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게임 만렙 심판자

1화

신진우는 통보서를 세 번 읽었다. 합격이었다. 서울 소재 대학 컴퓨터공학과, 정시 최초합. 종이 위 글자는 몇 번을 다시 봐도 바뀌지 않았다. 거실 소파에 앉은 아버지가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텔레비전 소리가 뚝 끊겼다. 그래서. 아버지가 짧게 물었다. 독립하겠습니다. 신진우가 더 짧게 답했다. 거실 공기가 잠깐 얼어붙었다. 무슨 돈으로. 아버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장학금 받습니다. 생활비는 알바로 충당하고요. 신진우는 이미 계산이 끝나 있었다. 스무 살 되기 전까지 모아둔 세뱃돈, 명절마다 삼촌들이 찔러준 돈, 손도 못 대게 했던 그 돈을 이제야 꺼낼 시간이었다. 통장은 이미 확인했다. 숫자를 몇 번이나 세어봤는지 모른다. 부족하지 않았다. 네 마음대로 되는 줄 아냐. 아버지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이미 마음대로 됐는데요. 신진우는 통보서를 흔들어 보였다. 합격증이 곧 탈출 허가서였다. 십팔 년 동안 문제집과 학원 시간표로만 채워진 방. 벽에는 대학 배치표가 붙어 있었고, 책상 위에는 모의고사 성적표가 날짜별로 정리되어 있었다. 컴퓨터는 리포트 작성용이라는 명목으로만 허락됐고, 게임은 언급조차 금기어였다. 친구 집에서 게임하는 걸 들킨 날, 아버지는 사흘 동안 말을 걸지 않았다. 그 침묵이 무서웠던 건 아니었다. 그저 지겨웠다. 그런데도 신진우는 몰래 공략 커뮤니티를 뒤졌다. 학원 쉬는 시간에, 화장실 안에서, 자습실 구석 자리에서. 실행조차 못 해본 게임, 무릉 온라인의 세계관을 통째로 외웠다. 남들은 실제로 플레이하며 익힌 것을, 그는 텍스트만으로 삼켰다. 몬스터 이름, 스킬 트리, 던전 공략법, 유저들 사이에서만 도는 은어까지. 머릿속에 지도 하나를 그려 넣은 셈이었다. 가본 적도 없는 지도를. 이상한 게 있었다. 공식 설정집에도 없는 지명이, 어느 유저의 죽은 게시글 하나에만 적혀 있었다. 작성일자 삼 년 전. 조회수 십일. 댓글 하나. 헛소리. 그게 전부였다. 신진우는 그걸 믿었다. 왜인지는 몰랐다. 그냥 맞는 것 같았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그 게시글만은 이상하게 선명했다. 다른 정보들과 결이 달랐다. 과장도 없고 홍보성 문구도 없었다. 그냥 사실을 적어놓은 것 같은 문장이었다. 짐 싸는 데 삼십 분이 걸렸다. 원래도 방에 물건이 별로 없었다. 책상 위 낡은 데스크톱 본체 하나, 옷가지 몇 벌, 그게 다였다. 박스 하나면 충분했다. 십팔 년을 산 방치고는 초라했다. 너 이러고 나가면 다시 안 받아준다. 아버지가 마지막 패를 던졌다. 부탁드린 적 없는데요. 신진우는 현관문을 열었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쾅. 문 닫히는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십팔 년 만의 첫 승리였다. 어쩐지 웃음이 났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손이 떨렸다. 긴장인지 후련함인지 구분이 안 됐다. 아마 둘 다였을 거다. 원룸은 반지하였다. 보증금 오백에 월세 삼십오. 부동산 앱으로 사흘 동안 뒤져서 찾은 가격이었다. 곰팡내가 살짝 났지만 상관없었다. 방음도 안 되고 햇빛도 안 들었지만, 그래도 이건 온전히 내 공간이었다. 택배로 부친 본체를 다시 조립하고 전원을 켰다. 케이블을 하나하나 꽂으면서 손끝이 자꾸 미끄러졌다. 몇 년 만에 만져보는 물건도 아닌데 괜히 서툴렀다. 위이잉. 팬 도는 소리가 방을 채웠다. 캡슐형 VR 기어는 아니었다. 그런 건 가격 자체가 사치였다. 구형 헤드셋 하나, 그거면 됐다. 박스 상태 그대로 삼 년을 처박아뒀던 물건이었다. 전원 버튼을 누르자 파란 불빛이 들어왔다. 무릉 온라인 서버 접속 화면이 떴다. 로딩바가 천천히 채워졌다. [신규 계정을 확인합니다.] 첫 접속이었다. 손끝이 떨렸다. 십팔 년을 기다린 순간치고는 초라한 방 안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캐릭터 생성 화면도 아직 뜨지 않았는데 벌써 심장이 뛰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냥 게임 하나 켜는 건데. 로그인 버튼에 마우스 커서를 올렸을 때, 핸드폰이 진동했다. 무시하려다 화면을 흘깃 봤다. 속보 알림이었다. [속보] 전국 각지에서 시민 1,024명 동시 실종… 정부 비상대책본부 가동 신진우는 그걸 읽었다. 한 번, 두 번. 숫자가 이상할 만큼 정확했다. 1,024. 2의 10제곱. 게임 유저라면 반사적으로 알아채는 숫자였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딱 떨어졌다. 뭐야 이거. 중얼거리는 순간, 화면이 하얗게 번졌다. 번쩍. 눈을 감았다 뜰 새도 없었다. 헤드셋 너머로 시야가 통째로 뒤집혔다. 의자에 앉아 있던 몸이 붕 떴다. 발밑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반지하 방이, 곰팡내가, 팬 도는 소리가 한꺼번에 멀어졌다. 소리도, 냄새도, 무게감도 전부 지워졌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로그인 버튼이었다. 버튼을 누르지도 않았는데 화면은 이미 로딩 중이었다. 의식이 끊기기 직전,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이거 진짜 게임 맞아. [접속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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