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죽은 성녀, 30년 후 귀환

3화

"다친 짐승을 두고 갈 수 없어서요."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남자 셋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단순한 경계가 아니라, 뭔가를 확인하려는 시선이었다. 품속에서 늑대 새끼가 미약하게 몸을 떨었다. 화살 맞은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이미 내 옷자락을 붉게 적시고 있었다. 이 정도 출혈이면 곧 죽는다. 죽이려고 쏜 화살이니 당연한 결과겠지만, 그 계산을 하는 와중에도 손끝이 저려왔다. "그 짐승, 우리한테 넘기시오." "화살로 쏴놓고 이제 와서 데려가겠다는 건가요?" "임무요." 짧은 대답이 오히려 더 수상했다. 임무라는 말 한마디로 다 설명될 거라 생각하는 태도. 나는 품속의 늑대를 더 단단히 끌어안았다. 새끼는 아직 정신을 잃은 채였지만, 숨은 고르게 이어지고 있었다. 세 남자의 갑옷에는 낯익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왕실 근위대 표식. 산속 이런 오지까지 이 정도 인원이 배치된다는 게 애초에 정상은 아니었다. 근위대라면 왕성 인근이나 주요 도로를 지켜야 할 인력인데, 여기서 새끼 늑대 하나를 쫓아다니고 있다. "이 근처 마을에서 의뢰를 받고 온 사람인데, 이 상황이 좀 이상해서요. 왕실 근위대가 새끼 늑대 하나에 이렇게까지 인원을 붙일 이유가 있나요?" "당신이 알 필요는 없소." "제 눈앞에서 일어난 일인데 왜 저한테 알 필요가 없다는 건지 모르겠네요." 말투는 웃는 낯을 유지했지만, 속으로는 다른 계산이 돌아가고 있었다. 늑대를 순순히 넘기고 조용히 빠져나가는 게 안전한가, 아니면 여기서 뭘 하는지 더 알아내는 게 나은가. 셈이 빠르게 오갔다. 근위대 셋. 무기는 각각 장검과 단검, 그리고 화살을 쏜 자의 활. 정면으로 붙으면 승산이 없다. 도망친다면 늑대를 안은 채로는 속도가 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말로 풀어야 했다. […넘겨라.] 진리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흘러들었다. 뜻밖이었다. "뭐?" [저 자들과 부딪혀서 좋을 게 없다. 늑대는 넘기고 조용히 물러나거라.] "방금 독이 특수하다며. 뭔지 알잖아." […모른다.] 뻔한 거짓말이었다. 삼십 년을 함께 지낸 건 아니지만, 진리의 말투가 이상해지는 순간을 나는 이제 구분할 수 있었다. 뭔가 말하기 곤란한 걸 숨길 때 문장이 짧아지고, 예스러운 말투가 흐트러진다. "거짓말하지 마." […] "진리." […이 몸이 모르는 것도 있느니라.] "방금 전엔 확신에 차서 말했잖아. 특수한 독이라고, 조심하라고. 그거 기억나?" […] 대답이 없다는 건 확인이었다. 나는 근위대원들을 보며 다시 웃었다. 이번엔 진심이 아닌 웃음이었다. "넘길게요. 대신 이 화살, 왜 이런 독을 쓰신 건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당신이 알 필요는—" "제가 이 마도구 장인으로 이 산 아래 마을에 자주 드나드는데, 이런 게 계속 돌아다니면 마을 사람들이 위험하잖아요. 그 정도는 알아야 저도 마을에 뭐라고 설명을 할 거 아니에요." 적당한 명분이었다. 사실 마도구 장인이 독 성분까지 알아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이런 자리에서는 말이 되든 안 되든 그럴싸하게 들리기만 하면 충분했다. 남자들 중 가운데 있던, 계급이 높아 보이는 자가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이 늑대는… 마력 오염 지역에서 태어난 개체요. 일반적인 마수가 아니라, 조사 대상이오." "조사 대상이면 왜 죽이려고 했는데요?" "…포획이 실패하면 처리하라는 지시였소." 지시. 누가 내린 지시인지 묻고 싶었지만, 그걸 물으면 선을 넘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근위대라는 자들이 살려서 데려가려던 목표를 이렇게 함부로 쏘아 맞혔다는 것 자체가, 상부의 지시가 얼마나 급박했는지를 짐작케 했다. 나는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마력 오염 지역이라니. 이 산에요?" "산 너머 계곡. 최근 마왕성 잔재의 마력이 흘러들었다는 보고가 있었소." 마왕성 잔재. 그 말에 심장이 한 박자 빠르게 뛰었다. 흑암성.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그곳의 마력이 흘러나갔다는 의미였다. 