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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그로부터 오 년이 흘렀다. 아기였던 시절의 기억은 흐릿한 감각으로만 남아 있었지만, 그 이후의 시간들은 지독하게 또렷했다. 태어난 순간부터 이 몸에 들어와 있었다는 자각이 있었으니, 갓난아기 특유의 뭉그러진 시야조차도 나에게는 하나의 데이터로 저장되었던 셈이다. 설하늬는 매일같이 나를 저택 뒤편 숲으로 데려가 이런저런 훈련을 시켰는데, 처음에는 체력 단련이나 기초 예절 같은 평범한 것들이었다. 걷는 법, 넘어지는 법, 소리 내지 않고 숨는 법. 세 살짜리 꼬맹이한테 뭘 그렇게까지 가르치나 싶었는데, 돌이켜보면 그게 다 뒤에 이어질 지옥의 사전 훈련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세 살쯤부터는 조금씩 강도가 올라갔다. 나무를 오르내리는 훈련이 어느 순간 절벽 비슷한 곳을 오르내리는 훈련으로 바뀌었고, '숨는 법'은 어느새 '들키지 않고 하루를 버티는 법'으로 진화했다. 나는 그때마다 '이거 육아 맞나' 하는 의문을 품었지만, 입 밖으로 낸 적은 없었다. 다섯 살짜리 몸으로 그런 말을 했다가는 그냥 애가 조숙한 걸 넘어서 이상한 존재로 취급될 게 뻔했으니까. 그리고 다섯 살이 된 지금은... 그야말로 '위험 노출을 통한 성장'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지경이 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그 표현조차 너무 온화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날은 유난히 날씨가 흐렸다. 하늘이 낮게 깔려서 숲의 나무 그늘이 평소보다 훨씬 짙게 드리워졌고, 습기 찬 흙냄새가 코끝에 걸렸다. 설하늬는 나를 숲 깊은 곳으로 데려갔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그녀의 표정이 심각했다. 여느 때처럼 장난스럽게 웃으며 "오늘은 얼마나 굴러야 하려나" 하는 식의 농담도 없었다. 그저 걸음이 평소보다 빨랐고, 나를 이끄는 손에도 미묘하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오늘은 조금 특별한 훈련을 할 거다."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에 평소의 여유가 빠져 있었다. "저 앞쪽에, 하급 몬스터 한 마리를 유인해뒀어. 도망치지 말고 견뎌봐." '견뎌보라니, 이거 진짜 실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숲 안쪽에서 낮은 그르렁거림이 들려왔다. 회색빛 늑대형 몬스터였다. 몸통 곳곳에 검은 반점 같은 게 얼룩덜룩했고, 입가에는 침인지 뭔지 모를 것이 끈적하게 흘러 있었다. 붉은 눈이 나를 향해 고정되었고, 나는 다섯 살짜리 몸으로 그 시선을 마주하며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감각을 느꼈다. 심장이 갈비뼈를 두드리는 속도가 확연히 빨라졌고, 손끝이 저절로 떨렸다. '몸이 어른이었으면 이 정도로 떨리진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지만,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사치였다. 놈이 뛰쳐나왔다. 콰악!! 놈의 앞발이 허공을 갈랐고, 나는 반사적으로 뒤로 굴렀는데, 다섯 살짜리 몸으로는 그 정도 회피조차 아슬아슬했다. 굴러떨어진 자리에 낙엽이 잔뜩 흩날렸고, 등에 부딪힌 돌부리가 살갗을 긁는 감각이 뒤늦게 밀려왔다. '설하늬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하는 원망이 들었지만, 그녀는 나무 그늘 아래 서서 팔짱을 낀 채 지켜만 볼 뿐, 개입할 기색이 없었다. 그 무심한 표정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저 사람이 저렇게 태연하다는 건, 이게 진짜로 내가 견뎌내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뜻이었으니까. 두 번째 공격이 들어오는 순간, 나는 살아야 한다는 본능적인 절박함에 온몸을 웅크렸는데, 그 순간 뭔가가 몸속에서 뜨겁게 끓어올랐다.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배 속 어딘가, 정확히 짚어낼 수 없는 지점에서부터 열기가 확 퍼져나가더니, 그것이 손끝까지 도달하는 데는 채 일 초도 걸리지 않았다. 마치 오랫동안 잠겨 있던 수문이 열리는 듯한 느낌이었으니까, 나는 그게 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봉인된 마력의 일부가 각성했습니다.] [스킬 '무형의 파동'이 활성화되었습니다.] 그 문구가 시야 한켠에 떠오른 것과 동시에, 내 손끝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터져 나갔다. 콰과과광!!! 숲의 나무들이 반경 십여 미터에 걸쳐 그대로 쓰러졌고, 흙과 부러진 나뭇가지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늑대형 몬스터는 그 파동에 휩싸여 형체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졌는데, 정말로 '사라졌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핏자국도, 살점도, 뭣도 남지 않았다. 그냥 존재 자체가 지워진 것처럼.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고, 손끝에서는 아직도 뭔가가 미약하게 지릿거리고 있었다. 손바닥을 뒤집어 보니 옅은 빛이 스며들듯 사라지는 게 보였다. '...이게, 되네...?'