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산길은 좁아지고 있었다.
양옆으로 늘어선 나무들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 듯했다. 하늘을 가리는 가지들 사이로 겨우 빛이 스며들었다.
오태산이 앞장서 걸었다. 검자루를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관절이 하얗게 변할 정도였다.
이현우는 그 뒤를 따랐다. 발밑에서 낙엽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바스락.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나뭇잎이 흔들렸다.
이현우는 코를 킁킁였다. 흙냄새. 젖은 이끼. 오래된 나무 썩는 냄새. 그가 열여섯 해 동안 익혀온 냄새들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풍기는, 그러나 늘 익숙했던 산의 냄새.
그런데 지금 코끝에 닿은 것은 분명 쇠 냄새였다.
피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갈아낸 칼날 특유의 서늘한 금속 냄새였다. 숯불에 달궈지고 다시 물에 식혀진 쇠 특유의, 날카로움이 밴 냄새였다.
이현우는 그 냄새를 어디서 맡았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대장간이었다. 언젠가 오태산을 따라 대장간에 들렀을 때, 막 완성된 칼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그때 맡았던 냄새와 똑같았다.
한 자루가 아니었다.
여러 자루였다.
오태산이 걸음을 멈췄다.
"도련님."
"들었습니다."
이현우가 낮게 대답했다.
"멈추지 말고 걸으십시오. 뒤를 보지 마시고."
"몇입니까."
"모르겠습니다. 다만 하나는 아닙니다."
오태산의 목소리에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16년 동안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떨림이었다.
이현우는 그 떨림을 놓치지 않았다. 오태산이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오태산은 흑하성에서 가장 강한 무사 중 하나였다. 검을 든 지 20년이 넘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떨고 있다면, 상대는 결코 평범한 산적 무리가 아니었다.
이현우는 손끝을 가만히 쥐었다. 신앙값은 지금 0이었다.
소이비도를 다시 부를 수는 없었다.
무기가 없다는 사실이 이토록 선명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텅 빈 손이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손목에서 뽑아낼 수 있었던 검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아득했다.
계속 걸었다. 발걸음의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려 애썼다. 마음속에서는 이미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오가고 있었다.
숲이 조금 더 깊어졌다.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점점 옅어졌다.
같은 시간, 산길 위쪽 나무 그늘에서는 한 사람이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장무열이었다.
그는 나뭇가지 위에 걸터앉아 아래를 보고 있었다. 팔짱을 낀 채였다. 다리 하나는 가지 아래로 늘어뜨려져 있었고, 그 발끝이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부하 하나가 그의 곁으로 조심스레 다가와 속삭였다.
"단장님, 지금 치죠. 저 큰 놈 하나뿐이고 어린놈은 바보라고 들었습니다."
장무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이현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바보라면 저렇게 걷지 않는다.
바보라면 저렇게 코를 킁킁이지 않는다.
장무열은 오랜 세월 사람을 죽여온 자였다. 사람의 뒷모습만 봐도 그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자의 눈에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보였다.
남들은 겁먹은 소년의 걸음을 보았다.
그는 균형이 잡힌, 낭비 없는 보폭을 보고 있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무게중심이 정확히 중앙에 남아 있었다. 겁먹은 사람의 걸음은 그렇지 않았다. 겁먹은 사람은 발끝이 흔들리고, 상체가 앞으로 쏠리거나 뒤로 젖혀졌다. 이현우의 걸음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아직이다."
장무열이 말했다.
"단장님?"
"의뢰서에 적힌 대로라면 저 아이는 열여섯 해 동안 침을 흘리며 살았어야 한다."
"그런데요."
"저 아이는 지금 내가 어디 숨어 있는지 알고 있다."
부하가 숨을 삼켰다. 그는 다시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이현우는 여전히 걷고 있었다. 정말로 이쪽을 눈치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단장이 그렇게 말한다면, 틀린 적이 없었다.
장무열은 손가락으로 나뭇가지를 두드렸다. 톡. 톡. 톡.
"서두르지 마라. 서두르면 죽는다."
"저희가 여섯인데 말입니까?"
"여섯이든 열이든, 상대를 모르고 덤비는 자는 죽는다. 나는 그런 걸 여러 번 봤다."
장무열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감정이 섞이지 않은, 오래전에 무뎌진 목소리였다.
부하는 더 묻지 않았다. 단장이 저렇게 말할 때는 이유가 있었다.
산길 아래, 이현우는 여전히 걷고 있었다.
걸음의 속도는 바뀌지 않았다.
다만 그의 머릿속은 빠르게 계산을 굴리고 있었다.
소이비도 없이 상대할 수 있는 인원이 몇인가.
오태산의 검이 통할 상대인가, 아닌가.
지형은 어떤가.
왼쪽은 절벽, 오른쪽은 완만한 경사.
도망친다면 오른쪽이 유리했다.
하지만 오태산이 등을 보이며 도망칠 사람이 아니었다.
이현우는 슬쩍 오태산의 옆모습을 살폈다. 턱에 긴장이 서려 있었다. 눈은 앞쪽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정확히 무엇을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시선이 계속 좌우로 오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경계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오태산."
"네."
"신앙값을 채울 방법이 있습니까."
오태산이 흠칫했다.
"신앙…값 말입니까."
"제가 얻었던 힘의 근원 말입니다. 다시 채우는 법을 아십니까."
오태산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까지는 저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는 말을 멈췄다.
