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얘들아, 미소국 먹고 싸우자

2화

모험가 길드 안은 시장바닥처럼 소란스러웠다. 갑옷을 입은 사람들, 창을 든 사람들, 등에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사람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며 게시판 앞에 몰려 있었다. 그 게시판에는 의뢰서라는 종이들이 빽빽이 붙어 있었는데, 몬스터 토벌부터 약초 채집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선이 따라붙었다. 위아래로 훑는 눈길, 코웃음 치는 입매, 옆 사람과 귀엣말을 나누며 힐끗거리는 고갯짓까지. 나는 이 세계에 떨어진 지 며칠도 안 됐는데 벌써 구경거리가 되는 재주가 있는 모양이었다. 대단하다, 나. 정말 대단해. 접수처 여직원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 시선에 담긴 감정을 요약하면 딱 한 단어였다. 거지. 옷차림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을을 떠나올 때 촌장이 던져준 낡은 튜닉 한 벌이 전부였으니까. 세탁도 제대로 못 해서 흙먼지가 그대로 눌어붙어 있었고, 신발 밑창은 벌써 얇아져 자갈길을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아렸다. 누가 봐도 노숙자였다. 아니, 노숙자보다 못했다. 적어도 노숙자는 이 세계 물정을 알 테니까. "등록비는 은화 5냐 아시죠?" 은화 5냐. 내 전 재산이 은화 6냐였다. 마을에서 촌장이 동정심으로 던져준 여비였는데, 그게 지금 내가 가진 전부였다. 등록비를 내면 남는 돈은 은화 1냐. 그걸로 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등록은 해야 했다. 여기서 등록조차 못 하면 나는 정말 이 세계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머릿속으로 계산을 몇 번이나 돌렸다. 은화 6냐에서 5냐를 빼면 1냐. 동화로 환산하면 대략 백 냐 남짓. 그걸로 숙박 며칠, 식사 며칠. 아니, 계산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낼 수밖에 없는 돈이었으니까. "등록할게요." 손을 떨며 은화를 건넸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건 도박이었다. 전 재산을 건 도박. 이 세계로 넘어온 것부터가 내 선택이 아니었는데, 여기서마저 도박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억울해도 별수 없었다. 억울함으로 밥을 지을 수는 없으니까. 등록 후 스킬 감정 절차가 이어졌다. 나무 판 위에 손을 얹으라는 지시가 또 있었고, 그 위에서 빛이 일었다. 은은한 파란빛이 손끝을 타고 올라오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딱 거기까지는. 접수처 여직원의 표정이 서서히 무너지는 걸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건 상당히 굴욕적인 경험이었다. 처음엔 사무적인 미소, 다음엔 미묘하게 굳는 입가, 마지막엔 아예 표정 관리를 포기한 얼굴. 그 변화가 삼 초 안에 이루어졌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손님…… 이거 진짜예요?" "뭐가요?" "전투 등급 F. 마력 등급 F. 근력, 민첩, 지능 전부 최하위. 그런데 스킬은…… 무한 취식 생성? 미소국?" 전투 등급 F. 마력 등급 F. 근력 F. 민첩 F. 지능 F. F, F, F, F, F. 알파벳 하나로 도배된 내 상태창을 보는 순간,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건 저주에 가까운 균형이었다. 부족함마저 이렇게 완벽할 수가 있나.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몇몇 모험가들이 다가와 게시판 보듯 나를 구경했다. 안면 근육이 저절로 굳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심장은 벌써 명치 아래로 곤두박질친 뒤였다. "저거 저주받은 놈 아냐?" 누군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 말이 들리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저주. 축복이 아니라 저주. 이 세계에서는 그렇게 불리는 모양이었다. "밥이나 짓는 스킬로 뭘 하겠다는 거야." 또 다른 웃음소리. 뒤이어 여기저기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번졌다. 누군가는 대놓고 손가락질을 했고, 누군가는 옆 사람 어깨를 치며 재밌어했다. 나는 그저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반박할 말도 없었다. 나조차 이 스킬이 쓸모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이 순간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딱 한 마디였다. ······씨발, 진짜 이걸로 뭘 어쩌라고!! 물론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그럴 배짱조차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냥 시선을 바닥에 떨어뜨린 채 등록증을 받아 들었다. 결국 접수처 여직원이 나에게 던져준 건 최하급 의뢰서였다. "이거라도 하시겠어요? 마을 근처 슬라임 세 마리 처치. 보상은 동화 30냐." 동화 30냐. 은화 1냐도 안 되는 액수였다. 그런데 그거라도 해야 했다. 여기서 굶어 죽을 수는 없었으니까. 나는 종이를 받아 들며 속으로 되뇌었다. 동화 30냐, 동화 30냐. 지금 내게는 그게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액수였다. 