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바보 흉내, 오늘부로 끝낸다

4화

장무열이라는 사람이었다. 오태산은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없었다. 낯선 이름이었다. 도적 무리에서 흘러나오는 소문 중에도 이런 이름은 없었다. 그러나 그의 자세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발끝의 무게 중심. 어깨의 각도. 숨을 쉬는 속도까지. 이 자는 보통 도적이 아니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오태산이 물었다.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겁을 먹은 것을 들키지 않으려 했다. 장무열은 대답 대신 시선을 이현우에게 옮겼다. 오랫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위협이 없었다. 오히려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마치 오래전에 잃어버린 물건을 다시 찾은 사람의 눈빛 같았다. "바보라고 들었는데." 장무열이 말했다. "그런데 눈빛이 멀쩡하군." 이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답을 하면 안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대답을 안 하는 것도 이미 답이 되어 있었다. 침묵. 그 침묵이 오히려 확신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장무열의 입가에 얕은 웃음이 걸렸다. "연기가 좋았다. 열여섯 해 동안이라니." 그의 목소리에는 감탄이 섞여 있었다. 마치 잘 만든 물건을 평가하는 장인의 말투였다. 오태산의 얼굴이 굳었다. 등줄기를 따라 서늘한 것이 흘러내렸다. "당신은 이미 다 알고 온 것이군." "의뢰인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의뢰인." 오태산이 그 말을 곱씹었다. 혀 위에 놓인 돌처럼 무거운 말이었다. 장무열은 어깨를 가볍게 들었다 내렸다. "그건 당신들이 알 필요 없다." "최광호인가." 이현우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짧고 단정한 문장이었다. 장무열의 눈이 살짝 커졌다. 숲의 어둠 속에서도 그 표정 변화는 분명히 보였다. "…이름까지 알고 있나." "성주 자리를 넘겨받았으니 그 정도는 알아야지." 이현우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태산은 그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 한번 놀랐다. 도련님이 이렇게 차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열여섯 해를 함께 지낸 오태산도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바보 도련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성주의 목소리였다. 장무열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손끝에 짧은 칼이 쥐여 있었다. 언제 뽑았는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칼날의 길이는 손바닥 두 개 정도. 손잡이는 검은 천으로 감겨 있었다. 여러 번 사용한 흔적이 손잡이 곳곳에 배어 있었다. "의뢰는 간단했다. 흑하성으로 가는 새 성주를 산길에서 처리할 것." "이유는 말하지 않았나." "이유를 묻지 않는 것이 이 일의 규칙이다." "규칙이라." 이현우가 그 말을 되받았다. "규칙만 지키면 무엇을 해도 상관없다는 뜻인가." 장무열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칼끝을 살짝 기울여 달빛을 반사시켰다. 오태산이 검을 완전히 세웠다. 칼자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바닥에서 땀이 배어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도련님을 건드리게 두지 않겠다." 장무열이 그를 보았다. 위아래로 훑는 시선이었다. 마치 상품의 가치를 매기는 눈빛이었다. "당신은 그냥 늙은 호위병 아닌가. 물러서면 목숨은 살려준다." "물러서지 않는다." "그럼 죽는다." "상관없다." 장무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대답이다." 그 말에는 진심이 섞여 있었다. 오랫동안 이 일을 해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에 대한 존중이었다.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딱— 작은 소리였다. 그러나 그 소리를 신호로 삼아 숲의 사방에서 그림자들이 일어섰다. 하나, 둘, 셋. 이현우는 빠르게 숫자를 세었다. 좌측에 셋. 우측에 셋. 뒤쪽에 둘. 합쳐서 여덟, 장무열까지 아홉이었다. 숲의 나뭇잎 사이로 달빛이 스며들었다. 그림자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검은 옷. 검은 두건. 오직 손에 쥔 무기만이 달빛을 받아 어렴풋이 빛나고 있었다. 오태산의 얼굴이 하얘졌다. 이 정도 숫자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산길을 지날 때 대비했던 것은 산적 몇 명 정도였다. 이런 규모의 병력이 매복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도련님, 뒤로 물러나십시오." "..." 이현우는 물러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손을 펼쳤다. 손바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신앙값은 여전히 0이었다. 하지만 손끝의 감각을 기억하고 있었다. 은빛 칼날이 소환되던 그 순간의 느낌을. 차가움과 뜨거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감각. 손끝에서 시작해 팔을 타고 올라오던 그 낯선 무게감. 장무열이 그 손짓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뭘 하려는 거지." "아무것도." 이현우가 대답했다. "그냥 확인하는 겁니다." "확인." "내가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지." 장무열은 그 말을 흘려들었다. 의미 없는 허세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태산은 그 말의 무게를 알아챘다. 