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전리품 배분식이라는 게 정식 명칭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귀를 의심했다.
전리품? 우리가?
누가 봐도 사람인데 물건 취급하는 명칭 하나로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가 되나.
왕국끼리 소환된 인간들을 나눠 갖는 절차였다.
노예 시장 콘셉트에 방탈출 게임 진행 방식을 섞은 것 같았다.
줄 서고, 명단 확인하고, 태그 붙이고, 나뉘고.
뭐 이런 조합이 다 있나.
차라리 수강신청이라고 하면 좀 더 익숙했을 텐데.
[신명기 21:14, 만일 네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임의로 가게 하고 결코 돈으로 팔지 말고 그를 종으로 여기지 말지니라]
성경엔 이렇게 써 있는데, 여긴 그냥 대놓고 종으로 팔아넘기는 시스템이었다.
신께서 보시면 뭐라고 하실지 모르겠다.
아마 "이것들이 성경을 인테리어로만 쓰는구나" 하고 한숨 쉬시지 않을까.
감별이 끝난 학생들이 두 줄로 나뉘었다.
오만왕 쪽 줄, 탐식왕 쪽 줄.
줄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다들 자기 줄에서 눈치를 보며 서로를 힐끔거렸다.
등급이 높거나 전투 계열 스킬을 가진 애들은 대부분 오만왕 쪽으로 갔다.
반대로 등급이 낮거나 애매한 스킬을 가진 애들은 탐식왕 쪽으로 몰렸다.
오만왕 쪽 줄에 선 애들은 어깨를 펴고 있었다.
탐식왕 쪽 줄에 선 애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줄만 봐도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게, 이거 완전 수시 결과 발표날 게시판 앞이랑 뭐가 다른가.
박도현 아저씨는 등급이 A였는데도 탐식왕 쪽에 섰다.
이유는 간단했다.
오만왕이 "쟤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성장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십오 세 고등학생과 삼십오 세 아저씨.
성장 가능성으로 줄 세우기라니, 이거 완전 대학 입시 판박이 아닌가.
나이 서른다섯이면 이미 인생 다 산 취급하는 건 여기도 저기도 똑같구나.
심지어 이세계는 육체 스펙까지 새로 매기는데도 나이 차별은 그대로 가져온다는 게 참 웃기지도 않았다.
공평하게 차별할 거면 다 같이 리셋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박도현이 줄에 서서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학생, 아직 안 죽었지?"
"네, 아직요."
"고생 많다. 여기 진짜 이상한 데자너."
걸걸한 사투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적어도 저 아저씨는 아직 정신줄을 놓지 않은 것 같았다.
"아저씨는 탐식왕 쪽이네요."
"어, 그렇게 됐어. 나 이제 서른다섯 다 됐다고 늙었다고 밀려났자녀. 여기도 꼰대 취급 똑같이 하는 거 보면 참, 사람 사는 거나 몬스터 사는 거나 다 거기서 거기여."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어느 세계든 조직 논리는 참 한결같구나.
나는 등급이 F였으니 당연히 탐식왕 쪽에 서게 될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감별사가 명단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하준... 이건 오만왕 쪽으로 배정됐네요."
뭐지?
순간 나는 어리둥절했다.
등급 F가 왜 오만왕 쪽으로?
설마 감별사가 서류를 잘못 봤나, 아니면 나 몰래 각성 이벤트라도 터졌나.
그런 거였으면 참 좋았을 텐데.
답은 곧 나왔다.
감별사가 서류 한 귀퉁이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성속성 SSS 등급 유채영 님이 요청하셨습니다. 자신의 지인이라고."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채영이가 나를 챙겨준 거구나.
역시, 믿을 사람이 있었다는 게 이렇게 든든하구나.
이 험한 이세계에서도 인맥이 스펙을 이긴다는 사실을 몸소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현실에서도 그렇게 인맥으로 먹고살던 사람들이 있었지, 여긴 그게 목숨줄까지 걸린 인맥이라는 게 다를 뿐.
채영이 쪽으로 다가가서 고맙다고 말하려는데, 걔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준아, 걱정 마. 내가 얘기해뒀어."
목소리가 평소랑 똑같았다.
다정하고, 조금 우월감이 섞인, 반장 같은 말투.
"고마워. 진짜 다행이다."
나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등급 F 주제에 오만왕 쪽에 서는 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른 채, 그냥 안 죽을 확률이 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마음이 놓였다.
[시편 133: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딱 이 상황이지 않나.
같은 반 친구가 이렇게 챙겨주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성경 구절까지 인용해서 감동하려는데, 어째서인지 뒷맛이 살짝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설마, 그럴 리가.
