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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밤 11시. 나는 학원 뒷문을 넘었다. 경비 아저씨가 순찰을 도는 시간이었다. 발소리를 죽이고 담을 넘었다. 스무 번쯤 넘어본 담이라 이제는 눈을 감고도 넘을 수 있었다. 서부 황무지까지는 거리가 있었다. 버스로 마흔 분, 걸어서 삼십 분. 그런데 발이 저절로 그쪽으로 향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지금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내일 낮에, 밝을 때 가도 된다는 것을.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걷다 보니 어느새 익숙한 갈라진 땅이 보였다. 가로등이 끝나는 지점부터 시작되는 흙길이었다. 발밑에서 마른 흙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동굴 입구도 그대로 있었다. 어둠 속에 입을 벌리고 있는 그 모양이, 이제는 낯설지 않았다. 마치, 나를 기다린 것처럼. 밤 11시 32분. 나는 동굴 앞에 서서 잠시 멈췄다. 들어가면 무슨 말을 들을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들어가야 했다. 확인해야 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공기가 바뀌었다. 바깥보다 온도가 낮았다. 숨을 내쉬자 하얀 김이 조금 피어올랐다. "왔네."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그 목소리는 언제나 먼저 도착했다. 형체는 그다음이었다. 형체가 서서히 사람 모양을 갖췄다. 윤곽이 잡히고, 그 안에 어둠이 채워지는 방식으로. "확인하려고 왔지." 그것이 말했다. "대가가 뭔지, 이제 알겠지." 나는 이를 악물었다. 턱에 힘이 들어갔다. 그 힘이 아니면 말이 먼저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보라에 대한 마음을 왜 가져간 거예요." "내가 가져간 게 아니야." 그것이 대답했다. "네가 지불한 거지." "저는 그런 계약 안 했어요." "계약서에 뭐라고 쓰여 있었는지 다시 볼래." 그것이 웃었다. "넌 아무거나 상관없다고 했어." 기억이 났다. 동굴에서, 나는 대가를 묻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그때 그것이 물었다. "뭘 걸 건데." 나는 대답했다. "아무거나요. 뭐든 상관없어요." 그 말이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다. 그때는 대가 같은 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마력만 얻으면 뭐든 좋다고 생각했다. 힘만 있으면, 나머지는 다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저는 보라를 걸 생각은 없었어요." "의도는 시장에서 안 중요해." 그것이 말했다. "체결이 중요하지." "체결이라니, 사람 마음을 두고 무슨." "넌 마음을 자산이라고 생각 안 하지." 그것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나는 생각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목이 마르고, 손끝이 차가워졌다. "되돌릴 수 있어요?" "물론." 너무 쉬운 대답이었다. 그 쉬움이 오히려 불안했다. "어떻게요." "힘을 반납하면 돼." 그것이 말했다. "매입한 걸 되팔면, 잃은 걸 돌려받아." "그럼 마력을 잃는다는 거예요." "당연하지." 그것이 대답했다. "시장은 공평해." "공평이라는 말, 그쪽 입에서 나오니까 이상하게 들려요." "공평은 원래 이상한 거야." 그것이 말했다. "모두가 뭔가를 잃어야 하니까." 나는 손을 내려다봤다. 손끝에 남아 있던 온기가 낯설게 느껴졌다. 마력을 잃으면, 다시 최하위로 돌아간다. 태오의 조롱을 다시 듣는다. 두 개의 아르바이트를 다시 병행한다. 원장님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다시 마주한다. 그 세 개의 장면이 순서대로 떠올랐다가, 마지막에 하나가 더 붙었다. 원장님이 부엌에서 나를 보며 물었었다. "밥은 먹었어?" "네." "거짓말하는 것 같은데." 그 평범한 대화가, 지금 이 순간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런데 보라에 대한 마음은 돌아온다. "생각할 시간을 줄게." 그것이 말했다. "오래는 못 줘." "왜요." "시장엔 마감 시간이 있으니까." "얼마나 남았는데요." "그건 안 알려줘." 그것이 말했다. "알려주면 재미없잖아." 그 말투에 화가 나야 했다. 그런데 화가 잘 안 났다. 그 사실이 더 무서웠다. 