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지만, 정작 나 자신도 방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법을 배운 적도 없고, 주문 하나 외운 적도 없는데, 어떻게 손끝에서 저런 게 터져 나온 걸까. 간단한 계산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일이었다. 숲의 정적이 한동안 이어졌다. 쓰러진 나무들 사이로 흙먼지가 서서히 가라앉았고,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정적을 깬 건, 설하늬의 목소리였다. "...이게, 뭐야."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그녀의 얼굴을 돌아보았는데, 늘 여유롭던 그 표정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그녀는 나무둥치를 붙잡고서야 겨우 서 있을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팔짱을 끼고 있던 조금 전의 그 태연함은 흔적도 없었다. "방금 그거... 마력 파동만으로 지형 자체를 지운 거야. 이건, 초급 마법사도 못 하는 짓이야." 그녀가 중얼거리며 나에게 다가왔는데, 그 걸음걸이가 어쩐지 조심스러웠다. 마치 내가 언제 또 손을 뻗을지 몰라 경계하는 사람처럼. "게다가... 형태도, 주문도, 마법진도 없이. 그냥 손끝에서 파동을 뽑아냈다고? 그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저 손을 내려다보았다. 다섯 살짜리 손이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통통했고, 손톱 밑에는 아까 구르면서 묻은 흙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작은 손에서 방금 벌어진 일을 생각하면, 나조차도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 세계에 마법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건 알았는데, 그 마법사들도 못 하는 일을 방금 내가 했다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자, 어쩐지 등골이 서늘해졌다. 압도적인 힘을 가졌다는 기쁨보다, 그 힘의 정체를 나조차 모른다는 불안이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 파동이 또 갑자기 터져 나온다면, 그 대상이 몬스터가 아니라 사람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설하늬는 그날 밤 저택으로 돌아가자마자 이수현을 찾았다. 나는 씻고 방에 눕혀졌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고, 결국 슬그머니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 앞까지 걸어갔다. 문 너머로 두 사람의 대화가 새어 나왔는데, 설하늬의 목소리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제가 전쟁터에서 별의별 마법사들을 다 봤습니다. 대마법사라 불리는 이들의 광역 마법도 목격했고요." 설하늬의 목소리에는 아까와 달리 격식이 서려 있었다. "그런데 방금 그 아이가 보여준 건, 그 어떤 것과도 궤가 달랐습니다. 통제도, 형식도 없이 그냥 힘을 뿜어낸 겁니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아십니까. 만약 저 아이가 그 힘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면..." "알아." 이수현이 짧게 답했다. 목소리에는 큰 동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내가 확신했던 이유이기도 해. 저 아이의 재능은, 우리가 아는 마법의 범주를 아예 벗어나 있어." "확신이라니,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저는..." 설하늬의 말이 잠시 끊겼다가 이어졌다. "저는 그 아이를 지키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근데 지금 이건,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감당해야 할 대상 아닙니까?" "둘 다야." 이수현이 답했다. "지키는 것과 감당하는 것. 둘 다 네 일이야, 설하늬."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문 뒤에 서서 조용히 숨을 죽였다. 발밑 마룻바닥이 서늘했고, 문틈으로 스며드는 촛불 그림자가 흔들렸다. 방금 벌어진 일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내 안에 자리한 무언가가 이제 막 눈을 뜨기 시작했다는 신호라는 걸, 그 순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이 앞으로 얼마나 더 자라날지, 나 자신조차 짐작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묘하게도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던 대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설하늬가 조용히 물었고, 이수현의 대답이 이어지기 전,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건, 어쩌면 그 대답이 내 남은 삶의 방향을 완전히 뒤바꿀 만큼 무거운 것이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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