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G랭크 길드 지부는 생각보다 작았다.
낡은 책상 하나, 벽에 걸린 몬스터 도감, 삐걱거리는 나무 의자 두 개. 창문 하나는 반쯤 열려 있었고, 그 틈으로 먼지 낀 빛이 들어왔다. 벽 한쪽에는 색이 바랜 등록증 발급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접수처에 앉아 있던 여성이 도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신규 등록이신가요?"
"네."
"이전 경력은?"
도현은 잠시 망설였다.
"없습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개인 실력만 놓고 보면, 정말로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검을 쥔 손, 발을 딛는 자세, 숨을 고르는 방식. 그 모든 것이 다 낯설었다. 오랜 시간 다른 누군가의 힘에 기대어 살았던 몸은, 이제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다.
여성은 서류를 꺼내며 다시 물었다.
"소속은 있으세요? 파티나, 아니면 예전에 몸담았던 조직 같은 거요."
"없습니다."
"흠." 여성은 짧게 콧소리를 냈다. "요즘 신규 등록자 중에 그렇게 대답하는 사람 별로 없는데. 다들 어디 소속이었다고, 뭐라도 하나씩 붙이려고 하거든요."
도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랭크 테스트는 오늘 오후에 있어요. 통과하면 G랭크 등록증이 나와요."
"테스트가 어렵나요?"
여성은 살짝 웃었다.
"G랭크 테스트에서 떨어지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거 떨어지면 그냥 집에 가서 다른 일 알아보라는 뜻이거든요."
도현은 서류에 이름을 적었다. 이도현. 익숙한 이름이 낯설게 느껴졌다. 몇 년이나 자기 이름을 남에게 이렇게 또박또박 적어 준 적이 있었던가. 기억나지 않았다.
"저쪽 대기실에서 순서 기다리시면 돼요."
여성이 서류를 받아 넣으며 손짓했다. 도현은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무 의자가 삐걱, 낮은 소리를 냈다.
대기실은 좁았다. 도현보다 먼저 온 지원자 셋이 벽에 붙어 앉아 있었다. 다들 어리거나, 혹은 이미 다른 일에 실패하고 이곳까지 밀려온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무도 도현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도현도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테스트는 간단했다. 목검을 들고 허수아비 인형을 세 번 베는 것. 감독관이라 불리는 중년의 남자가 지루한 얼굴로 규칙을 설명했다. 도현은 목검을 쥐었다. 손에 익지 않은 무게였다.
가볍다는 것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묵린이 있을 때는 검의 무게를 느낄 필요가 없었다. 검은 그냥 손끝에 붙어 있는 물건이었을 뿐, 실제로 무언가를 베는 것은 늘 다른 힘이었다. 지금 손에 쥔 이 목검은, 순전히 그 무게 그대로 도현의 팔에 실려 있었다.
첫 번째 휘두름은 어설프게 빗나갔다. 목검이 허공을 갈랐고, 인형은 그대로 서 있었다. 감독관이 서류에 무언가를 적었다. 두 번째는 겨우 인형의 어깨를 스쳤다. 나무 부스러기가 아주 조금 떨어져 나갔다.
뒤에서 지원자 하나가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도현은 그 소리를 못 들은 척했다.
세 번째, 도현은 숨을 한 번 크게 내쉬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발끝에 힘을 주고, 무릎을 살짝 굽히고, 검을 든 손목의 각도를 바꿨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자세였다. 서윤재가 검을 쥘 때 하던 동작. 그때는 무심히 흘려보았던 기억이었는데, 지금은 몸이 그 자세를 알아서 따라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늘 묵린이 있었다.
검을 휘두르기 전에, 묵린의 기운이 이미 몬스터를 반쯔 제압하고 있었다. 그의 검은 그저 마지막 확인 동작에 불과했었다. 사람들은 그를 대단한 검사라고 불렀다. 사실은 그저, 이미 끝난 싸움에 검을 한 번 더 얹는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혼자, 온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세 번째 검이 인형의 가운데를 정확히 갈랐다. 나무 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부러진 파편 하나가 도현의 발끝에 떨어졌다.
