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예정된 파멸, 마검 소환

4화

그로부터 두 해가 더 흐른 뒤, 나는 일곱 살이 되었다. 이 나이는 가온제국의 명문가에서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시기였는데, 그 이유는 이 나라의 귀족가 전통상 만 일곱 살이 되면 가문 차원에서 자녀의 마력 등급을 공식적으로 측정하는 의식을 치르기 때문이었다. 게임 설정으로도 익히 알고 있던 절차였고, 이것을 통과하면 아이는 정식으로 가문의 후계자 후보로 인정받게 된다고 했다. 요컨대, 이 의식은 그냥 통과의례가 아니라 앞으로 내 인생 전체의 방향을 결정짓는 분기점이라는 뜻이었고, 나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두 해 동안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몸을 사렸다. 숲에서의 그 사건 이후, 아버지도 어머니도 대놓고 묻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가 은밀하게 오간다는 건 눈치로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기를 바라며, 최대한 평범한 아이처럼 굴려고 애썼다. 낮잠도 자고, 흙장난도 하고, 가끔은 일부러 서툴게 검술 흉내도 냈다. 목검을 쥐고 허공을 휘두르다가 일부러 균형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검술 교관이 "도훈 도련님은 역시 검보다는 다른 쪽이 맞으신 것 같습니다"라고 은근히 위로랍시고 던지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라며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심지어 글공부 시간에도 일부러 답을 반쯤 틀리게 적어 내는 정성까지 들였으니, 그 정도면 나름 프로급 위장이었다고 자부할 만했다. 그러나 그 노력이 이 의식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요컨대, 마력 측정이라는 건 본인의 의지로 숨길 수 있는 종류의 결과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흙장난을 잘하고 검술을 못 하는 척을 해도, 감응석은 그런 연기를 봐줄 만큼 자비롭지 않았다. 그건 그냥 기계였고, 기계는 진실만을 뱉어냈다. 의식은 저택 뒤편의 마력 감응석 앞에서 진행됐다. 감응석은 사람 키만 한 크기의 회색 수정 기둥이었는데, 손을 얹으면 그 사람이 가진 마력의 총량과 순도, 그리고 특수 스킬의 유무를 자동으로 판정해 등급으로 표시하는 물건이었다. 등급은 F부터 시작해서 E, D, C, B, A, 그리고 최상위인 S까지 존재했는데, 명문가라 해도 대체로 자녀 대는 D에서 C 사이에서 결정되는 게 보통이었다. 원작 게임 지식에 따르면 남주인공조차도 유년기엔 C등급에서 시작해 훈련을 거치며 A까지 끌어올리는 서사를 밟는다고 했으니, 그 정도가 이 세계의 '평범한 재능 있는 주인공'의 기준선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그 기준선보다 한참 아래, 그러니까 D나 E 정도에서 조용히 끝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준비됐니, 도훈아?" 어머니가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응석 앞에 섰다. 손바닥에 땀이 배는 게 느껴졌는데, 그게 긴장 때문인지 그냥 계절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주변에는 가문의 원로 몇 명과, 이 지역을 관할하는 마법사 협회에서 파견된 감독관 한 명이 서 있었다. 절차상 반드시 외부 감독관이 참관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 외부인의 존재가 나를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가족들끼리라면 어떻게든 결과를 무마할 수 있을지 몰라도, 협회 소속 감독관이 두 눈으로 직접 지켜보는 상황에서는 그런 얕은수가 통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낮게 나오면 좋을 텐데.' 나는 손을 얹기 직전까지도 그런 생각을 했다. 어차피 마력 등급이 낮게 나오는 게 이 모든 상황에서 가장 무난한 결말이라는 계산이었다. D등급 정도면 원로들도 적당히 실망하고 넘어갈 것이고, 나는 그 틈에서 조용히 잊혀진 장남 정도의 위치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나름 합리적인 시나리오였다. 그러나 손을 얹는 순간, 나는 그런 계산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 곧바로 깨달았다. 감응석이 새하얗게 빛났고, 이내 그 빛이 지나칠 정도로 밝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측정 절차의 일부인가 싶었는데, 빛이 사그라들지 않고 오히려 점점 강해지는 걸 보면서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직감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원로들 사이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이게 뭐지...?" 누군가가 중얼거렸고, 이내 감응석 위로 문자가 새겨졌다. [측정 완료.] [마력 등급 : S] [특수 스킬 감지 : 존재함 (미분류)] S라는 글자가 새겨지는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얼어붙은 듯 멈췄다. 감독관은 눈이 튀어나올 듯 감응석을 노려보다가, 이내 자신의 수첩을 뒤적이며 뭔가를 확인했다. 손이 떨리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는데, 아마 그 수첩 안에 있는 과거 측정 기록들 중에 지금 내 결과와 비교할 만한 사례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일 거라고 짐작했다. "S등급이라니... 