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혼혈 소년의 금단마법

3화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짐승도 아니었다. 키는 3미터쯤 되었고, 몸은 그늘 그 자체처럼 검었다. 형체가 뚜렷하지 않고 연기처럼 흐릿한 경계선을 가지고 있었다. 눈이라고 부를 만한 부위에서 옅은 붉은 빛이 새어 나왔다. 숲 전체가 숨을 죽인 것 같았다. 바람도 멈췄다. 새소리도 사라졌다. 오직 그것의 존재감만이 공기를 짓누르고 있었다. "저게… 뭐야." 최민재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조현수가 떨리는 손으로 정찰 스킬을 다시 시전했다. "등급 측정 불가. 아예 반응이 안 잡혀요." "다시 해봐. 다시!" "몇 번을 해도 똑같아요. 시스템이 저걸 인식조차 못 하는 거예요." 강태오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나는 그 표정을 처음 봤다. 항상 여유롭던 리더의 표정이 저렇게 무너지는 걸. 이 사람이 흔들리면 우리는 끝이다. 그 생각이 스치자 속이 뒤틀렸다. "전원 전투 준비. 오형준, 원거리로 견제 들어가." "네, 넵!" 오형준의 손끝에 화염 구체가 만들어졌다. 마력 47이 만들어내는, 이 파티에서 가장 강력한 화력이었다. 그 불빛이 오형준의 얼굴을 아래에서 붉게 물들였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받아라!" 화염구가 그것을 향해 날아갔다. 콰앙! 적중했다. 불길이 그 검은 형체를 뒤덮었다. 순간 나는 기대했다. 통했다고. 이걸로 끝날지도 모른다고. 심장 어딘가에서 안도가 새어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불길이 걷히자, 그것은 그대로 서 있었다. 상처 하나 없이. 오히려 그 붉은 눈이 조금 더 밝게 빛나는 것 같았다. 마치 불을 삼킨 게 아니라 즐긴 것처럼. "뭐, 뭐야, 왜 안 먹혀!" 오형준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두려움이 섞였다. "다시! 한 번 더!" 강태오가 소리쳤다. "이미 최대 위력으로 쐈어요! 이게 최대라고요!" "그럼 마력을 더 모아! 시간을 끌어도 돼!" "그거 하려면 최소 10초는 걸려요, 그 전에 우리 다 죽어요!" 오형준의 자부심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력 47, 파티 최고의 화력. 그게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오형준의 화염구 한 방으로 정리되지 않던 몬스터는 없었다. 그게 이 파티의 자신감이었고, 그 자신감이 지금 저 검은 형체 앞에서 재처럼 무너지고 있었다. 그것이 움직였다. 한 걸음. 느린데도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마치 공간을 접어서 건너오는 것 같았다. 두 걸음. 배진우가 화살을 쐈다. 화살은 그것의 몸을 그대로 통과해 나무에 박혔다. "물리 공격도 안 통해요!" 배진우가 다시 화살을 메겼다. 손끝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럼 뭐가 통하는 건데! 뭐라도 말해봐!" 세 걸음째, 그것은 이미 파티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흩어져!" 강태오가 소리쳤다. 모두가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나도 옆으로 굴렀다. 등이 나무뿌리에 부딪혔다. 아팠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땅바닥에서 고개를 들었다. 시야가 흔들렸다. 파티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지만, 그 흩어짐이 오히려 우리를 더 취약하게 만든 것 같았다. 검은 형체의 팔 같은 부위가 채찍처럼 뻗어 나왔다. 서걱. 최민재가 검으로 막았지만 팔이 그대로 잘려나갔다. 아니, 잘린 게 아니라 검이 뭔가에 흡수된 것처럼 사라졌다. "검이! 검이 없어졌어!" 최민재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그의 손에는 이제 손잡이만 남아 있었다. 칼날이 통째로 사라진 자리를, 그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바라봤다. "물러나! 전원 후퇴!" 강태오의 명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후퇴할 공간조차 그것이 만들어내는 기이한 정적 속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발이 땅에 붙은 것 같았다. 도망치자는 명령과 몸이 따로 움직이는 것 같은, 그런 이질감이었다. 윤성민이 내 옆으로 뛰어와 나를 뒤로 밀었다. "넌 물러나 있어." "성민 형!" "내가 맡기로 했잖아. 보호자." 그의 단창이 그것을 향해 겨눠졌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 떨림을 봤다. 성민 형도 무서운 거다. 당연하지. 이건 누구라도 무서워야 정상인 존재였다. "형, 이건 아니에요. 다른 방법을 찾아봐요." "방법 찾을 시간이 없잖아." 그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나는 그 침착함이 억지로 눌러 만든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의 붉은 눈이 윤성민을 향했다. 마치 표적을 정하는 것처럼. "성민 형, 피해요!" 내가 소리쳤다. "괜찮아, 내가 이걸 막으면 다들―" 그것의 채찍 같은 팔이 다시 뻗어 나왔다. 서걱. 윤성민의 옆구리를 그대로 관통했다. "으아악!" 비명이 숲을 갈랐다. 윤성민이 무릎을 꿇었다. 검은 액체 같은 것이 그의 상처에서 흘러나왔다. 피가 아니었다. 뭔가 다른 것이었다. 끈적하고 검은, 마치 그것 자체의 일부가 성민 형 몸속에 스며든 것 같은 그런 액체였다. "성민 형!" 나는 그대로 달려갔다. 뒤에서 강태오가 소리쳤다. "도현! 안 돼, 물러나!" 하지만 몸이 먼저 움직였다.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윤성민을 부축하며 뒤로 끌었다. 그의 몸이 이상하게 차가웠다. 마치 체온이 그 검은 액체와 함께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상처가 심각하다는 건 나도 알 수 있었다. 옆구리에서 계속 검은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성민 형의 눈빛이 흐려지고 있었다. "도현아… 너는 살아야―" "말하지 마요. 힘 아껴요." 그것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엔 나와 윤성민을 향해서였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마치 사냥감을 정한 포식자처럼. 조현수가 내 옆으로 뛰어와 검을 휘둘렀다. 검이 그것의 몸에 부딪혔다가 힘없이 튕겨 나갔다. "안 통해! 이거 뭐로 잡으라는 거야!" "현수야, 뒤로 와!" "안 돼, 도현이랑 성민 형이 저기 있는데 어떻게 뒤로 가!" 강태오가 단창을 들고 앞을 막아섰다. "전원 후퇴한다! 지금 당장!" 하지만 그것은 후퇴를 허락하지 않았다. 검은 형체가 순식간에 파티 전체를 에워쌌다. 마치 처음부터 도망갈 곳을 남겨두지 않은 것처럼.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건 사냥이 아니었다. 처형이었다. 윤성민을 부축한 채, 나는 그 붉은 눈을 마주 봤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직감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얼어붙는 감각. 몸이 이길 수 없다는 걸 먼저 알고, 머리가 그걸 나중에 인정하는 것 같은 순서였다. 배진우도, 오형준도, 최민재도, 조현수도, 그리고 강태오까지도 그것을 등지고 서 있었다. 원이 좁혀지고 있었다. 도망칠 틈이 초 단위로 줄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코끝으로 뭔가가 스쳤다. 아주 미세한 냄새였다. 그것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그 이상한 냄새 속에, 한 지점에서만 다른 냄새가 섞여 있었다. 마치 상처 같은, 균열 같은 무언가. 나는 숨을 죽였다. 성민 형을 부축한 팔에 힘이 들어갔다. 저건 뭐지. 저 냄새는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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