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왕도의 뒷골목, 허름한 술집들이 늘어선 구역이었다. 좁은 골목 사이로 술 냄새와 땀 냄새가 뒤섞여 흘렀다. 간판도 없는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그 틈으로 취객들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도윤은 그중 가장 손님이 많은 곳으로 들어섰다. 사람이 많다는 건 소문도 많다는 뜻이었다.
저녁 무렵의 술집은 취기와 소문으로 가득했다. 나무 탁자마다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고, 누군가는 노름판을 벌였으며, 또 누군가는 큰 소리로 옛 전투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여기서라면 뭔가 나올 것이다.' 그는 그렇게 판단하며 구석 자리에 앉았다.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옆 탁자의 말소리는 놓치지 않을 자리였다. 가진 은화 몇 닢으로 싼 술 한 잔을 주문했다. 배는 이미 오래전부터 비어 있었지만, 지금은 정보가 더 급했다.
'배는 나중에 채워도 된다. 정보는 놓치면 다시 오지 않는다.'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누구의 가르침인지는 이제 흐릿했지만, 그 말만은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옆 테이블에서 용병 몇이 떠들고 있었다. 도윤은 잔을 든 채로 귀를 기울였다.
"검성 얘기 들었나? 이번에도 던전 하나를 홀로 정리했다더군." 한 용병이 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그 여자 진짜 괴물이야. 나이도 젊은데 벌써 S랭크라니." 다른 용병이 맞장구쳤다.
"내가 듣기론 던전 안에서 뭘 만났는지, 셋이 들어가서 하나도 못 돌아온 자리를 그 여자 혼자 치웠다더군." 세 번째 용병이 낮게 목소리를 깔았다.
"근데 이상하지 않나. 2년 전에 갑자기 나타나서 그 실력으로 순위표 꼭대기까지 올라간 거. 출신도 모르고, 가족도 모르고." 첫 번째 용병이 목소리를 낮췄다.
"그런 사람이 한둘인가. 신경 쓰지 마." 다른 용병이 잔을 비웠다.
"그래도 궁금하잖아. 검을 어디서 배웠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나이에 S랭크를 찍냐고." 세 번째 용병이 다시 끼어들었다.
도윤은 그 대화를 놓치지 않으려 몸을 기울였다. '2년 전에 나타났다.'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자신이 이 세계에 떨어진 것과 비슷한 처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심장이 조금 빨리 뛰었다. 우연이라 하기엔 시기가 너무 맞아떨어졌다.
대화가 끊기기 전에 도윤이 슬쩍 끼어들었다.
"죄송하지만, 검성이라는 분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가 물었다.
용병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위아래로 훑어보는 눈초리엔 경계심이 섞여 있었다. 낡은 옷차림, 야윈 얼굴, 무기도 없는 손. 그런 것들을 재빠르게 훑는 시선이었다.
"넌 뭐 하는 놈이냐." 한 용병이 눈을 찌푸렸다.
"급히 전할 말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도윤이 답했다.
"검성한테 전할 말? 웃기는 소리 하네. 그분은 웬만한 귀족도 못 만나는 사람이야." 다른 용병이 코웃음을 쳤다.
"돈 없는 놈이 검성을 찾는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사기꾼이거나 미친놈이야." 세 번째 용병이 술잔을 탁 내려놓으며 덧붙였다.
"그래도 알고 싶습니다. 어디서 활동하시는지, 언제 왕도에 오시는지." 도윤이 물러서지 않았다.
용병들은 잠시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한 명이 슬쩍 손을 허리춤 쪽으로 가져갔지만, 처음 말을 꺼낸 용병이 손짓으로 말렸다. 결국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동쪽 변경에 있는 던전들을 주로 돌아다닌다더군. 왕도엔 가끔, 보급을 위해서만 들어와. 정확한 날짜는 아무도 몰라." 그가 말했다.
"보급이라면 어디서 합니까." 도윤이 재차 물었다.
"길드나 대형 상단이지. 근데 그분은 사람 만나는 걸 별로 안 좋아해. 괜히 얼쩍대지 말라고." 용병이 경고하듯 말했다.
"괜히 나댔다가 목이 날아간 놈도 봤다." 세 번째 용병이 한마디를 덧붙이며 낄낄거렸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캐물으면 의심을 살 것 같았다. 하지만 얻은 정보는 값어치가 있었다. 동쪽 변경, 던전, 그리고 왕도에 들를 때는 대형 상단을 이용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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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을 나선 뒤 도윤은 다시 정보상을 찾아 나섰다. 소문을 사고파는 이들이 모이는 곳이 있다는 걸 관청에서 만난 서기의 무심한 말 한마디로 알게 되었다. "그런 건 시장 뒤편에 가면 안다. 낡은 간판이 걸린 가게가 있을 거다." 서기는 그 말을 던지듯 흘리고는 다시 서류에 눈을 돌렸었다.