그것의 형체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윤곽이 먼저 풀리고, 그다음 색이 사라졌다. "하나만 말해줄게." 그것이 덧붙였다. "마음이란 건." "원래 그렇게 무거운 거야." "없어지면." 세 문장이 이어졌다. "편해져." 그 말과 함께 형체가 사라졌다. 동굴 안은 다시 어두워졌다. 나는 그 자리에 잠시 서 있었다. 숨소리만 들렸다. 내 것인지, 동굴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동굴을 나왔다. 밤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자정에 가까운 바람은 낮보다 차가웠다. 걸으면서 계속 생각했다. 힘을 반납하면, 나는 다시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돌아간다. 원장님의 걱정, 태오의 조롱, 두 개의 아르바이트. 그 모든 게 다시 시작된다. 태오의 목소리가 귓가에 겹쳐졌다. "넌 그 실력으로 여기 왜 왔냐." 그 말을 다시 들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속이 뒤틀렸다. 그런데 보라의 얼굴을 보면 다시 마음이 움직일 것이다. 예전처럼. 심장이 빨리 뛰고, 손바닥에 땀이 나고, 말이 헛나오던 그 시절처럼. 힘을 유지하면, 학비 걱정이 사라진다. 태오와 비슷한 자리에 설 수 있다. 아르바이트 하나를 그만두고, 잠을 좀 더 잘 수 있다. 그런데 보라를 봐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 텅 빈 자리를 볼 때마다, 내가 나 같지 않을 것이다. 둘 중 하나였다. 둘 다를 가질 수는 없었다. 시장이라고 그것은 말했다. 사고팔고, 매입하고 되팔고. 사람 마음도 그런 식으로 계산되는 곳이라면, 나는 이미 헐값에 뭔가를 팔아넘긴 셈이었다. 싸구려 주식을 던지듯이. 가치도 모른 채로. 오전 12시 40분. 고아원 앞에 도착했다. 창문 하나에 불이 켜져 있었다. 보라의 방이었다. 아직 안 자는 걸까. 나를 기다리는 걸까. 나는 그 불빛을 오래 바라봤다. 1분, 2분, 3분. 시간이 흘러도 그 불빛은 그대로였다. 예전이었다면, 그 불빛만 봐도 마음이 저릿했을 것이다. 숨이 막히고, 걸음이 빨라지고, 창문 아래서 한참을 서성였을 것이다. 지금은, 그냥 노란 불빛이었다. 전구 하나가 켜져 있다는 사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이 무서웠다. 동시에, 이상하게 편안했다. 무섭다면 무서워야 하는데, 편안한 게 더 컸다. 편안하다면 편안해야 하는데, 그 밑에 뭔가 갈라진 소리가 났다. 두 감정이 동시에 있었다. 둘 다 진짜인지, 둘 다 가짜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당에 한참 서 있었다. 발밑의 흙이 차가웠다. 신발 안에서 발가락이 오그라들었다. 그런데도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손끝에서 작은 불꽃을 피워봤다. 그 불꽃은 선명했다. 뜨거웠다. 확실했다. 세 번째로 확인해도 똑같았다. 선명하고, 뜨겁고, 확실했다. 보라를 향한 마음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런데 이 불꽃은 확실히 있었다. 하나는 있고, 하나는 없었다. 이상하게도 그 균형이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마치 저울 한쪽에 마음을 내려놓고, 다른 쪽에 불꽃을 올려놓은 것처럼. 둘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나는 아직 답을 정하지 못했다. 결정을 미루고 방으로 들어갔다. 오전 1시 15분.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봤다. 천장 벽지에 있는 얼룩을 세 번쯤 눈으로 따라갔다. 잠이 오지 않을 때 늘 하던 버릇이었다. 마감 시간이 있다고 했다. 오래는 못 준다고 했다. 얼마나 남았는지, 그것은 말해주지 않았다. 내일일 수도 있었다. 일주일일 수도 있었다. 한 달일 수도 있었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시간을 더 빨리 흐르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잠은 오지 않았다. 창밖에서 바람 소리가 들렸다. 마치 뭔가가, 대답을 기다리는 것처럼. 오전 2시. 여전히 잠들지 못한 채, 나는 손끝을 들여다봤다. 불꽃은 사라졌지만, 그 감각은 남아 있었다. 선택해야 했다. 그런데 선택하는 순간, 무언가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그게 마력이든, 아니면 남은 마음의 조각이든.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답을 정하지 못한 채 새벽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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