슬라임 사냥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수도 외곽, 잡초가 무성한 벌판. 낮게 깔린 안개 사이로 초록색 물덩이 세 마리가 꾸물꾸물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젤리 같아서 만만해 보였는데, 실제로 다가가니 이야기가 달랐다. 나는 슬라임 근처에 다가가지도 못했다. 슬라임이 몸을 흐물흐물 늘리며 다가오는 순간, 나는 그냥 도망쳤다. 두 다리가 알아서 반응했다. 뇌의 명령 없이 척추가 먼저 판단을 내린 셈이었다. 도망쳐, 도망쳐, 도망쳐. 도망치다가 발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고, 넘어진 채로 손을 뻗어 미소국을 만들었다. 왜 그랬는지 나도 몰랐다. 그냥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위기 상황에서 몸이 기억하는 유일한 스킬이 그거였던 모양이다. 김이 피어오르는 국그릇 하나가 풀밭 위에 덜렁 놓였다. 나는 넘어진 채로 그걸 멍하니 바라봤다. 이 와중에 국 냄새는 기가 막히게 좋았다. 된장 향이 코를 찔렀고, 배 속에서 꾸르륵 소리가 났다.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닌데. 슬라임이 그 국그릇 냄새를 맡고 다가왔다. 그리고 국그릇 속으로 몸을 흡수하듯 스며들었다. "뭐야 이거……" 슬라임이 사라졌다. 소멸했다. 죽은 건지 그냥 도망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눈앞에서 슬라임이 없어졌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게 뭐지. 미소국이 슬라임을 잡아먹은 건가. 아니면 슬라임이 미소국을 먹고 자폭한 건가. 정말 우연일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은 두 마리 슬라임에게도 같은 방법을 써봤다. 국그릇을 하나씩 더 만들어 바닥에 내려놓고, 슬라임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결과는 똑같았다. 슬라임들이 국그릇에 다가와 몸을 흡수당하듯 사라졌다. 첫 번째 슬라임도, 두 번째 슬라임도, 세 번째 슬라임도. 셋 다 국그릇 속으로 사라졌다. 의뢰는 성공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쁘지 않았다. 이게 성공인지 실패인지 헷갈렸다. 슬라임을 죽인 건지, 아니면 그냥 슬라임이 미소국을 처먹고 없어진 건지 그 원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전투의 쾌감이나 승리의 성취감 같은 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얼떨떨했다. 동화 30냐를 받아 들고 길드를 나서던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다. 저 이상한 놈이 진짜로 슬라임을 잡았다는 소문이 이미 퍼진 뒤였다. 그런데 그 시선에는 존경 대신 여전히 경멸이 섞여 있었다. "밥으로 잡는 게 무슨 사냥이냐." 등 뒤에서 들려온 조롱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걸음을 옮겼다. 반박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반박해봤자 상황이 바뀌지 않을 걸 알아서였다. 동화 30냐로는 하루 숙박비도 못 낸다는 사실을 그날 밤 여관 주인에게서 확인했다. "숙박비는 동화 50냐부터인데." "……30냐로는 안 될까요?" "장난하나. 나가." 여관 주인의 얼굴에도 경멸이 어려 있었다. 나는 더 말을 붙일 용기도 없이 문밖으로 밀려났다. 등 뒤로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유독 크게 느껴졌다. 결국 나는 노숙을 선택해야 했다. 수도 외곽 골목에 쭈그려 앉아 미소국을 몇 그릇 만들어 마시며 밤을 보냈다. 배는 채워졌지만 마음은 텅 비어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낯선 별자리가 떠 있었다. 지구에서 봤던 별자리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 사실이 새삼스레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이 세계에서 나는 완전히 쓸모없는 존재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첫째 날은 슬라임 두 마리를 더 잡아 동화 20냐를 벌었고, 둘째 날은 약초 채집 의뢰를 받았다가 약초를 구분 못 해서 잡초만 한 자루 캐 왔다. 접수처 여직원의 한숨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명했다. 셋째 날은 아예 의뢰를 받지 못했다. 나 같은 놈에게 맡길 일이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통장 잔액이 아니라 동화 개수를 세며 지내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노예시장이라는 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돌바닥 위로 늘어선 쇠창살, 그 안에 웅크린 사람들, 그리고 그 앞을 오가며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흥정하는 사람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광경을 한동안 바라봤다. 이 세계에는 아직도 이런 게 존재하는구나. 씁쓸함과 동시에 이상한 예감이 등줄기를 스쳤다. 뭔가에 이끌리듯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나는 아직 몰랐다. 그 시장 한구석에서 내 인생을 통째로 바꿀 존재를 마주하게 되리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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