시장 뒤편 좁은 골목 안, 낡은 간판이 걸린 가게였다. 간판의 글씨는 반쯤 벗겨져 있어서 무슨 이름인지도 알아보기 힘들었다. 문을 열자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가게 안은 어두웠다. 창문마다 두꺼운 천이 덮여 있어 바깥의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노인 하나가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도윤이 다가서자 노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뭘 알고 싶어서 왔나." 노인이 물었다. 말투는 짧았지만 상인 특유의 계산이 담겨 있었다.
"검성 한서윤에 관한 정보를 원합니다." 도윤이 말했다.
노인은 잠시 침묵하더니 손가락을 펴 보였다.
"은화 다섯 닢." 그가 말했다.
"조금 비싸지 않습니까." 도윤이 물었다.
"비싸다고 느끼면 안 사도 돼. 근데 그 여자에 대해서 아는 놈이 나 말고 왕도에 몇이나 있을 것 같나." 노인이 시큰둥하게 답했다.
도윤은 가진 돈을 셈했다. 다섯 닢을 내면 남는 게 거의 없었다. 며칠은 굶어야 할 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보가 목숨보다 급했다.
"드리겠습니다." 그는 남은 은화를 카운터에 올렸다.
노인은 돈을 세어보고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자는 사흘 후, 대형 상단 '청동수레'와 함께 왕도에 들어온다. 보급을 마치고 다시 동쪽으로 떠날 예정이지. 상단이 머무는 곳은 왕도 남문 근처 창고 구역이야." 노인이 낮게 말했다.
"확실한 정보입니까." 도윤이 물었다.
"내가 파는 정보 중에 확실하지 않은 건 없어. 값어치를 못하면 다신 이 가게에 발도 못 붙이게 될 테니까." 노인이 대답했다.
"그럼 되었습니다." 도윤이 짧게 답했다.
도윤은 그 말을 믿기로 했다. 다른 선택이 없었다. 사흘. 그 사흘을 어떻게 버텨야 할지가 다음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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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를 나선 그는 밤거리를 걸었다. 잘 곳도, 먹을 것도 없는 사흘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마음은 전보다 가벼웠다.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사흘만 버티면 된다.' 도윤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는 남문 근처 창고 구역으로 미리 발걸음을 옮겼다. 지형을 익혀두는 것이 먼저였다. 만날 장소를 모른 채 무작정 기다리는 것과, 지형을 알고 기다리는 것은 다르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창고 구역은 밤이 되자 인적이 드물었다. 낮 동안 짐을 나르던 인부들도 다 사라지고, 개 짖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도윤은 담벼락 아래 그늘에 몸을 붙이고 주변을 살폈다. 큰 창고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그 중 하나에 '청동수레'라는 문장이 새겨진 깃발이 걸려 있었다.
'저기다.' 그는 그렇게 확신했다. 사흘 뒤 이곳에서 검성을 만나야 했다. 하지만 만난다고 해서 상황이 풀릴지는 알 수 없었다. 명성 높은 S랭크 검사가 신원도 없는 이방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줄 리 없었다.
'믿지 않으면 보여주면 된다.' 도윤은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스킬을 시연해서라도 증명해야 했다. 그것이 위험한 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 그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말보다 증거가 빠르다. 언젠가 누군가 그렇게 말했었다. 실력 없이 입만 놀리는 자는 오래 못 간다고. 그 말이 지금처럼 절실하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그는 창고 구역 인근 폐허가 된 건물 한켠에 몸을 뉘였다. 사흘 밤을 그렇게 보낼 셈이었다. 배고픔과 추위가 몰려왔지만, 그보다 강한 건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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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밤은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몸이 아직 힘을 남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윤은 무너진 담벼락 사이에 몸을 끼워 넣고 눈을 감았다. 순찰을 도는 경비병들의 발소리가 멀리서 들릴 때마다 숨을 죽였다. 들키면 곤란한 처지였다. 신원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둘째 밤이 되자 배고픔이 본격적으로 몸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위장이 뒤틀리는 듯한 느낌이 계속되었다. 도윤은 몇 번이나 시장 쪽으로 걸어가려다 멈췄다. '지금 나서면 이틀치 정보가 헛수고가 된다.' 그는 그렇게 되뇌며 자리를 지켰다. 빗물이 고인 웅덩이의 물을 손으로 떠 마시는 게 전부였다.
셋째 날 새벽, 도윤은 창고 구역 담벼락 그늘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몸은 이미 지쳐 있었지만 정신만은 또렷했다. 오히려 배가 비면 감각이 날카로워진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굶주림도 무기가 될 수 있었다.
사흘째 되는 날, 창고 구역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육중한 수레들이 줄지어 들어오고 있었다. 말발굽 소리와 수레바퀴가 돌바닥을 긁는 소리가 뒤섞여 울렸다. 깃발엔 '청동수레'라는 문장이 선명했다.
도윤은 그 자리에서 숨을 멈췄다. 담벼락 그늘 속에서 몸을 낮춘 채, 다가오는 수레의 행렬을 눈으로 좇았다. 그 안에, 그가 사흘을 걸고 기다려 온 사람이 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