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문지기가 창을 바짝 들이대며 눈을 부라렸다.
"뭐라고 했느냐, 지금."
창끝이 도윤의 목 바로 앞에서 흔들렸다. 날카롭게 벼려진 쇠붙이가 아침 햇살을 받아 번뜩였다.
"확인만 해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도윤은 물러서지 않았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림은 없었다.
문지기의 눈이 가늘어졌다. 관청 앞을 지키는 자들의 시선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낯선 자, 신분이 불분명한 자, 그리고 무엇보다 겁먹지 않는 자를 가장 못마땅하게 여겼다. 두려워하면 밀어내면 그만이지만, 눈을 피하지 않는 자는 처리하기가 번거로웠다.
"확인? 뭘 확인해달라는 거냐. 너 같은 놈이 하루에도 몇 명씩 온다." 문지기가 창끝으로 도윤의 옷깃을 슬쩍 밀었다. "행색을 봐라. 이 나라 사람인지도 모르겠는 놈이."
"그것을 확인받고 싶은 겁니다." 도윤이 대답했다.
창끝이 그의 목 앞에서 멈췄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옆에 서 있던 다른 문지기가 짧게 웃음을 터뜨리며 동료의 어깨를 툭 쳤다.
"됐다, 그냥 들여보내. 어차피 안에서 알아서 쫓아낼 테니." 그가 말했다.
"쫓겨나도 상관없다. 이런 놈들은 관청 안에서 몇 번 굴려지고 나면 다시는 얼씬도 안 해." 창을 든 문지기가 마지못해 창을 내렸다. "들어가라. 대신 문제 일으키면 그때는 진짜로 목이 날아갈 거다."
도윤은 아무 대답 없이 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등 뒤에서 문지기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 세계에서는 신원 하나 밝히는 것조차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관청 마당을 가로질렀다.
관청 안으로 들어선 도윤은 접수대 앞에 섰다. 서기로 보이는 젊은 관리가 서류를 뒤적이다 고개를 들었다. 책상 위에는 낡은 문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관리의 손끝은 잉크로 검게 물들어 있었다.
"용건." 관리의 말투는 짧고 건조했다.
"저는 다른 세계에서 왔습니다. 그 세계와 이곳을 오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이 나라에 알리고, 신원을 인정받고 싶습니다." 도윤이 또박또박 말했다.
관리는 펜을 멈추고 그를 빤히 바라봤다. 몇 초간의 정적 뒤, 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세계라. 그런 이야기를 몇 번째 듣는지 아나." 관리가 옆에 있던 다른 서기에게 눈짓했다.
"또 저런 놈이군." 다른 서기가 낮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서류를 넘기던 손을 멈추지도 않았다. "요즘 들어 부쩍 많아졌어. 세계를 오간다, 신이 내려준 힘이 있다, 하는 놈들이."
"나라에서 뭔가 상을 준다는 소문이 도는 모양이지. 그러니 다들 자기가 특별하다고 우기는 거고." 첫 번째 관리가 서류에 도장을 찍으며 말했다. 쿵- 소리가 무심하게 울렸다.
"저는 증명할 수 있습니다. 시간과 장소만 마련해주시면─" 도윤이 다급히 말을 이었다.
"증명은 필요 없다. 여긴 그런 걸 확인해주는 곳이 아니야." 관리가 손을 저으며 말을 끊었다.
"그러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도윤이 물었다.
"모험가 길드나 가보시게. 거긴 별의별 놈들을 다 받아준다니까." 관리의 말투엔 비아냥이 가득했다.
"거기서도 안 되면 어쩌지." 다른 서기가 낄낄거리며 끼어들었다. "신전에 가서 신탁이라도 받아보라 하게. 신께서 직접 확인해주실지도 모르니."
두 관리가 서로 눈을 맞추며 웃었다. 도윤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손끝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관청을 나서는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증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군.'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세상은 네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고. 억울하다고 주저앉으면 그 자리에서 끝이라고.' 도윤은 그 말을 곱씹으며 관청 마당을 벗어났다. 문지기들이 다시 그를 흘겨봤지만, 이번엔 아무 말도 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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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 길드는 관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건물 안은 소란스러웠다. 무장한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거나 의뢰판을 살펴보고 있었다. 벽에 걸린 의뢰서마다 낡은 잉크로 몬스터의 이름과 보상 금액이 적혀 있었고, 한쪽 구석에서는 이미 취한 용병 하나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접수처에는 나이 지긋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도윤이 다가오자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손에 든 깃펜을 빙글빙글 돌리며 그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등록하시게?" 여인이 물었다.
"등록보다 먼저, 특별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도윤이 말했다.
"특별한 이야기라니." 여인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도윤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스킬을 설명했다. 두 세계를 오갈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이 나라에 어떤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는 것.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저 자식 또 헛소리 시작했네." 근처에서 술을 마시던 용병 하나가 큭큭 웃었다.
"세계를 오간다니, 그럼 마법사왕이라도 되겠구먼." 다른 용병이 맞장구를 쳤다.
"마법사왕은 개나 소나 하나. 저 정도 헛소리면 신왕은 못 되나." 세 번째 용병이 술잔을 탕- 내려놓으며 낄낄거렸다.
