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요람 속의 마법사

2화

협회 건물은 도시 중심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석조 건물이었다. 입구에는 두 개의 거대한 마력석 조각이 세워져 있었다. 빛을 잃은 지 오래된 돌덩이였지만, 한때는 푸른빛을 뿜었다고 전해졌다. 정문을 지나자 공기가 달라졌다. 바깥의 온기와는 다른,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닿았다. 도윤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돌바닥에서 냄새가 났다. 먼지. 그리고 오래된 마력석 냄새. 거기에 더해 낡은 종이와 촛농이 섞인 냄새도 났다. 복도 양옆으로 대기하는 가족들이 보였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서 있었다. 어떤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다. 어떤 아이는 이미 측정을 마치고 나온 듯,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태호는 도윤의 손을 잡은 채 앞장서서 걸었다. 서윤은 그 옆에서 아무 말 없이 걸음을 맞췄다. 남작가의 위신 때문인지, 지나가는 다른 귀족들이 가볍게 목례를 건넸다. 태호는 그때마다 짧게 고개를 숙였다. 측정실 앞에 도착하자 문지기가 명부를 확인했다. "청하 남작가, 차남 도윤 님." 문지기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했다. 문이 열렸다. 측정관은 백발의 노인이었다. 등이 살짝 굽었고, 안경 너머 눈은 지친 듯 보였지만 눈빛만은 날카로웠다. 그는 도윤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청하 남작가의 막내로군." 태호가 앞으로 나섰다. "그렇습니다." "이쪽으로." 측정관은 손짓으로 방 안쪽을 가리켰다. 방 한가운데 커다란 수정구가 놓여 있었다. 크기는 도윤의 몸통만 했고, 색은 투명한 유리처럼 맑았다. 받침대는 검은 철로 만들어졌고, 표면에는 작은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점. 선. 물결. 탑. 도윤은 그 문양들을 눈에 담았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측정관이 다가와 도윤의 손을 그 위에 얹었다. 수정구는 차가웠다. 손바닥에 닿는 감촉이 마치 얼음 같았다. "손바닥을 대고, 마음속으로 원하는 걸 떠올려 보게." 방 안의 모든 시선이 도윤에게 향했다. 태호는 숨을 죽였다. 서윤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았다. 도윤은 눈을 감았다. 뭔가를 떠올리려 했다. 불꽃. 바람. 물. 전생에서 본 게임과 소설 속의 마법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화염구를 쏘아내는 마법사. 검에 바람을 두르는 기사. 물의 방패를 두르는 사제. 그 장면들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수정구는 반응하지 않았다. 도윤은 더 강하게 집중했다. 손끝에 힘을 주었다. 이마에 땀이 살짝 배어 나왔다. 그저 미미한 빛이 한 번 깜빡였을 뿐이었다. 측정관의 눈썹이 움직였다. 그는 다시 안경을 고쳐 썼다. 수정구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고장이 난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손짓이었다. 서윤의 손이 태호의 옷깃을 살짝 움켜쥐었다. 태호는 미간을 좁힌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측정관이 두루마리를 펼쳤다. 펜을 들었다. 잠시 망설이는 듯 펜 끝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 그리고 숫자를 적어 넣었다. "측정 결과, 마력 등급 최하위. 측정 가능한 수치의 최저 수준이오." 방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바깥 복도에서 들리던 다른 가족들의 웅성거림조차 순간 멀어진 것 같았다. 태호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서윤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했다. "다시 측정해볼 수 있습니까." 태호가 물었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측정은 한 번뿐이오. 규정이오." 측정관이 두루마리를 접었다. 사무적인 손놀림이었다.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해 온 절차라는 것을 그 손짓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안타깝지만 이 아이는 마법사로서의 미래는 기대하기 어렵겠소." 측정관은 도윤을 향해서는 별다른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저 다음 서류를 준비하며 자리를 정리했다. 도윤은 그 무심함이 오히려 담담하게 느껴졌다. 문밖으로 나오자 대기하던 다른 귀족들의 눈이 잠깐 이쪽을 향했다. 누군가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고, 누군가는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본 듯한 얼굴을 했다. 태호는 그 시선들을 애써 무시하며 걸음을 옮겼다. 마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은 조용했다. 바퀴가 돌길에 부딪히는 소리만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서윤은 창밖만 보고 있었다. 거리의 풍경이 스쳐 지나갔지만, 서윤의 눈에는 아무것도 담기지 않는 듯했다. 태호는 눈을 감고 있었다. 팔짱을 낀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도윤은 자신의 작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마디, 손톱의 모양, 손바닥의 주름. 전생과는 전혀 다른 몸이었다. 그런데도 실망을 안겨주는 것은 똑같았다. 억울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부모의 실망이 자신을 짓누르는 것이 느껴졌다. 