"통과입니다."
감독관이 무심하게 말했다. 서류에 도장을 찍는 소리가 났다. 쿵.
도현은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감정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 짧은 순간 심장이 평소보다 조금 더 크게 뛰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G랭크 등록증을 받은 다음 날, 도현은 첫 던전으로 향했다.
마을 외곽의 작은 동굴이었다. 슬라임과 초급 고블린이 나온다는 곳. 흔하고 뻔한, 가장 낮은 등급의 던전. 마을 사람들은 그 동굴을 아이들의 첫 시험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실력을 검증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죽지 않는 법을 배우기 위한 곳이었다.
동굴 입구에서부터 익숙한 냄새가 났다.
흙. 습기. 그리고 옅은 곰팡이 냄새. 오랫동안 잊고 있던 냄새였다. 처음 던전에 들어갔던 그날, 아직 아무것도 아니었던 시절의 냄새였다. 그때는 이 냄새가 두려움과 함께 왔었다. 지금도 비슷했다. 다만 그때와 지금 사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있었다는 것만이 달랐다.
도현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벽을 따라 손을 짚었다. 축축하고 차가운 돌의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발밑에서 자갈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첫 번째 슬라임은 어렵지 않게 처리했다. 무기를 쥔 손에 조금씩 감이 돌아오고 있었다. 슬라임의 표면을 가른 순간, 끈적한 점액이 튀어 도현의 팔을 적셨다. 예전에는 이런 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묵린의 기운이 먼저 슬라임을 태워버리곤 했으니까.
지금은 팔에 점액이 묻는 것도, 그것이 서서히 굳어가는 촉감도, 모두 낯설게 새로웠다.
두 번째 고블린은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놈의 눈이 먼저 도현을 발견했고, 낮은 울음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도현은 옆으로 몸을 굴리며 검을 휘둘렀다. 어깨가 부딪히며 통증이 번졌다. 돌바닥에 부딪힌 어깨가 화끈거렸다.
겁이 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심장은 이미 빠르게 뛰고 있었다.
숨소리가 자기 귀에도 크게 들렸다. 도현은 검을 고쳐 쥐고 고블린과 거리를 벌렸다. 놈은 다시 자세를 잡으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좁은 동굴 벽에 그 소리가 부딪혀 되돌아왔다.
세 번째 고블린이 뒤에서 달려들었다. 도현은 몸을 돌려 검을 세웠다. 순간, 오래된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다.
오래전, 아직 아무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던 시절.
다섯 명의 젊은 모험가들은 산속에서 키러래빗을 쫓고 있었다. 작고 빠른 몬스터였다. 꼬리 끝에 붉은 털이 달린 놈으로, 잡기만 하면 초급 물약의 재료로 제법 값이 나갔다. 도현이 가장 먼저 그 흔적을 발견했다.
"저기, 발자국이야."
서윤재가 앞장서 걸었다. 박지호와 정민우가 좌우를 경계했다. 나머지 한 명은 무기를 손질하며 뒤를 따랐다.
"이거 하루 종일 쫓기만 하는 거 아니야?" 박지호가 투덜거렸다.
"입 다물고 걸어." 정민우가 짧게 받아쳤다.
키러래빗은 예상보다 빨랐다. 숲속으로 도망치는 놈을 쫓다가, 다섯 명은 어느새 낯선 숲 깊은 곳까지 들어와 있었다. 나무가 점점 굵어지고, 빛이 점점 옅어졌다. 발밑의 낙엽이 젖어 있었고, 공기는 유난히 무거웠다.
"여기 이상한데." 도현이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뭐가 이상해. 그냥 숲이잖아." 서윤재가 앞을 보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그것을 보았다.
거대한 그림자.
