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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무렵 왕도의 공작저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머니가 오랫동안 심어둔 정보원들의 보고서를 통해, 그리고 그 정보원의 정보원, 또 그 정보원의 하녀까지 거쳐 몇 단계를 지나 재구성할 수 있었던 이야기이니, 사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나 역시 어느 정도 어머니의 각색이 섞여 있을 가능성을 감안하고 들어야 했다. 하지만 뼈대가 되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것들이었고, 그 뼈대만으로도 충분히 등골이 서늘해지는 이야기였다. 왕국의 마력 감지 기관인 대신전 산하 관측소에는 왕국 전역의 마력 유동을 감지하는 오래된 결계망이 깔려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 결계망이라는 것도 수백 년 전에 구축된 낡은 시스템이라, 평소에는 그저 큰 몬스터가 발호하거나 던전이 붕괴할 때 정도나 반응하는, 말하자면 화재경보기 수준의 감지 장치였다는 모양이다. 화재경보기가 평생 딱 한 번 울릴 때가 있다면, 그건 아마 건물 전체가 통구이가 되는 순간일 텐데, 하필 그 결계망이 그 정도의 이상 반응을 보인 게, 다른 곳도 아니고 우리 집 지하 창고였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남작저 지하 창고에서 벌어진 그 사소한 사건, 즉 마족의 유물이 파괴되며 흘러나온 미약한 마력 파장을 그 낡은 결계망이 포착해버린 것이었다. 문제는 그 파장의 규모가, 관측소 설립 이래 단 한 번도 기록된 적 없는 수치였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 대목을 나중에 전해 듣고서 이렇게 생각했다. '그게 미약한 파장이었다고? 그럼 본체가 터졌으면 왕국이 통째로 사라졌다는 거잖아.'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사후의 감상일 뿐, 당시 관측소 사람들이 알 리 없는 이야기였다. "이게 대체 뭔지 파악이 안 됩니다." 관측소 책임자가 보고서를 들고 공작저를 찾아왔을 때, 그의 목소리에는 당혹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밤새 잠도 못 자고 수치를 재확인했다는 모양인데, 그럴 만도 했다. 계측기가 고장 났으려나 싶어서 세 번이나 새로 만들어 대조했는데도 같은 값이 나왔다면, 그 시점에서 이미 정상적인 사고 회로는 마비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파장의 발원지는 왕국 서쪽 외곽, 몰락한 남작령 인근으로 추정됩니다만, 그 규모로 보면 최소 대마법사급, 혹은 그 이상의 존재가 순간적으로 힘을 방출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 지역에는 그런 인물이 등록된 바가 없습니다." 그 보고를 받은 이가 바로 명은서였다. 원래 이수현이 지니고 있던 공작 지위를 정치적 실각을 이용해 탈취한 여인이었는데, 왕궁 내에서는 '난세의 간웅'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수완이 뛰어난 인물이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정보원 말로는, 그 별칭이 결코 좋은 뜻으로 붙은 게 아니었다고 하는데, 좋은 뜻으로 '간웅'이라 불릴 방법이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녀는 보고서를 훑어보다가, 이내 눈살을 좁히며 되물었다고 전해진다. "서쪽 외곽 남작령이라면... 이수현의 영지가 아닌가." 그녀의 목소리에는 옛 정적의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의 예민함이 스며 있었다고, 당시 자리에 있던 시녀가 나중에 어머니의 정보원에게 흘린 이야기다. 그 시녀 말로는, 명은서가 그 이름을 입 밖에 낼 때 손끝으로 탁자를 두 번 두드렸는데, 그게 그녀가 뭔가를 곱씹을 때 하는 오래된 습관이라고 했다. 사소한 습관 하나까지 정보원들이 물어다 나른다는 것도 참 대단한 일이었다. "그렇습니다만, 그 남작가는 이미 정치적으로 완전히 몰락한 상태입니다. 마력을 다룰 수 있는 인물이 남아 있을 리가 없습니다." 관측소 책임자가 조심스레 답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론이었을 것이다. 몰락한 가문, 재산도 없고 인맥도 없고 심지어 정식으로 등록된 마법사 한 명 없는 영지에서, 대마법사급 이상의 파장이 터졌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였으니까. "그렇다면 더 이상하지 않은가." 명은서가 낮게 말했다고 한다. "마력이 없는 곳에서, 마력이 있어야만 나올 수 있는 파장이 감지됐다는 거지. 그것도 우리가 아는 어떤 등급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규모로."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고도 전해진다.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일수록, 오히려 더 파고들어야 하는 법이야.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에는, 상식으로는 상상도 못 할 무언가가 있는 법이니까." 회의실 안의 중론은 대체로 두 방향으로 나뉘었다고 전해진다. 