말은 없었지만, 침묵의 무게가 마차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전생에서 그는 늘 결과로 평가받았다. 성적표. 실적표. 숫자. 사람들은 결과 뒤의 과정 따위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숫자 하나로 미래가 결정되는 세계였다. 저녁, 저택에 도착했다. 현관에서 집사가 마차 문을 열어주었지만, 평소와 달리 그 누구도 안부를 묻지 않았다. 식탁에 앉은 가족들의 얼굴엔 그림자가 걸려 있었다. 도현은 접시를 내려다보며 포크를 만지작거렸다. 서은은 도윤을 흘깃 보고는 다시 시선을 거뒀다. 침묵이 이어지자 도현이 애써 밝게 말했다. "뭐, 마력이 없어도 나처럼 검을 배우면 되지. 형이 가르쳐줄게." 목소리는 밝았지만, 어딘가 억지스러운 밝음이었다. 서은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소리가 유독 크게 났다. "검도 재능이 있어야 배우는 거야." 식탁에 다시 정적이 흘렀다. 도현의 표정이 굳었다. "서은아." 서윤이 조용히 이름을 불렀다. 서은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시선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 시선이 잠시 도윤에게 머물렀다가, 다시 자신의 접시로 돌아갔다. 태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평소보다 손이 느렸다. 도윤은 묵묵히 수프를 떠먹었다.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뜨겁다는 감각만 혀에 남았다. 식사가 끝나고, 도윤은 유모의 손에 이끌려 방으로 돌아왔다. 복도를 지나는 동안 유모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도윤의 손을 조금 더 세게 쥐었을 뿐이었다. 유모는 도윤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얼굴에 주름이 깊게 밴 여인이었다. 이 저택에서 삼십 년 가까이 일해 온 사람이었다. 손이 크고 따뜻했다. 그 손으로 도현과 서은, 그리고 도윤까지 모두 키워냈다. 방문을 열자 램프 불빛이 은은하게 방 안을 비추고 있었다. 유모는 이불을 정리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도윤 님, 속상하시죠." 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짧은 대답이었지만 유모는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이답지 않게 침착한 것이 이 아이의 원래 성격이라 여겼다. 유모는 그 이상 캐묻지 않고, 대신 도윤의 이마를 한 번 쓸어주었다. "편히 쉬세요. 내일은 또 내일이니까요." 유모가 방을 나가고 문이 닫혔다. 발소리가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방에 홀로 남은 도윤은 침대에 걸터앉았다. 협회에서 수정구에 손을 얹었을 때의 감각이 다시 떠올랐다. 차가운 표면. 미미하게 깜빡이던 빛. 측정관의 무심한 손짓. 마력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전생의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그가 알던 세계에서는 재능이 숫자로 매겨지지 않았다. 노력과 반복, 그리고 우연이 뒤섞여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 세계도 정말 숫자 하나로 전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일까. 그는 손을 뻗어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인 나무 인형을 바라보았다. 낡은 인형이었다. 색이 바랜 옷을 입고 있었고, 눈은 단순한 점 두 개로 그려져 있었다. 전생의 습관처럼, 무언가에 집중하고 싶을 때 시선을 고정하는 버릇이 있었다. 방 안은 조용했다. 창밖에서 아주 희미한 벌레 울음소리가 들렸다. 램프의 불빛이 흔들릴 때마다 인형의 그림자도 조금씩 흔들렸다. 도윤은 인형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저 시선만 고정한 채,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그런데 인형이 살짝, 아주 살짝 움직였다. 도윤은 숨을 멈췄다. 착각일 수도 있었다. 바람이 창틈으로 들어왔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 다시 봤다. 인형은 그대로 있었다. 착각이었을까. 손끝이 저릿했다. 분명 무언가가 손끝에서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마치 손바닥 밑에서 실이 팽 당겨졌다가 툭 끊어진 것 같은 감각이었다. 도윤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무 흔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 저릿함은 분명했다. 전생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낯선 감각이었다. 창밖에서 바람 소리가 났다. 나뭇가지가 창을 스치는 소리였다. 방문 밖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느리고, 규칙적인 발소리였다. 도윤은 문 쪽을 바라보았다. 문틈 사이로 그림자 하나가 서 있었다.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온 가족이 저녁을 마치고 각자 방으로 들어간 지 오래였다. 유모도 이미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을 시간이었다. 그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은 채,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문틈으로 새어드는 빛조차 그 그림자의 형체를 온전히 비추지 못했다. 도윤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숨을 죽인 채, 그림자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그림자도, 도윤도, 그렇게 서로를 마주한 채 시간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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