들여다보려다 할아버지한테 종아리를 맞은 적도 있다. 그 뒤로는 근처에 가는 것조차 피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그 방이 이상하게 신경에 걸렸다.
"할아버지."
"음."
"저 방, 아직도 못 들어가요?"
할아버지가 걸음을 멈췄다. 등을 보인 채로,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왜 갑자기 그건 묻느냐."
"그냥요. 궁금해서."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궁금함의 결이 조금 달랐을 뿐이다. 요즘 며칠 사이, 그 방 근처를 지날 때마다 이상하게 목덜미가 서늘했다. 뭔가가 나를 보고 있는 느낌. 처음엔 그냥 낡은 건물이라 그런가 보다 했다. 오래된 나무 냄새, 삐걱거리는 마루, 그런 게 사람을 괜히 위축시키니까.
하지만 기분 탓이라 여기고 넘겼는데, 오늘은 유난히 짙었다. 별채 쪽을 지나올 때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그 서늘함이, 착각이라고 하기엔 너무 선명했다.
"때가 되면 알게 될 게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걸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물어봐도 대답이 안 나올 거란 걸,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 집안 사람들은 다 이런 식이다. 물어보면 항상 "때가 되면"이라는 말로 끝맺는다. 그 '때'가 대체 언제인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저녁상은 단출했다. 산나물 몇 가지와 된장국, 그리고 조그맣게 부친 두부전. 할아버지가 손수 만든 건지, 아니면 근처에 사는 누가 챙겨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산속이라 반찬이 화려할 리는 없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여기서 먹는 밥은 늘 속이 편했다.
할아버지는 젓가락질을 하다 문득 나를 빤히 쳐다봤다.
"학교는 잘 다니느냐."
"네. 그냥 뭐."
"성적은."
"그냥 그래요."
짧게 답을 넘겼다. 할아버지는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국그릇을 들어 한 숟갈 뜨더니, 다시 물었다.
"아버지는 잘 지내시고?"
순간 목이 막혔다. 국그릇에 시선을 떨어뜨렸다. 숟가락을 쥔 손에 괜히 힘이 들어갔다.
"모르겠어요. 요즘 통 연락이 없어서."
할아버지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이 유난히 무겁게 들렸다.
"그놈은 옛날부터 그랬다. 도관이 답답하다고, 넓은 세상을 보러 가겠다고 뛰쳐나갔지."
"근데 저는 왜 자꾸 여기 데려오는 건데요."
말이 조금 날카롭게 나갔다. 뱉고 나서야 아, 좀 세게 말했나 싶었다. 할아버지는 놀라지 않았다. 그냥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대답했다.
"핏줄이니까."
짧은 대답이었다. 나는 더 캐묻지 않았다. 사실 캐묻는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옛날에 이 도관 체제에서 벗어나겠다고 뛰쳐나가 과학 탐사대인지 뭔지에 합류했다. 그러다 내가 태어난 뒤부터는 다시 마음이 바뀌어서, 방학마다 나를 여기 데려다 놓고는 자기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도관 지키는 삶은 싫다면서, 아들한테는 그 삶의 흔적을 굳이 이어붙이려 하는 사람. 나는 그런 아버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도망친 사람이 왜 나까지 여기 묶어두려는 건지. 그럴 거면 처음부터 다 데려가지 말든가.
밥을 다 먹은 뒤에도 그 생각이 계속 머리에 남았다. 할아버지는 별말 없이 밥상을 정리했고,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밤이 깊었다.
방에 누워 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천장을 보고 있으니 낮에 들었던 말들이 다시 떠올랐다. 때가 되면 알게 될 게다. 핏줄이니까. 대답 같지도 않은 대답들.
그러다 창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부스럭, 하는 소리.
짐승인가 싶어 넘겼다. 산속이니 너구리나 고양이 정도는 흔하게 돌아다닐 테니까.
그런데 또 한 번.
부스럭.
이번엔 좀 더 또렷했다. 발소리 같기도 하고. 짐승의 움직임과는 결이 달랐다. 뭔가 무게가 실린, 사람의 걸음 같은.
나는 이불을 걷고 창가로 다가갔다. 창틀에 손을 짚고 밖을 내다봤다. 밖은 온통 캄캄했다. 마당 저편, 별채 근처에서 뭔가 움직이는 그림자가 보인 것 같기도 했다.
착각인가.
숨을 죽이고 다시 눈을 비비고 봤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당은 그저 어둡고 조용했다.
"뭐야."
혼잣말이 짧게 나왔다. 신경이 곤두선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목덜미를 타고 올라왔다. 나는 한참을 창가에 서 있다가, 결국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잠은 늦게, 얕게 왔다.
다음 날 아침, 마당에서 할아버지가 낡은 감시등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감시등이라고 해봐야 대문 옆에 매달린, 오래돼서 색이 바랜 등이었다. 저게 뭘 감시한다고 하기엔 너무 낡았는데, 할아버지는 늘 저걸 신경 쓴다.
"할아버지, 뭐 하세요?"
"어제 개가 이상하게 짖었다."
"개요? 여기 개가 있었어요?"
"옆집 노인네 개가."
옆집이라고 해봐야 산 아래로 한참 내려가야 있는 집인데, 개 짖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는 말이었다. 할아버지가 감시등 렌즈를 손끝으로 슬쩍 문질렀다. 렌즈에 뭔가 긁힌 흔적이 있었다. 손톱으로 긁은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날카로운 걸로 스친 것 같기도 한 자국.
"누가 다녀갔나 봅니다."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나는 그 목소리에서 뭔가를 읽었다. 불안. 할아버지가 저런 얼굴을 하는 걸 나는 거의 본 적이 없다. 항상 무표정하거나, 아니면 무뚝뚝한 얼굴만 보고 살았는데.
"별거 아니겠죠."
애써 가볍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어젯밤 그림자가 다시 떠올랐다.
착각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가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 다시 별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눈빛이 유난히 오래 별채에 머물렀다.
"판아."
"네."
"오늘은 별채 근처에 가지 마라."
짧고 단호한 명령이었다. 나는 그 말투에서 처음으로 진짜 두려움을 느꼈다. 할아버지가 나를 이렇게까지 단단히 못 박아 말한 적이 없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묻지 말고 그냥 그래라."
대답 대신 명령만 돌아왔다. 나는 더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할아버지의 눈빛이, 평소와 다르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무언가가, 이 조용한 산속 도관에 스며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