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성적 재심사 결과가 나온 다음 날부터 김다혜는 도서관 구석 자리에 틀어박혀 나올 줄을 몰랐는데, 그것은 그녀의 성격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창밖으로는 늦가을의 마른바람이 낙엽을 이리저리 흩날리고 있었고, 학교 전체가 재심사 결과라는 화제로 들썩이는 와중에도 도서관 안쪽은 유독 조용했다. 그 정적 속에서 형광등 불빛만이 책상 위에 쌓인 책더미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평민 출신으로 특待생 자격을 얻기까지 그녀가 얼마나 스스로를 몰아붙였는지, 그 사연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남들은 그녀를 두고 "운이 좋았다"거나 "그저 악착같이 공부만 하는 애"라고 수군거렸지만, 실상은 훨씬 더 절박한 것이었다. 이도현은 게임 스토리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몸이 약해 오래 일할 수 없었고, 어머니는 그녀가 어릴 적 세상을 떠났으며, 특待생 자격이 사라지는 순간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지탱하던 유일한 지원이 끊긴다는 사실을. 원작 속에서 다혜는 결국 이 재심사의 파동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캐릭터였다. 그 결말을 이도현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 그것은 편리한 동시에 잔인한 것이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안다는 것이 때로는 아무런 힘도 되어주지 못한다는 걸, 그는 이 세계에 들어온 뒤로 몇 번이나 절감했다.
도서관을 지나다가 그녀를 발견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책상 위에는 참고서와 필기 노트가 무너질 듯 쌓여 있었고, 그 틈새에 다혜는 거의 쓰러지듯 엎드려 있었다. 팔로 얼굴을 가린 채였지만,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잠든 것인지, 아니면 울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김다혜 학생." 그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는데, 그 순간 눈가가 붉게 젖어 있는 것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다혜는 이내 손등으로 눈을 훔치며 표정을 지워버렸고, 그 눈빛에는 방어적인 경계심만이 가득 남았다.
"뭐 하러 오셨어요." 그녀가 물었다.
"쓰러질 것 같아서요." 그가 답했다.
"쓰러지든 말든 교사님 상관 아니잖아요." 그녀가 반문했다.
그 짧은 도발형 문장 속에서, 그는 그녀가 얼마나 벼랑 끝에 서 있는지를 읽어냈다. 사람은 정말로 아무렇지 않을 때는 저렇게까지 날을 세우지 않는다. 날을 세운다는 것은, 세우지 않으면 무너진다는 뜻이었다.
"상관없다고 하기엔, 학생이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요." 그가 말했다.
그 말에 다혜는 잠시 침묵했는데, 그 침묵이 그녀의 항변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책상 위 노트에는 같은 문제를 몇 번이나 다시 풀어놓은 흔적이 있었고, 여백에는 "이번엔 반드시"라는 글자가 눌러쓴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그 필압만으로도 그녀가 며칠째 제대로 자지 못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제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아세요?" 그녀가 낮게 물었다. "평민이 특待생이 된다는 게 얼마나 드문 일인지, 그게 얼마나 많은 걸 걸고 얻어낸 자리인지, 교사님은 모르시잖아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는데, 그것은 분노보다는 두려움에 더 가까웠다.
"저는 아버지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이에요." 그녀가 계속했다. "제가 이 자리를 놓치면, 학비만 문제가 아니에요. 아버지 약값도, 생활비도 전부 무너져요. 그런데 재심사라니. 이번엔 제가 뭘 더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 거예요?"
이도현은 그녀의 앞자리에 앉았다. 원칙대로라면 이 자리를 떠나야 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거리라는 게 무엇인지, 이 세계에 온 뒤로 그는 몇 번이나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무리하다가 쓰러지면, 그 자리도 지킬 수 없습니다." 그가 말했다. 담담한 어조였으나, 그 안에는 진심이 섞여 있었다.
다혜는 그를 노려보듯 바라보았는데, 그 눈빛 속에서 서서히 방어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을, 그는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녀는 곧 다시 시선을 피했다. 마치 그 허물어짐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교사님도 저를 불쌍하게 보시는 거예요?" 그녀가 물었다. 그 물음에는 오랜 상처가 배어 있었다. 특待생이라는 자리 때문에 그녀는 늘 동정과 시기의 시선을 동시에 받아왔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녀를 두고 "가난한 애가 용케 버틴다"며 감탄인지 조롱인지 모를 말을 던졌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특待생 자리 하나 때문에 저렇게까지 하나"며 비웃었을 것이다. 그 두 개의 시선 사이에서 다혜는 스스로를 지킬 방법을 찾지 못한 채, 그저 더 열심히 하는 것으로만 답해온 것이었다.
"불쌍하다는 게 아니라, 걱정된다는 겁니다." 이도현이 정정했다.
그 짧은 차이가 다혜에게는 낯설게 느껴졌는지, 그녀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걱정. 그 단어를 이렇게 직접 들어본 게 언제였던가, 그녀는 자문하듯 생각했다. 아버지는 늘 그녀를 걱정했지만 그 걱정은 곧 미안함으로 이어졌고, 그 미안함은 다시 그녀의 부담으로 돌아오는 순환이었다. 타인에게서 이유 없는 걱정을 받는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감각이었다.
그때 도서관 입구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도현 교사님." 채은이었다.
그녀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는데, 그 표정에 스친 것은 순수한 반가움이 아니라, 미묘하게 굳어진 무언가였다. 손끝으로 들고 있던 책 한 권을 살짝 고쳐 쥐는 동작에서, 그녀가 애써 태연함을 유지하려 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야기 중이셨나요." 그녀가 물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예의 바르고 차분했지만, 그 시선은 다혜에게서 이도현으로, 다시 다혜에게로 빠르게 오가고 있었다. 그 빠른 오가는 시선 속에는, 말로는 하지 않을 질문 하나가 담겨 있는 듯했다. 왜 두 사람이 이 시간에, 이 구석 자리에 마주 앉아 있는가 하는.
"학생이 몸이 좋지 않아 보여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도현이 답했다. 사실을 그대로 말했을 뿐인데도, 그 말이 어쩐지 해명처럼 들린다는 것을 그는 스스로도 느꼈다.
채은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끄덕임에는 완전히 납득했다는 기색이 없었다. 그녀는 다혜를 향해 형식적인 안부를 한마디 건넸고, 다혜는 어색하게 고개만 숙여 답했다.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순간적으로 서늘해졌다.
그 순간 도서관 창밖으로, 안개 사이를 뚫고 걸어오는 또 다른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은빛 금발이 흐릿한 빛 속에서도 선명하게 도드라졌는데, 선하린이었다. 그녀는 곧장 도서관 입구로 향하고 있었고, 그 걸음에는 명확한 목적지가 있는 사람의 확신이 담겨 있었다. 마치 이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조금의 지체도 없는 걸음이었다.
세 사람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로 모이는 순간, 이도현은 자신이 세운 원칙이 이제 완전히 무의미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학생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감정적으로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고 스스로 정해두었던 선들이, 이 좁은 도서관 구석 자리 하나로 인해 순서 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도서관 문이 열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고, 그는 그 소리에 담긴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