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졸업식 날 죽었다.
정확히는 학사모를 던지고 사진을 찍으려던 그 순간이었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울리기 직전,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나중에 알았지만 유성이었다고 한다. 확률로 치면 로또 1등에 두 번 연속 당첨되는 것보다 낮다는, 그런 개소리 같은 확률이었다고. 하필이면 그 순간, 하필이면 그 자리에, 하필이면 내 머리 위로.
인과율이 억까를 부린다는 말을 그때는 몰랐다. 그냥 눈앞이 새하얗게 번쩍였고, 뭔가 뜨거운 것이 정수리를 관통하는 느낌이 들었고, 그다음엔 아무것도 없었다. 통증도 없었다. 그냥 꺼졌다. 스위치가 내려가듯이.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서울이 아니라 이름도 모를 숲 한가운데 나뒹굴어 있었다. 등에는 낙엽이 잔뜩 붙어 있었고, 코끝에는 흙냄새와 풀 비린내가 진동했다. 손을 들어보니 학사복 소매가 그대로 걸쳐져 있었다. 아, 이거 꿈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볼을 꼬집었는데 아팠다. 아프면 꿈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도현. 24세. 서울 소재 대학 경영학과 졸업생. 취업 준비 3년 차. 통장 잔액 12만 원. 그마저도 졸업식 뒤풀이 예산으로 이미 반쯤 증발한 상태였는데, 이제는 그 12만 원조차 이 세계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는 종이 쪼가리였다. 자기소개서에 쓸 자격증 세 개, 토익 900점대 초반, 인턴 경력 두 줄. 그 어떤 스펙도 지금 이 상황에는 쓸모가 없었다.
"……씨발, 진짜?"
처음 뱉은 말이 그거였다. 하늘을 보니 태양이 두 개였다. 두 개. 하나가 아니라 두 개씩이나. 왼쪽 태양은 노랗고 오른쪽 태양은 붉은빛이 도는 게, 마치 누가 조명 두 개를 잘못 켜놓은 것 같았다. 이쯤 되면 여기가 지구가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부정, 분노, 좌절, 그 모든 감정의 단계를 순서대로 밟았다. 부정의 단계에서는 눈을 감고 다시 뜨면 서울일 거라고 믿었다. 분노의 단계에서는 왜 하필 나냐고 하늘에 대고 욕을 했다. 좌절의 단계에서는 그냥 주저앉아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받아들임의 단계에 도달했을 땐, 배가 고파서 더 이상 감정에 사치를 부릴 수 없었다.
숲을 헤매다가 겨우 사람 사는 마을을 발견했을 땐 이미 사흘이 지난 뒤였다. 물만 마시고 버틴 사흘이었는데, 배는 고팠지만 이상하게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첫날에는 배가 아파서 몸을 웅크렸고, 둘째 날에는 이상하게 그 통증이 가라앉았고, 셋째 날에는 오히려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것도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에게는 '기아 저항'이라는 알 수 없는 패시브가 붙어 있었다.
쓸모없는 재능의 시작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나를 이방인이라 불렀고, 다행히 이곳 언어는 저절로 이해가 됐다. 처음 마을 입구에서 마주친 아이가 뭐라고 소리쳤는데, 놀랍게도 그게 한국어처럼 또렷이 들렸다. 그런 것까지 편의를 봐주는 걸 보면 신이라는 존재가 나를 완전히 버린 건 아니라는 착각도 잠깐 들었지만, 그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방인 등급 조회."
마을 촌장이라는 노인이 낡은 목판에 손을 얹으라 했다. 나무 냄새가 나는 그 목판은 손바닥보다 조금 더 컸는데, 표면에 새겨진 문양들이 낡아서 반쯤 지워져 있었다. 손을 얹자 손바닥에서 빛이 나며 뭔가 글자가 떠올랐는데, 그걸 읽던 노인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 장례식장 상주 얼굴이었다.
"이보게, 자네…… 전투 등급이 F. 마력 등급도 F."
F. F. 알파벳 두 개가 내 인생을 통째로 요약하는 순간이었다. 학점으로 치면 낙제, 취업으로 치면 서류 탈락, 인생으로 치면 그냥 답이 없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 스킬은 뭔가?"