접수처의 여인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손으로 입을 가렸지만 어깨가 들썩이는 건 숨길 수 없었다.
"이보시게, 여기서 그런 이야기는 하루에도 열 번씩 나와. 진지하게 받아줄 사람 없네." 여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차라리 힘자랑을 해보게. 그게 더 빨리 인정받는 길이야."
"직접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도윤이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했다.
"보여줘도 상관없는데, 여긴 그런 걸 판단할 자격이 없어. 우린 의뢰나 중개하는 곳이야." 여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설령 자네가 진짜 그런 능력을 가졌다 해도, 그걸 인정하고 안 하고는 우리 소관이 아니지."
도윤은 입을 다물었다. 자격이 없다는 말이 뇌리에 박혔다. '그렇다면 자격이 있는 곳은 어디인가.' 그는 그렇게 되물었지만 대답해줄 사람은 없었다. 접수처의 여인은 이미 다른 서류로 시선을 돌린 뒤였다.
등을 돌려 나가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 미친 소리는 검성한테나 가서 해봐. 그 여자라면 믿어줄지도 모르지, 워낙 사람이 이상해서 말이야." 한 용병이 술잔을 든 채 낄낄거렸다.
"검성이 왜 이런 놈 말을 믿어. 오히려 목을 벨걸." 다른 용병이 맞받아쳤다.
"목을 베도 이상할 게 없지. 원래 그 여자,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말 한마디 없이 검부터 뽑는다더라." 세 번째 용병이 덧붙였다. "1년 전에 자기한테 헛소리하던 상단 놈 하나 그 자리에서 베어버렸다는 소문도 있어."
"그건 소문이 부풀려진 거고, 실제로는 그냥 겁만 준 거라던데."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이런 놈이 그 앞에서 세계를 오간다고 지껄이면 결말은 뻔하지."
웃음소리가 이어졌지만, 도윤의 귀에는 그 한마디만 선명하게 남았다. 검성.
'그게 누구지.' 도윤은 그렇게 되뇌며 걸음을 멈췄다. 이름조차 몰랐던 존재였지만, 지금 그에게 남은 유일한 실마리처럼 느껴졌다. 관청도, 길드도 그를 사기꾼으로 몰았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그 이름을 쫓는 것뿐이었다.
도윤은 다시 접수처로 걸음을 옮겼다.
"방금 말씀하신 검성이라는 분은 누구입니까." 그가 물었다.
여인은 귀찮은 듯 미간을 좁혔다. 깃펜을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S랭크 검사요. 이름은 한서윤. 명성이 자자한 분이니 이름은 들어봤을 텐데." 여인이 무심히 답했다.
"들어본 적 없습니다.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도윤이 솔직하게 말했다.
"온 지 얼마 안 됐다는 말도 벌써 몇 번째인지." 여인이 피식 웃었다. 그러나 이번엔 조롱보다는 약간의 흥미가 섞인 웃음이었다. "한서윤은 이 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야. 왕실에서도 함부로 못 건드리는 분이지. 성격이 괴팍해서 아무나 안 만나주지만."
"어디서 만날 수 있습니까." 도윤이 물었다.
"그런 걸 나한테 물어봐야 소용없지. 그분 행적을 아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여인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을 피했다. "떠돌이 검사라 정착한 곳도 없어. 어느 날은 북쪽 국경에서 몬스터를 썰고 있고, 어느 날은 남쪽 항구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는 소문이 돌지. 종잡을 수가 없는 분이야."
"그럼 소문이라도 좋습니다. 최근에 어디서 보였다는 이야기라도." 도윤이 재차 물었다.
여인은 잠시 그를 바라봤다. 이번엔 조롱의 눈빛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정도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손님이 드물다는 눈치였다.
"글쎄. 시장 쪽에 가서 물어보게. 여행자나 상인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이 우리 길드보다 더 빠르고 정확할 때가 많으니까." 여인이 마지못해 알려줬다.
도윤은 그 이름을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되풀이했다. 한서윤. 검성. 지금 이 순간, 그것이 그가 매달릴 수 있는 유일한 끈이었다.
길드 밖으로 나서자 오후의 해가 눈을 찔렀다. 도윤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잠시 걸음을 멈췄다. 여관에서 이미 짐이 내던져졌을 시간이 지났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늘 밤 그가 잘 곳은 없었다. 주머니 속 동전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적었고, 배 속은 이미 오래전부터 비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했다.
'한서윤을 찾아야 한다.' 그는 그렇게 결심하며 시장 골목 쪽으로 발을 옮겼다. 정보가 필요했고, 정보를 캐낼 곳은 관청이나 길드가 아니라 사람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문뿐이었다.
시장 골목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여 왁자지껄한 소음을 만들어냈다. 좌판마다 상인들이 손님을 끌어들이려 목청을 높였고, 그 사이를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도윤은 그 틈을 헤치며 걸었다.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아직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멈춰 서 있을 수는 없다.' 도윤은 그렇게 생각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해는 점점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고, 밤이 오면 낯선 이 세계의 골목은 더욱 위험해질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한서윤이라는 이름 하나가, 지금 그에게는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유일한 희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