그냥 내가 너무 오래 굶어서 감정 소화 기능이 떨어진 거겠지.
오만왕이 알현실 앞으로 학생들을 세우고 다시 입을 열었다.
"오만 왕국에 배속된 자들은 앞으로 나와 훈련장으로 이동한다."
우리는 줄지어 이동했다.
왕궁 밖은 대리석 정원이었고, 저 멀리 산맥 같은 게 보였다.
정원 곳곳엔 이름 모를 조각상들이 서 있었는데, 하나같이 표정이 오만한 게 이 왕국 이름값 하는구나 싶었다.
조경 컨셉조차 왕의 성격을 반영하는 건가.
산맥 너머엔 안개가 자욱했는데, 그쪽에서 뭔가 낮게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우우우웅...
소리가 들릴 때마다 다들 흠칫했다.
나는 그 소리가 뭔지 궁금했지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옆에 선 애가 슬쩍 귀를 막는 걸 보고 나도 따라 막았다.
막아도 소용없었다.
그 소리는 뼈까지 파고드는 느낌으로 낮게 진동했다.
훈련장에 도착하자 오만왕의 신하로 보이는 노인이 명단을 다시 확인했다.
노인은 서류를 한 장씩 넘기며 눈을 가늘게 뜨고 이름을 확인했는데, 유독 내 이름 앞에서 손이 멈췄다.
노인이 내 이름 옆에 붙은 태그를 보더니 표정이 묘해졌다.
"등급 F는... 원래 훈련장 배속이 아닌데."
등 뒤에서 서늘한 예감이 들었다.
뭐지, 이 흐름은.
설마 채영이가 힘써준 게 오히려 문제가 되는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좋은 뜻으로 부탁한 거였을 텐데 굳이 안 좋은 방향으로 상상할 필요는 없잖아.
노인이 오만왕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오만왕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저 멀리서도 표정 변화가 보일 정도로 확실하게, 미간이 좁아지고 입꼬리가 아래로 내려갔다.
"뭐라고? 유채영이 데려온 그 F등급 놈?"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렀다.
주변 애들이 슬쩍 나에게서 거리를 두는 게 느껴졌다.
나는 채영이를 쳐다봤다.
채영이는 여전히 아무 일 없는 듯 웃고 있었다.
그 미소가 조금, 아주 조금 낯설다고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평소 반에서 보던 그 웃음이랑 똑같은데, 어딘가 온도가 다른 느낌.
비유하자면, 배달앱 리뷰에 "친절해요" 별 다섯 개 받은 가게 사장님이 뒤에서 클레임 고객 블랙리스트 작성하는 표정 같았다.
그런 상상까지 하는 나 자신이 참 한심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생각이라도 안 하면 버틸 수가 없었다.
오만왕이 손짓하자 병사 두 명이 다가와 내 양팔을 붙잡았다.
손아귀 힘이 어찌나 센지 팔뚝에 멍이 들 것 같았다.
"뭐, 뭐 하는 거예요?"
오만왕이 차갑게 대답했다.
"쓸모없는 스킬을 가진 자는 왕국의 자원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폐기 던전으로 보낸다."
폐기 던전.
그 단어가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이름부터 참 직설적이다.
포장도 안 하고 그냥 폐기물 처리장이라고 써놓은 셈이었다.
적어도 완곡어법 정도는 써줘야 인간적인 배려 아닌가 싶었는데, 여긴 그런 배려 따위 기대할 곳이 아니었나 보다.
나는 채영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채영아, 뭐라고 좀 해줘!"
채영이가 천천히 걸어와 내 앞에 섰다.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평소처럼, 반장이 반 애 달래주는 것처럼 말했다.
"하준아, 괜찮아. 잠깐이면 될 거야."
그 말이 위로처럼 들렸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그렇게 들렸다.
목소리 톤도, 표정도, 손짓 하나까지 평소랑 다를 게 없었으니까.
나는 그 말을 붙잡고 억지로 안심하려 애썼다.
잠깐이면 된다고 했으니까, 정말 잠깐일 거라고.
병사들이 나를 끌고 절벽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발이 땅에 끌리며 대리석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났다.
안개 자욱한 산맥, 낮게 울리는 그 소리, 바로 그쪽 방향이었다.
가까워질수록 그 우웅거리는 소리가 더 크고 선명하게 들렸다.
뭔가 거대한 게 저 안개 속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았다.
낭떠러지 끝에 서자 아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바람이 아래에서 위로 훅 끼쳐 올라왔는데, 그 바람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
곰팡이랑 피 냄새를 섞은 것 같은, 아주 오래된 무언가의 냄새.
[전도서 9:12, 사람도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지금이 내 시기인가.
제발 아니었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