나무들 사이로 비늘이 반짝였다. 금빛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섯 명 모두 그 자리에서 숨을 멈췄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서윤재가 먼저 무기를 들었다. 다른 이들도 뒤늦게 자세를 잡았다. 정민우의 손이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저, 저거 뭐야." 박지호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몰라. 그냥 조용히 뒤로 물러나." 서윤재가 낮게 말했다.
하지만 도현은 무기를 들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 순간, 눈앞의 거대한 존재가 위협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두려움보다 먼저, 무언가 다른 감각이 그를 붙잡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존재를 다시 만난 것 같은,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괜찮아."
도현이 낮게 말했다.
"뭐가 괜찮아. 저게 뭔지 알고 하는 소리야?"
서윤재가 다급하게 말했다.
"도현아, 진짜 위험해. 물러나." 정민우도 거들었다.
도현은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다른 이들이 그를 말리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발이 그 자리에 붙어버린 것처럼 굳어 있었다.
도현은 거대한 존재 앞에 섰다.
금빛 눈동자가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도현은 숨을 죽였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자기 귀에 들릴 정도였다.
그리고 그 존재가 몸을 낮췄다. 마치 인사를 하듯이.
"뭐야, 이게..."
박지호가 중얼거렸다.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숲의 바람마저 그 순간만큼은 멈춘 것 같았다.
그날 이후, 그 존재는 그들을 따라 마을까지 내려왔다. 목적은 알 수 없었다.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그 존재가 다섯 명 중 유일하게 도현에게만 처음으로 몸을 낮췄다는 사실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 크게 놀랐다. 그런 존재가 인간의 곁에 머문다는 것 자체가 전설에나 나올 법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그것을 당연한 풍경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존재의 이름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묵린.
고블린의 검이 도현의 옆구리를 스쳤다. 통증이 정신을 깨웠다.
도현은 회상에서 빠져나와 현재로 돌아왔다.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검을 고쳐 잡고, 고블린의 팔을 베어냈다. 놈이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다. 상처에서 검붉은 피가 흘렀고, 놈은 다시 자세를 잡으려 했지만 균형을 잃고 옆으로 쓰러졌다.
도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검을 내리쳤다. 고블린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숨이 거칠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고, 옆구리의 상처가 아직도 화끈거렸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가슴 한쪽이 뜨거웠다.
이건 순수한 자신의 힘으로 얻어낸 승리였다.
작고 초라한 승리였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누군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기 두 발로 서서, 자기 손으로 검을 휘둘러 얻어낸 것. 그것이 이렇게 뜨거울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도현은 검을 거두고 동굴 벽에 등을 기댔다. 차가운 돌의 감촉이 등을 타고 스며들었다. 숨을 고르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동굴 천장 틈으로 저녁 하늘이 붉게 보였다.
그 붉은 빛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문득 지난 몇 년의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서윤재의 파티. 묵린. 그리고 그 모든 것에서 밀려난 지금의 자신. 그 모든 것을 곱씹기에는 아직 숨이 다 가라앉지 않았다.
그 순간, 갑자기 낮고 무거운 울림이 느껴졌다.
웅—
귀로 들은 것인지, 몸으로 느낀 것인지 알 수 없는 진동이었다. 도현은 순간적으로 숨을 멈췄다.
묵린이었다.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진동의 결이, 오래전 처음 만났던 그 순간의 감각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그 숲속에서 처음 마주쳤던 그 금빛 눈동자, 그리고 그 앞에서 몸을 낮추던 거대한 그림자의 기운. 그것과 똑같은 결이었다.
서윤재의 곁에 있어야 할 존재의 기운이, 왜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몸 안쪽에서 직접 울리고 있는 것인지.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옆구리의 상처가 다시 욱신거렸지만, 그보다 앞서는 감각이 있었다. 온몸의 신경이 그 울림 하나에 집중되고 있었다.
도현은 동굴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만은, 온몸의 감각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 도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울림을 되새기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