숲 속에서 새 한 마리가 갑자기 날아올랐다.
두 사람 모두 그 방향을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나뭇잎이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정적이 다시 내려앉았다. 그 정적은 이전보다 더 무거웠다.
오태산이 검을 반쯤 뽑았다. 쇠가 스치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도련님, 제 뒤로."
"싫습니다."
"도련님."
"제 뒤가 아니라 옆으로 서겠습니다. 그게 더 낫습니다."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이현우는 잠깐 숨을 골랐다.
"둘이 나란히 서면 상대가 한 번에 둘을 노려야 합니다. 하나가 다른 하나 뒤에 있으면, 앞의 사람이 무너졌을 때 뒤의 사람도 함께 무너집니다. 갈라져 있어야 상대의 시선도 갈라집니다."
오태산은 잠깐 이현우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걱정과 함께 다른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놀라움 같은 것이었다.
16년을 함께한 도련님이 이렇게 판단하고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오태산이 알던 이현우는 말 몇 마디를 겨우 흘리는, 초점 없는 눈으로 하늘을 보던 아이였다. 그 아이가 지금 지형을 논하고 전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나란히, 서로 팔이 닿을 듯한 거리를 두고서였다.
숲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새소리도, 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큰 신호였다.
이현우는 그 침묵의 무게를 느꼈다. 평소라면 이 시간의 산은 온갖 소리로 가득했을 것이다. 풀벌레, 새, 나뭇잎 스치는 소리. 지금은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마치 숲 전체가 무언가를 지켜보며 숨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나무 위에서 장무열은 손짓으로 부하들을 흩어 보냈다.
좌로 셋. 우로 셋. 뒤로 둘.
포위망이 서서히 좁혀지고 있었다.
부하들의 움직임은 조심스러웠다. 발을 디딜 때마다 낙엽을 피해 걸었다.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그들의 습관이었다.
장무열은 아직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는 명령서를 다시 꺼내 들었다.
낡은 종이였다. 접힌 자국이 여러 번 있었다. 오랫동안 품속에 넣고 다녔다는 뜻이었다.
적힌 이름은 하나였다.
이현우.
흑하성으로 향하는 신임 성주.
의뢰인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일을 맡길 수 있는 자는 하나뿐이었다.
전임 성주, 최광호.
장무열은 종이의 접힌 자국을 손끝으로 문질렀다. 이 일을 맡을 때부터 마음에 걸리던 부분이었다. 성주가 자신의 후계자를 죽이려 든다는 것.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없는 일도 아니었다.
"바보든 아니든."
그가 중얼거렸다.
"의뢰는 의뢰다."
그는 종이를 다시 접어 품에 넣었다.
그리고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소리 없이 땅에 발이 닿았다. 무릎을 살짝 굽혀 충격을 흡수하는 동작이, 오랜 세월 몸에 새겨진 습관이었다.
산길 아래, 이현우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멈췄습니다."
오태산이 낮게 물었다.
"뭐가 말입니까."
"발소리요. 방금까지 들리던 발소리가 멈췄습니다."
오태산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도련님, 발소리가 들렸습니까."
"들렸다기보다는… 느껴졌습니다. 진동 같은 것이었습니다."
오태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감각으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현우는 느꼈다고 말하고 있었다.
다만 검을 완전히 뽑았다.
칼날이 달빛도 없는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숲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웅—
낮은 울림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이현우는 손끝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겁이 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심장은 이미 빠르게 뛰고 있었다. 관자놀이에서 맥박이 뛰는 소리마저 들리는 것 같았다.
앞쪽 나무 그늘 사이로, 한 사람의 형체가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키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어깨의 폭이 넓었다.
걸음에 소리가 없었다.
이현우는 그 걸음을 지켜보았다. 아까 오태산이 걷던 걸음과는 완전히 달랐다. 오태산의 걸음에는 무게가 있었다. 이 형체의 걸음에는 무게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발이 땅에 닿는 순간과 떠나는 순간의 경계가 흐릿했다.
오태산이 이현우 앞을 반쯔 가로막았다.
"물러나십시오."
"…네."
이현우는 반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완전히 등을 돌리지는 않았다.
형체는 계속 다가오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두 눈이 서서히 드러났다.
사람의 눈이었다. 그러나 사람을 죽여본 자의 눈이었다.
오태산의 목이 마르게 울렸다.
"거기서 멈춰라."
형체는 멈추지 않았다.
몇 걸음 더 다가와서야 발을 멈췄다.
달빛이 나뭇잎 사이로 새어 들어와 그의 얼굴을 비췄다.
중년의 사내였다. 얼굴에 흉터가 하나 있었다. 눈썹 위에서 시작해 관자놀이까지 이어진 흉터였다. 그 흉터는 오래된 것이었다. 살이 아물면서 남긴 굴곡이 달빛 아래 뚜렷하게 드러났다.
그가 입을 열었다.
"흑하성 성주 이현우."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조용했다. 그러나 그 조용함 속에 살기가 배어 있었다.
이현우는 숨을 멈췄다.
오태산의 검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숲 전체가 숨을 죽인 것 같았다.
바람 한 점 없었다.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오직 세 사람의 숨소리만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이현우는 눈앞의 사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흉터 아래 눈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계산하는 눈이었다. 이미 이쪽의 인원과 상태를 다 파악했다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그 뒤, 어둠 속 여기저기에서 또 다른 발소리들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한 방향이 아니었다.
여러 방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