삼십 년째 봉인돼 있던 마왕성의 잔재가 최근에야 흘러나왔다면, 그건 내가 그곳에 정착한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내 존재 자체가 마력 오염의 원인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등줄기가 시렸다. 이건 예상 못 한 변수였다. 흑암성에 처박혀 조용히 지내는 게 삼십 년 계획의 전부였는데, 그 성 자체가 문제의 근원으로 지목되고 있다면 조용히 지낸다는 계획 자체가 애초에 성립할 수 없었던 셈이다. "…계곡이라면, 정확히 어디쯤인가요? 저도 이 산 지리를 좀 아는데." "그것까지 당신이 알 필요는 없소." 이번엔 순순히 넘어갔다. 어차피 어디인지는 알고 있으니까. 흑암성 아래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닿는 곳이 딱 그 위치였다. 심장이 아니라 위장이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그 조사, 누가 지휘하고 있나요?" "용사님의 직속 부대요." 용사. 그 한 단어에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강도현. 삼십 년 전 나를 죽인 그가, 지금 이 마력 오염을 조사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오염의 근원지는 다름 아닌 내가 숨어 사는 흑암성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갔다. 삼십 년이나 지났으면 그 인간도 늙었을 텐데, 여전히 용사라는 직함을 달고 있다는 것도 이상했다. 아니, 용사라는 게 은퇴하는 직업이던가. 그런 것도 있나. 왕실에서 정년퇴직한 용사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군요." 최대한 태연함을 유지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걸 눈치챈 건지, 가운데 남자가 나를 유심히 쳐다봤다. "용사님 얘기에 왜 그렇게 놀라시오?" "…아뇨, 그냥. 유명한 분이라서요." "유명하긴 하지. 마왕을 무찌른 영웅이시니." 가운데 남자의 말투에 존경심이 섞여 있었다. 나는 그 존경심을 들으며 속으로 웃었다. 마왕을 무찌른 게 아니라 마왕을 죽인 거였다. 그 차이를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나 하나뿐일 것이다. 다행히 그 대답으로 넘어갔다. 나는 늑대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흙바닥에 닿는 순간 새끼의 몸이 다시 한 번 떨렸다. 아직 살아 있다는 신호였고, 동시에 곧 죽을 수도 있다는 신호였다. 남자들 중 한 명이 다가와 늑대를 들어올리려는 순간, 새끼는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몸에서 은빛 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거!" 남자의 팔이 은빛 마력에 데인 듯 붉게 부풀어 올랐다. 화들짝 손을 뗀 남자가 뒤로 물러났다. 늑대의 눈이 아까와는 다른, 짐승 것이 아닌 어떤 형태의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주변 공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마력이 압축되는 느낌이었다. 흑암성에서 삼십 년을 지내며 마력에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새끼 늑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그것과 결이 달랐다. 익숙한 종류가 아니었다. "뒤, 뒤로 물러나시오!" 가운데 남자가 검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다른 두 명도 각자 무기를 겨눴다. 화살을 겨눈 자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조사 대상이라며 신중하게 굴던 자들이 이제는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직감했다. 이 새끼 늑대는 그냥 몬스터가 아니었다. 품에 안겨 있을 때는 그저 다친 짐승 한 마리였을 뿐인데,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이 정도 마력을 뿜어낸다는 건 애초에 그 존재 자체가 평범한 범주를 벗어나 있다는 뜻이었다. 마력 오염 지역에서 태어난 개체라는 말이 단순한 조사 명분이 아니라 진짜였던 것이다. […떨어져라. 지금.] 진리의 목소리가 급하게 끊겨 나왔다. 조금 전까지 흐트러졌던 말투가 아예 온전한 문장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다급했다. 늑대의 은빛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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