도련님은 지금 시간을 끌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도련님은 아직 이 상황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오태산은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검을 쥔 손에 다시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이야기는 그만하지." 장무열이 손을 내렸다. 그 순간 좌측의 그림자 하나가 먼저 움직였다. 발밑의 마른 잎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바스락— 오태산이 그를 향해 몸을 던졌다. 검이 허공을 갈랐다.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처음으로 울렸다. 캉— 그 소리는 숲 전체를 울릴 만큼 크게 퍼졌다. 나뭇가지 사이로 잠들어 있던 새들이 놀라 날아올랐다. 이현우는 그 소리를 들으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계산이 필요했다. 오태산 혼자서 여덟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리고 신앙값을 얻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2화에서 그는 신앙값을 소모해 소이비도를 소환했었다. 신앙값이 채워지는 조건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기도였을까. 아니면 간절함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무언가였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조건을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오태산이 두 번째 그림자를 막아냈다. 검과 검이 부딫히며 불꽃이 일었다. 순간적으로 밝아진 시야 속에서 오태산의 얼굴이 드러났다. 이를 악문 얼굴이었다. 세 번째 그림자가 그의 옆구리를 노렸다. "오태산!" 이현우가 소리쳤다. 목이 찢어질 듯한 소리였다. 오태산은 몸을 틀어 그 공격을 피했다. 그러나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소매가 찢어졌다. 피가 배어 나왔다. 검붉은 색이 천천히 소매를 따라 스며들었다. 오태산은 통증을 느꼈지만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낮게 몸을 숙이며 세 번째 그림자의 다리를 노렸다. 장무열은 팔짱을 낀 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부하들이 이 정도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면 애초에 데려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의 눈빛에는 여유가 있었다. 오태산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시간을 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단장님, 저 어린놈은 어떡할까요." 부하 하나가 물었다. 칼끝으로 이현우를 가리키며 던진 질문이었다. "놔둬라." 장무열이 말했다. "저 아이는 도망칠 곳이 없다." 이현우는 그 말을 들으며 주변을 살폈다. 왼쪽은 절벽. 아래로 얼마나 떨어지는지 가늠할 수 없는 어둠뿐이었다. 오른쪽은 완만한 경사. 그러나 그 끝에도 그림자 두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태산은 세 명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었다. 나머지 다섯은 아직 대기 중이었다. 숫자가 너무 많았다. 오태산의 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체력이 소진되고 있었다.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어깨가 조금씩 아래로 처졌다. 이현우는 손끝을 꽉 쥐었다. 손바닥에 손톱이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무언가가 필요했다. 지금 당장. 무엇이든. 기도라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입 밖으로 무슨 말을 꺼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때 오태산이 뒤로 물러나며 소리쳤다. "도련님, 이건 도적의 습격이 아닙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섞여 있었다. 이현우는 그 말을 들으며 눈을 크게 떴다. 오태산이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이 갔다. 이것은 습격이 아니라 암살이었다. 계획된, 준비된, 누군가가 오랫동안 그려온 그림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그것을 들을 여유를 주지 않았다. 장무열이 마침내 발을 뗐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이현우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한 걸음, 두 걸음. 그의 발소리는 이상하게도 조용했다. 마른 잎을 밟고 있음에도 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이제 내가 나서지." 그가 말했다. "의뢰는 확실하게 끝내야 하니까." 이현우는 뒤로 물러섰다. 등이 무언가에 닿았다. 나무였다. 거친 나무껍질의 감촉이 등을 통해 그대로 전해졌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장무열의 칼끝이 달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났다. 그가 팔을 들어 올렸다. 그 동작은 느리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치게 정확했다. 오랜 세월 이 동작을 반복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매끄러움이었다. 이현우의 손끝이 다시 차가워졌다. 신앙값은 0이었다. 소이비도는 소환되지 않았다. 손끝의 그 감각은 여전히 기억 속에만 있었다. 실체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 순간, 그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칼끝이 그의 목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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