한쪽은 이것을 단순한 관측 오류나 유물의 잔재 폭발로 치부하고 넘어가자는 의견이었고, 이 쪽 사람들은 몰락한 남작령까지 조사대를 파견하는 데 드는 비용과 인력이 아깝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다른 한쪽은 정체불명의 강대한 존재가 왕국 안에서 은밀히 자라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니 즉각 조사대를 파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는데, 이들은 만약 그 힘이 왕국의 적대 세력, 혹은 마족과 관련된 무언가라면 초기에 파악해두지 않았다가는 나중에 손쓸 수 없는 재앙이 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쳤다고 한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오갔지만, 명은서는 그날 결론을 내리지 않고 회의를 마쳤다고 하는데, 그것이 오히려 더 불길한 신호였다는 게 나중에 어머니가 내린 평가였다. 그녀는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절대 서두르지 않는 성격이었고, 그건 확신이 서는 순간 반드시 움직인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어머니는 이 이야기를 나중에 나에게 전해주면서 이렇게 평했다. "명은서라는 여자는, 겁이 많아서 조심스러운 게 아니라, 확실하지 않은 패에 힘을 쏟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이야. 그러니 지금 당장 조사대를 안 보냈다는 건 안심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뒤에서 조용히 뭔가를 알아보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해."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거 그냥 넘어갈 사건이 아니었네.' 세계 최초 등급을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벅찼던 참인데, 왕국 최고 권력자의 시선까지 걸려버렸다는 건, 솔직히 감당하기엔 조금 과분한 스케일이었다. 그 무렵 나는 이런 소동이 왕도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그저 손바닥에 남은 작은 상처가 낫기를 기다리며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남작저의 살림은 여전히 궁핍했다. 몰락한 가문이라는 게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 식사 때마다 반찬 수가 줄어드는 걸로 체감되는 현실이었으니, 며칠 전까지는 감자 수프에 빵이 곁들여 나왔는데 어느 날부터 감자 수프만, 그리고 또 며칠 뒤에는 그 감자마저 줄어드는 걸 보며 나는 속으로 남작가의 곳간 사정을 대략 계산해보기도 했다. 세계 최초의 등급을 가진 존재가 저녁 끼니로 딱딱한 보리빵 한 조각을 씹고 있는 이 그림이, 생각해보면 어지간히 우스운 대비이기는 했다. 씹을 때마다 턱이 아플 정도로 딱딱한 빵을 삼키면서 나는 종종 생각했다. '스탯이 아무리 높아봐야 소용없네. 이 빵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스킬은 없나.' 하지만 그런 소소한 일상 속에서도, 이수현의 얼굴에는 점점 더 짙은 그늘이 내려앉고 있었다. 그녀는 정보원들로부터 흘러들어오는 왕도의 동향을 매일같이 확인했는데, 저녁마다 서재에 틀어박혀 편지를 읽고 또 읽는 그녀의 뒷모습을 나는 몇 번이나 문틈으로 훔쳐보았다. 그때마다 그녀의 어깨는 조금씩 더 굳어가는 것처럼 보였고, 나는 그게 단순한 피로 때문이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녀는 서재에 나를 조용히 불러 앉혔다. 다섯 살짜리치고는 지나치게 진지한 대화였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하준아. 왕도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 정체불명의 강대한 힘이 서쪽에서 감지됐다는 소문. 아직 우리를 정확히 지목하는 건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저들은 이 영지까지 눈을 돌릴 거야."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마른침을 삼켰다. '들켰나?' 하는 불안이 스쳤지만, 이수현의 표정은 오히려 차분했다. 이미 예상했던 위험이었다는 얼굴이었다. 그 차분함이 오히려 나를 더 불안하게 했는데, 이수현이라는 사람은 원래 위기 앞에서 표정을 잃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녀가 이렇게 담담하게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상당히 심각한 사안이라는 뜻이었다. "명은서라는 여자가 지금 그 소문의 중심에 있어." 그녀가 낮게 덧붙였다. "내 정적이고, 지금의 공작 지위를 나에게서 빼앗아간 사람이야. 만약 저 여자가 이 힘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그녀는 말을 끝맺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뒷말을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수현의 손이 무릎 위에서 살짝 떨리고 있었던 것을, 나는 그날 처음 눈치챘다. 몰락한 가문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늘 흐트러짐 없던 그녀의 손끝이 떨린다는 건, 그녀조차 이 사태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남작저의 낡은 담벼락 너머, 어딘가에서 이미 우리를 향해 조여오는 시선이 있다는 걸, 나는 그날 밤 처음으로 실감했다. 그리고 그 시선의 끝에 있는 이름이, 다름 아닌 왕국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라는 사실이, 다섯 살짜리 몸으로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무거운 현실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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