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성하율이 신진우 앞에 섰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향내가 짙어졌다.
값비싼 향유 냄새였다.
백단향 같기도 하고, 몰약 같기도 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가까이서 보니 얼굴이 더 반듯했다.
사제복 위로 걸친 은실 자수가 촛불에 반짝거렸다.
차림새만 보면 성인군자 같았다.
소환자님, 놀라셨을 겁니다.
성하율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놀란 정도가 아닌데요.
감옥에 끌려왔다가 이제는 왕궁 홀에서 계약 강요당하고 있으니까.
그 부분은 저도 유감입니다.
폐하의 방식이 다소 거칠었지요.
다소가 아니라 많이.
신진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속으로는 이미 이 남자를 스캔하고 있었다.
집행하지 않은 채로 죄질만 확인.
찌릿.
머릿속에서 익숙한 신호가 울렸다.
[대상: 대사제 성하율]
[죄업 스캔 완료]
[죄질: 대량 살인 의식 설계 및 방조 (1,023건), 뇌물 수수, 성노예 강요 (24건)]
[형벌 산출: 극형 — 완전 소멸]
신진우의 눈이 커졌다.
숫자가 정확했다.
1,023건.
다른 1,023명,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실종자 전원이었다.
이 새끼가.
표정 관리가 안 될 뻔했다.
신진우는 애써 태연한 얼굴을 유지했다.
목구멍 아래로 뭔가 뜨거운 게 치밀어 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살인 설계자가 웃으면서 손을 내밀고 있다.
그것도 저렇게 다정한 얼굴로.
대사제님은 이 소환에 대해 뭘 아십니까.
신진우가 슬쩍 미끼를 던졌다.
성하율의 미소가 아주 살짝 흔들렸다.
찰나였지만 놓치지 않았다.
소환 의식이야 왕실의 오랜 비전(祕典)이지요.
저는 그저 종교적 절차를 보조했을 뿐입니다.
보조라.
신진우는 코웃음이 나올 뻔한 걸 참았다.
설계하고 방조했다는 게 이미 스킬 창에 다 떴는데.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거짓말 위에 거짓말을 덧칠하는 꼴이었다.
그럼 그 절차라는 게, 사람 목숨 값으로 계약 마법 만드는 거였습니까.
성하율의 눈꼬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왕이 저 붙잡으려고 쓴 그 마법, 재료가 뭔지 궁금해서요.
설마 소환된 사람 숫자만큼 뭔가 갈아 넣은 건 아니죠?
성하율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끝으로 옷소매를 살짝 매만졌다.
아주 작은 동작이었지만 신진우의 눈에는 크게 보였다.
긁혔다.
순간, 하윤 6세가 왕좌에서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대사제, 저 자와 쓸데없는 말 섞지 말고 어서 계약을!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초조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성하율의 눈빛이 잠깐 왕을 향했다가 다시 신진우에게 돌아왔다.
그 짧은 순간,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오간 것 같았다.
말은 없었지만 눈빛으로 하는 대화였다.
소환자님, 저와 함께 성전으로 가시지요.
그곳에서 더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겁니다.
성하율이 손을 내밀었다.
다정한 손짓이었다.
손톱이 깨끗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사람 목숨 천 개를 설계했다는 손치고는 지나치게 곱다.
신진우는 그 손을 내려다봤다.
집행 안 함.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죄질을 확인했다고 곧바로 처리할 필요는 없었다.
이 남자가 알고 있는 정보가 더 필요했다.
1,023명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소환 의식의 전모가 뭔지.
그리고 저 왕이 대사제에게 뭘 시켰는지.
죽이는 건 언제든 할 수 있다.
정보는 죽이고 나면 못 얻는다.
계산이 순식간에 끝났다.
그거 좋죠.
신진우는 태연하게 그 손을 잡는 척, 살짝 비켜서 걸음을 옮겼다.
손끝이 스치듯 닿았다가 떨어졌다.
차가웠다.
사람 온기가 아니라 뱀 비늘 같은 느낌이었다.
성하율의 미소가 다시 완벽해졌다.
이쪽으로.
홀을 벗어나기 직전, 하윤 6세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낮게 깔렸다.
대사제, 실패하면 알지.
성하율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미소만 한층 짙어졌다.
신진우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실패하면, 이라니.
뭔가 정해진 계획이 있다는 소리였다.
자신을 이용해서, 혹은 자신을 없애서 얻으려는 뭔가가.
1,023명을 갈아 넣어야 했던 계약, 그 다음 순번이 자기라는 뜻일 수도 있었다.
감옥에서보다 더 위험한 곳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신진우의 입가엔 여전히 웃음이 걸려 있었다.
어디 한번 해보자고.
성전으로 향하는 복도,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또각.
또각.
성하율의 구두 소리가 앞장서 걸었다.
신진우는 그 뒤를 따르며 눈으로는 계속 주변을 훑었다.
벽마다 걸린 태피스트리, 촛대, 그리고 낯선 문장들이 새겨진 석판.
전부 나중에 써먹을 정보였다.
복도 끝에서 문 하나가 육중하게 서 있었다.
문양이 이상했다.
사람 형상이 겹겹이 새겨져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전부 고통스러운 표정이었다.
저게 성전 정문이라고?
신진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성하율이 문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봤다.
들어가시겠습니까, 소환자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미소 뒤에 뭔가 다른 게 도사리고 있다는 걸, 신진우는 이미 알고 있었다.
문이 삐걱, 하고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