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문주님, 제가 수라라뇨

3화

새소리가 그쳤다. 처음엔 착각인 줄 알았다. 산을 오르는 내내 어디선가 딱따구리 소리가 들렸고, 이따금 까치가 울어댔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소리들이 사라졌다. 조용해진 게 아니라, 지워졌다는 느낌이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다들 멈춰." 내가 손을 들자 뒤따르던 인원이 일제히 멈췄다. 서른 명의 발소리가 동시에 끊기는 그 순간, 산속은 완전한 정적에 잠겼다. 발밑에서 낙엽 밟는 소리조차 사라진 것 같았다. "언니, 왜 그래요?" 서아가 속삭이듯 물었다. 뒤에서 검집을 쥔 손이 살짝 떨리는 게 느껴졌다. 얘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조용히 해." 나는 감각을 넓게 펼쳤다. 검을 쥐면 유독 예민해지는 감각이 있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검문에 들어온 이후로 쭉 그랬다. 검을 뽑기 전부터 몸이 먼저 반응한다. 숲의 결이 잘못됐다. 나무 사이 그림자가 너무 짙고, 붉은 안개가 낮게 깔려 있다. 원래 이 시간대에, 이 고도에서 안개가 낄 리가 없다. 계절도 아니고 습도도 아니다. "저기." 도윤이 낮게 가리켰다. 숲 사이로 작은 형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일반 마물이라기엔 숫자가 이상했다. 하나, 둘, 셋... 세는 걸 포기할 정도로 많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바위 뒤로, 심지어 나무 위에서까지 형체들이 꿈틀거렸다. 마치 숲 전체가 숨을 쉬는 것처럼. "이거 보고된 규모가 아닌데." 인솔을 맡은 선임 하나가 낮게 신음했다. "이 정도면 하급 무리가 아니라..." 말끝이 흐려졌다. 그도 답을 모르는 거다. 보고서에는 분명 하급 마물 소규모 출몰이라고 적혀 있었다. 십수 마리, 많아야 스물.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건 그 열 배는 될 것 같았다. "떼거리로 뭉쳐 다니는 게 원래 습성이 아니잖아." 나는 검을 뽑았다. 스릉, 하고 날이 빠져나오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정적 속에서 그 소리는 마치 신호탄 같았다. 마물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붉은 눈동자들이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인다. 한 놈이 고개를 돌리면 옆 놈도, 그 옆 놈도 같은 타이밍에 고개를 돌렸다. 소름 끼치도록 정확했다. "통솔되고 있어." 나는 중얼거렸다. "뭔가한테." 그 순간 안개가 짙어졌다. 숨 쉬기가 조금 불편할 정도로. 폐 안쪽이 갑갑해지는 감각. 나는 숨을 짧게 두 번 나눠 쉬며 몸을 낮췄다. "전투 대형." 내가 외쳤다. "뒤로 물러날 생각 하지 마. 물러나는 순간 뒤가 뚫려." 은채가 재빨리 후방 인원을 재배치하는 소리가 들렸다. 삼각 대형, 서로의 등을 지켜주는 기본 진형. 손발이 잘 맞았다. 이런 순간에도 저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걸 보면, 은채가 조장을 맡은 게 괜히 그런 게 아니었다. 마물 떼가 달려들었다. 한 번. 검을 휘둘렀다. 서걱. 앞선 놈의 목이 갈라졌다. 목이 떨어지는 순간에도 눈알은 여전히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두 번. 다음 놈이 달려든다. 카앙! 검과 발톱이 부딪혔다. 손목이 저릿했다. 힘이 생각보다 셌다. 이 정도 크기에 이 정도 힘이라니, 하급이라고 보기엔 확실히 이상했다. 세 번. 놈의 몸통을 갈랐다. 피가 튀었다. 뜨겁고 비린 냄새. 안개 사이로 피 냄새가 섞이면서 속이 울렁거렸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매번 처음처럼 역했다.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숫자를 세는 것도 의미가 없어졌다. 검을 휘두르는 팔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판단은 뒤로 미루고, 몸이 먼저 반응하게 두는 수밖에 없었다. 동료들도 각자 자리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서아의 검이 마물 하나를 베고, 도윤의 창이 다른 하나를 꿰뚫었다. 은채는 조를 이끌며 후방을 방어했다. 세 사람 다 이런 전투에 익숙한 편이었지만, 얼굴에는 하나같이 긴장이 서려 있었다. "생각보다 약해!" 서아가 외쳤다. 목소리에 안도감이 섞여 있었다. 안심하기엔 일렀다. 나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주변을 훑었다. 숫자가 너무 많았다. 베어도 베어도 끝이 없다. 마치 강물을 손으로 막으려는 것 같았다. 하나를 베면 두 개가 그 자리를 메웠다. 이상했다. 진짜 이상한 건 숫자가 아니었다. 이 많은 놈들이, 어째서 한 번도 서로 부딪히지 않는가. 일반적인 마물 떼라면 흥분 상태에서 아군끼리도 서로 물어뜯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놈들은 완벽하게 대열을 유지하며 우리를 압박해오고 있었다. 지휘관이 있는 것처럼. 아니, 지휘관 정도가 아니었다. 마치 손가락을 움직이듯, 하나의 의지가 저 모든 개체를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뒤편, 안개가 가장 짙은 곳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거대한 그림자. 숲의 나무보다도 높은 실루엣이 천천히 떠올랐다. 나무 우듬지 위로 솟아오르는 그 형체를 본 순간, 검을 쥔 손에서 힘이 조금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순간 마물들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마치 명령을 받은 것처럼 일제히 물러났다. 방금까지 우리를 향해 달려들던 놈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뒤로 물러나 그 거대한 그림자 앞으로 길을 텄다. "뭐야, 저건." 도윤이 숨을 삼켰다. 창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안개 속에서 붉은 눈 하나가 떠졌다. 그 눈이 정확히, 나를 향했다.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훑고 지나갔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었다. 두려움이 아니라, 흥분에 더 가까운. 몸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반응하고 있었다. 마치 검이 나를 대신해 저것을 알아본 것처럼. 하지만 그 아래 깔린 본능적인 경고는 분명했다. 이건 위험하다. 지금까지 상대해온 어떤 것과도 다르다. [미확인 개체 감지] [등급 산정 불가] 검문 특유의 감정석 반지가 손가락에서 차갑게 진동했다. 등급 산정 불가라는 표기는 태어나서 처음 봤다. 하급, 중급, 상급, 재해급까지도 본 적은 있다. 그런데 산정 불가라니. 반지가 오작동하는 게 아니라면, 저것은 애초에 우리가 만든 등급 체계 안에 들어가지 않는 존재라는 뜻이었다. "언니." 서아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시선이 안개 속 그 거대한 실루엣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안개가 완전히 걷혔다. 그 아래 드러난 형체를 보고, 서른 명 전원이 숨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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