가온제국 건국 이래 일곱 살 나이에 S등급을 받은 사례는, 제가 아는 한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가장 눈에 띄지 않아야 할 순간에, 최초의 기록이라는 정반대의 결과를 만들어 버린 셈이었다.' 두 해 동안 그렇게 애써 숨기고 죽여왔던 노력들이, 감응석 앞에서 단 몇 초 만에 전부 무의미해져 버린 셈이었다. 흙장난도, 서툰 검술 흉내도, 반쯤 틀리게 적어낸 답안지도, 전부 이 결과 하나로 깔끔하게 무효 처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허무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원로 한 명이 헛기침을 하며 나섰다. "자, 잠깐만. 측정 오류일 수도 있으니 다시 해보는 게 어떻겠나." 그 말에는 은근한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섞여 있었는데, 아마 본인도 이게 오류이길 바라는 마음과, 만약 오류가 아니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계산이 동시에 돌아가고 있었을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재측정 결과도 똑같았다. S등급, 그리고 미분류 특수 스킬. 나는 두 번째 측정이 끝나는 순간, 이제 도망칠 구석이 없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세 번째로 측정해도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게 분명했으니, 원로들도 더 이상 재측정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팔짱을 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 표정에는 걱정과 함께 이상하게도 옅은 자부심 같은 게 섞여 있었다. 장남에게서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는 놀라움과, 그래도 내 핏줄에서 이런 재능이 나왔다는 데에서 오는 이상한 만족감이 뒤섞인 표정이었다고 나는 해석했다. 반면 어머니의 얼굴은 시종일관 굳어 있었다. 그녀는 이 결과가 축복이 아니라는 걸, 나보다 먼저 직감한 듯했다. 어머니의 그 표정을 보면서, 나는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세계에서 지나치게 눈에 띄는 재능이란, 곧 지나치게 많은 시선과 위험을 끌어들이는 것과 동의어였으니까. "이 결과는... 당분간 외부에 공표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감독관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지만, 원로 한 명이 곧바로 반박했다. "협회 규정상, S등급 측정 결과는 즉시 협회 본부에 보고해야 하지 않나?" "그, 그렇긴 합니다만..."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숨겨줄 이유가 자네에게 있나?" 감독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게 보였다. 그도 이 결과를 어떻게든 조용히 덮어주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협회 규정과 원로의 압박 사이에서 어느 쪽도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듯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팽팽하게 부딪히는 걸 보며, 나는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게임 지식대로라면, 이 순간부터 강도훈이라는 이름은 서서히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해야 했다. 문제는 그게 파멸로 가는 첫걸음이라는 사실을, 나만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이 결과가 얼마나 대단한지, 혹은 얼마나 부담스러운지에 대해서만 논쟁하고 있었지,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짐작조차 못 하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잠든 척하며 부모님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다.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촛불 빛이 흔들리는 걸 보면서, 나는 이불 속에서 최대한 숨소리를 죽였다. "보고를 미룰 수는 없어요."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미루지 않으면, 도훈이는 이제부터 궁정의 시선을 받게 될 거야." 아버지가 낮게 대답했다. "그게 두려운 거예요. S등급 아이가 우리 같은 가문에서 나왔다는 게 알려지면..." 그 뒷말은 끝내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이불 속에서 두 눈을 꼭 감으며 생각했다. '이미 늦었다. 그 감독관은 오늘 밤 안에 협회에 보고서를 올릴 거고, 그 보고서는 곧 궁정까지 흘러갈 거다.' 협회라는 조직이 규정을 어기고 이런 특급 사안을 조용히 덮어줄 만큼 관대하지 않다는 건, 굳이 게임 지식이 없어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며칠, 혹은 몇 주. 그 안에 강도훈이라는 이름이 궁정 어딘가의 서류철에 올라가게 될 것이고, 그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조용히 숨어 지낼 수 있는 장남이 아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내가 잠들기도 전에 이미 현실이 되고 있었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