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예정된 파멸, 마검 소환

5화

그 시각, 제국의 수도 아렌시아. 마법사 협회 본부 4층 회의실에서는 밤늦은 시간까지 등불이 꺼지지 않고 있었다. 훗날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지방 감독관이 올린 보고서 한 장이 협회 상층부를 통째로 흔들어 놓았다고 했다. 나는 당연히 그 자리에 없었고, 그날 밤 내가 하고 있던 일이라곤 저택 마당에서 나무 막대기를 휘두르며 노는 것뿐이었지만, 훗날 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을 때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니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순전히 나중에 주워들은 조각들을 내 나름대로 이어붙인 재구성이라는 걸 미리 밝혀둔다. "S등급... 만 일곱 살에 말입니까?" 협회장 레온하르트가 보고서를 세 번째 읽으며 되물었다고 한다. 세 번째. 한 번 읽고 넘길 수 없어서, 두 번 읽고도 믿기지 않아서, 결국 세 번째까지 손이 갔다는 뜻이었다. 그의 맞은편에 앉은 부협회장 셀리나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저었다. "측정 오류가 아니라면, 이건 건국 이래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최연소 S등급 기록이 지금까지는 열다섯 살 아이였고, 그것도 왕가 직계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강씨 가문에서 나왔다고?" 레온하르트가 미간을 좁혔다. 강씨 가문이라면 몰락한 명문가 축에 속했다. 검술로는 이름이 있지만 재산은 변변찮고, 궁정 내 인맥도 거의 끊긴 지 오래인 집안. 그런 곳에서 제국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 나왔다는 게, 그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왕가 직계도 아니고, 대마법사 가문도 아니고, 심지어 최근 십 년간 협회에 후원금 한 번 내지 않은 몰락 귀족이라니. 차라리 협회 창고에서 도난당한 감응석이 오작동했다는 쪽이 더 그럴듯한 설명이었다. "게다가 더 문제는 이겁니다." 셀리나가 보고서의 다른 항목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특수 스킬이 감지됐는데, 분류 불가라고 합니다. 감응석이 스킬의 존재는 확인했지만, 어떤 계통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회의실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감응석이 스킬의 계통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건, 그것이 기존에 등록된 어떤 스킬 체계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었고, 이는 대체로 두 가지 경우에만 일어나는 일이었다. 하나는 신급 유물에 의해 부여된 스킬, 다른 하나는 오래전 절전된 고대 계통의 스킬. 둘 다 흔치 않은 일이었고, 둘 다 그냥 넘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협회의 역사를 통틀어도 분류 불가 판정이 내려진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그 손에 꼽는 사례들 중 절반은 후에 국가 전쟁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들이었다는 게, 셀리나가 굳은 표정을 풀지 못한 이유였다. "신급 유물이라면 어디서 그런 게 나왔단 말입니까." 레온하르트가 관자놀이를 짚었다. "몰락한 검술 가문 아이 하나한테 신급 유물이 굴러들어 갔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절전된 고대 계통이라는 것도 말이 안 되죠. 그런 게 남아 있었다면 벌써 옛날에 감찰원 기록에 올라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문제라는 겁니다." 셀리나가 짧게 답했다. "둘 다 말이 안 되는데, 눈앞의 숫자는 부정할 수 없으니까요." "이 건은 즉시 궁정 감찰원에도 통보해야겠군요." 레온하르트가 무겁게 말했다. 마법사 협회와 감찰원은 서로 관할이 다르지만, S등급 이상의 인재나 미분류 스킬 보유자에 대해서는 반드시 감찰원과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창설 이래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지켜져 온 규정이었고, 이번에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이미 통보했습니다. 다만..." 셀리나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어 붙였다. "감찰원 쪽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모양입니다. 즉시 조사관을 파견해야 한다는 쪽과, 아직 어린아이이니 몇 년은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쪽으로." 그 당시 감찰원 내부의 분위기는, 사실 협회보다도 더 복잡했다. 젊은 급진파 조사관들은 이 아이를 최대한 빨리 궁정으로 데려와 국가 자산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그들의 논리는 명확했다. S등급의 재능은 자칫 방치될 경우 타국에 유출되거나, 최악의 경우 반란 세력에 흡수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인접국인 서쪽의 왕국이 최근 몇 년간 유망한 신동들을 은밀히 매수해온 전례가 있다는 첩보까지 겹쳐, 급진파의 목소리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반면 원로급 감찰관들은 정반대의 입장이었다. 