[무한 취식 생성 - 미소국]
그게 내 유일한 스킬이었다. 손바닥을 오므리면 국그릇 하나가 채워지는데, 그 안에 담긴 건 언제나 미소국이었다. 된장도 아니고 정확히 미소국. 왜 미소국인지는 나도 몰랐다. 한국인이라서 그런가, 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냥 내 추측일 뿐이었다. 어쩌면 죽기 직전에 편의점 도시락 코너에서 미소국 컵을 봤던 기억이 잠재의식에 박혀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 그런 시시한 이유로 내 유일한 생존 스킬이 결정됐다는 게, 생각할수록 서글펐다.
노인이 다시 물었다. "이게 하루에 몇 번 되는가?"
"모르겠는데요. 계속 되던데요."
노인의 눈이 커졌다. 잠시 희망적인 표정이 스쳤다. 마치 그 안에 뭔가 숨겨진 가치를 발견한 사람처럼, 목판을 다시 들여다보고 손끝으로 글자를 몇 번이나 훑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자네…… 이 스킬로는 전투가 안 되네. 마을에서 쓸모가 없어."
맞는 말이었다. 미소국을 아무리 무한정 뽑아낸다 한들 그걸로 몬스터를 때려잡을 수는 없었다. 국그릇으로 오크의 머리를 후려칠 수도 있겠지만, 그 전에 오크가 나를 후려칠 게 뻔했다. 노인의 표정에서 이미 결론이 나 있었다는 걸 나는 눈치챘다. 등급표를 보는 순간부터 내 운명은 정해져 있었던 거다.
마을에서는 결국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정확히는 받아주긴 했는데, 딱 하룻밤 재워주고 다음 날 아침 조용히 등을 떠밀었다. 짚으로 엮은 이불 한 장, 딱딱한 나무 침대, 그리고 새벽에 눈을 떴을 때 이미 마을 사람들 몇몇이 문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는 밥값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짐일 뿐이라는, 아주 명료하고 냉정한 논리였다.
"근처에 왕국 수도가 있으니 거기 모험가 길드를 찾아가 보게."
노인이 던져준 마지막 조언이었다. 모험가 길드. 이세계 클리셰라면 응당 등장해야 하는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안심했다. 아, 이건 그래도 뭔가 좀 있는 세계구나. 판타지 소설에서 본 것처럼 나도 여기서 뭔가 되지 않을까.
헛된 기대였다.
왕국 수도까지는 걸어서 나흘이 걸렸다. 손에서 무한정 나오는 미소국이 유일한 식량이었는데, 처음에는 감사했지만 사흘째 되던 날에는 미소국이라는 단어 자체가 지긋지긋해졌다. 아침도 미소국, 점심도 미소국, 저녁도 미소국. 미소국. 미소국. 미소국. 다시 태어나면 다시는 미소국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정도였다. 걷는 동안에도 손바닥을 오므릴 때마다 뜨끈한 국물이 차오르는데, 그 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두부 몇 조각, 미역 몇 줄기, 언제나 똑같은 비율로 떠 있는 그 국을 나흘 동안 하루 세 번씩 먹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수도에 도착했을 때 내 몸은 이미 반쪽이 되어 있었다. 걷는 것만으로 체력을 다 써버렸고, 신발은 다 닳아서 발바닥이 땅에 거의 닿을 지경이었다. 발뒤꿈치에는 물집이 잡혔다가 터졌다가 굳은살이 배기기를 반복했다. 그런데도 나는 웃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뭐라도 되겠지, 하는 근거 없는 낙관.
모험가 길드 앞에 도착했을 때 건물 크기에 압도됐다. 3층짜리 석조 건물이었고, 입구 위에 걸린 방패 모양 간판이 햇빛에 번쩍였다. 문 앞으로는 갑옷을 입은 사람들, 등에 검을 멘 사람들, 로브를 걸친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들락거렸다. 다들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처럼 보였다. 전투 등급 F, 마력 등급 F인 나와는 애초에 존재의 층위가 다른 사람들.
그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나는 아직 몰랐다.
이 건물이 내 전 재산을, 아니 전 재산이라고 부를 것도 없는 이 초라한 존재 자체를 순식간에 증발시킬 장소가 되리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