일곱 살짜리 아이에게 강제로 궁정의 시선을 들이대는 건 오히려 반발을 불러올 뿐이며, 강씨 가문 정도의 세력이라면 어차피 몇 년 안에 자연스럽게 궁정과 접점을 만들 수밖에 없으니,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논리였다. 게다가 몰락 귀족을 다루는 데는 섬세함이 필요하다는 점도 원로들이 즐겨 꺼내는 카드였다. 자칫 힘으로 밀어붙였다가 그 가문이 다른 대귀족의 그늘로 숨어들면, 오히려 협회와 감찰원 모두가 손을 놓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였다. 그 대립은 회의를 거칠수록 오히려 격화되었는데, 그 이유는 단순히 의견 차이 때문이 아니라, 이 사안이 가진 정치적 무게 때문이었다. 만약 이 아이가 훗날 정말로 대단한 인물로 성장한다면, 그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후원한 세력이 엄청난 정치적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반대로 잘못 건드렸다가 반발을 사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성급하게 움직인 쪽에 돌아갈 것이었다. 그러니 다들 몸을 사리면서도, 동시에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눈치 싸움만 벌이고 있는 게 당시의 상황이었다. 누군가는 이런 눈치 싸움을 두고, 먹지도 못하는 떡을 서로 침 발라 놓는 격이라 표현했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꽤 정확한 비유였다. "일단은," 레온하르트가 손을 들어 회의실을 정리했다. "협회 차원에서는 정기적으로 재측정만 요청하는 걸로 하고, 감찰원의 최종 결정을 기다립시다. 다만..." 그가 보고서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보며 덧붙였다. "이 아이의 이름은, 아무래도 계속 주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강도훈. 기억해두세요." 그렇게 회의실의 등불이 꺼지고, 협회 명의의 서신 한 장이 만들어지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강씨 가문의 저택에는 협회 명의의 서신이 한 장 도착했다. 정기 재측정을 요청한다는 내용의, 겉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공문이었다. 종이의 재질도 특별할 것 없었고, 문구도 관공서 특유의 딱딱한 격식체로만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 강미래는 그 서신을 읽고서 오랫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는데, 나는 그녀의 표정에서 뭔가 심상찮은 걱정을 읽어냈다. 평소라면 편지 한 장 읽는 데 채 십 초도 걸리지 않던 사람이, 같은 종이를 몇 번이나 다시 훑어보며 손끝으로 문장을 짚어가고 있었다. "어머니?" 내가 조심스레 물었지만, 그녀는 애써 웃으며 서신을 접어 넣었다. "별일 아니야, 도훈아. 그냥 협회에서 확인할 게 좀 있다는구나." 그 웃음이 조금 늦게 나왔다는 걸, 나는 알아차렸다. 표정과 말 사이에 아주 짧은 간극이 있었고, 그 간극 속에 무언가를 삼키는 기색이 있었다. 일곱 살짜리가 뭘 알겠냐고 하면 반박할 말은 없지만, 적어도 나는 그 침묵의 무게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그 말과 달리, 저택의 곳간은 그날부로 평소보다 훨씬 조용해졌다. 나는 부엌을 지나다가, 이번 달 식료품 예산을 두고 하녀장과 어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실랑이를 벌이는 걸 얼핏 들었다. "마님, 이번 달은 고기를 아예 빼야 할 것 같습니다. 재측정 비용까지 겹치면..." "...알아. 알고 있어. 조금만 더 줄여봐요." 명문가라는 이름값에 비해, 우리 가문의 재정은 생각보다 훨씬 빈약했다는 걸, 나는 그날 처음 제대로 실감했다. 검이 벽에 걸려 있고 가훈이 현판에 새겨져 있다고 해서 곳간이 채워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겨우 일곱 살짜리가 배우기엔 조금 이른 교훈이었다. 재측정이라는 게 대체 얼마나 대단한 절차이기에 식탁에서 고기 한 점이 사라지는 건지, 그때의 나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협회라는 곳이 우리 집 사정을 조금도 고려해주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압도적인 재능과 궁핍한 곳간. 그 사이에서, 나는 이제 협회의 재측정 날짜가 다가올수록, 이 평온한 일상이 얼마나 더 유지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게 되어가고 있었다. 아렌시아의 회의실에서 오간 말들을, 나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다만 훗날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이 서신 한 장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계산과 눈치 싸움 끝에 우리 집 대문을 두드렸는지를 비로소 깨달았다. 그리고 그 계산 속에 내가 어떻게 놓여 있었는지도, 조금씩 실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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