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모니터 세 대가 나를 에워싼 채 빛나고 있었다.
로그는 계속 쌓였다.
에러 코드 500번대가 스무 줄째 반복됐다.
아, 이건 또 그 결제 모듈이다. 지난주에 고쳤다고 보고서까지 올렸는데, 살아있는 시스템은 사람 말을 안 들어처먹는다.
커피는 다 식어 표면에 기름막이 떠 있었다.
컵을 들었다가 그냥 내려놨다. 마시기 싫어서가 아니라, 손이 떨려서 흘릴 것 같았다.
새벽 세 시. 배포 다음 날 장애 대응.
이번이 몇 번째인지 세는 것도 지쳤다. 올해 들어 세 번째인가, 네 번째인가. 아니, 그런 걸 세고 있을 정신머리가 남아 있다는 게 더 놀라웠다.
"김서연 님, 온콜 로그 확인 부탁드립니다."
메신저 알림이 또 울렸다.
팀장이었다. 저 인간은 잠도 안 자나. 아니, 안 자는 게 아니라 나를 안 재우는 거겠지.
손끝이 저렸다. 왼쪽 가슴 아래가 뻐근했다.
며칠 전부터 그랬다. 병원 가봐야 하는데. 예약 잡을 시간도 없고, 잡아도 갈 시간이 없다는 게 함정이지만.
"네, 확인 중입니다."
타이핑을 치는데 손가락이 자꾸 미끄러졌다.
백스페이스, 백스페이스. 아까부터 같은 줄을 세 번째 다시 치고 있었다.
숨이 잘 안 쉬어졌다.
···이상하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목뒤로 서늘한 땀이 흘렀다.
천장 조명이 빙글빙글 돌았다.
빙글빙글, 이라기보다는 렌즈가 초점을 못 잡는 느낌이었다. 화면이 두 개로 보이다가 세 개로 늘어나고, 그러다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가 또 흩어졌다.
쿵.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아, 내가 쓰러진 소리구나.
이상하게 그 순간에는 아프지도 않았다. 그냥 무릎이 접히고, 뒤통수가 뭔가에 부딪혔고, 시야가 옆으로 90도 돌아갔을 뿐이었다.
동료 목소리가 아득해졌다.
"서연 씨? 서연 씨!"
누군가 내 어깨를 흔드는 것 같았다. 손이 있다는 감각은 남아 있는데, 그 손이 진짜 내 것인지도 헷갈렸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
눈을 떴을 때 세상은 온통 뿌옜다.
시야가 낮았다. 아주 낮았다.
책상 높이가 아니라 침대 높이, 그것도 유아용 침대 높이였다. 눈높이가 바닥에서 한 뼘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천장이 이상하게 높고, 손을 들어보니 그 손이 너무 작았다.
손가락 다섯 개가 다 있긴 한데, 통통하고, 짧고, 내 것이 아니었다.
손톱마저 작았다. 반투명한 조개껍데기 조각 같았다. 서른두 살 먹은 손가락은 이렇게 안 생겼다.
···이게 뭐지.
엔지니어의 직업병이랄까, 나는 이상 현상을 마주하면 일단 재현 조건부터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증상: 신체 완전 교체. 시야 저하. 언어 출력 불가.
원인: 불명.
재현 가능성: 확인 불가.
로그도 없고, 스택 트레이스도 없다. 디버깅할 방법이 없는 버그는 세상에서 제일 짜증나는 버그다.
입에서 나온 소리는 말이 아니라 그냥 울음이었다.
"응애."
목소리마저 낯설었다. 성대가 다른 사람 것 같았다. 아니, 다른 사람 것이 맞겠지.
···망했다.
서연아, 정신 차려. 이건 그냥 꿈이거나, 아니면 죽었거나 둘 중 하나다.
둘 다 최악이지만 후자가 조금 더 그럴듯했다. 꿈이라면 이렇게 디테일하게 손톱 모양까지 그려낼 필요가 없을 테니까.
주변을 둘러봤다. 벨벳 커튼, 금박 장식이 된 요람, 은쟁반에 올려진 우유병.
벽에는 태피스트리 같은 게 걸려 있었고, 창문은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색이 들어간 유리였다. 방 하나에 회사 반년 치 연봉이 걸려 있는 것 같은 인테리어였다.
방 전체가 무슨 사극 세트장 같았다.
아니, 이건 더 심각한데.
사극이면 조선시대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건 아무리 봐도 서양풍 고성 인테리어였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이세계인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몸뚱이의 크기와 방의 화려함을 보면 다른 결론이 안 나왔다.
그때 몸속에서 뭔가가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이 배관을 타고 역류하는 느낌.
정확히는, 배 속 어딘가에 있는 파이프가 막혀서 압력이 계속 쌓이고 있는데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가슴 한가운데서 열기가 뭉쳤다.
체온이 오르는 게 아니라, 몸 안쪽에서부터 뭔가가 부풀어 오르는 감각이었다. 서버실에서 냉각 팬이 고장 났을 때 나던 그 뜨거운 공기 냄새가 코끝에 떠올랐다.
"으아앙!"
울음이 아니라 경보였다.
터지기 직전의 경고 알람. 몸이 스스로 삑삑거리며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손끝에서 파란 불빛이 번쩍였다.
퍼엉!
요람 위 천장 장식이 그대로 타 버렸다.
연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다음엔 매캐한 재 냄새.
···이거 완전히 폭주다.
어디서 본 표현이 자꾸 떠올랐다. 리소스 초과, 메모리 릭, 오버플로우.
지금 이 몸은 캐시가 가득 찬 서버 같았다. 어딘가에서 계속 데이터가 쌓이는데, 처리 속도가 못 따라가서 결국 전체가 다운되기 직전인 그 상태.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살아난 지 채 몇 분도 안 됐는데 다시 죽을 위기라니, 이건 무슨 SLA(서비스 수준 협약)도 없는 인생이란 말인가.
문이 벌컥 열렸다.
"하린아!"
서른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뛰어 들어왔다.
검은 머리, 날카로운 눈매, 이마에 땀이 배어 있었다.
숨을 헐떡이는 걸 보니 꽤 멀리서부터 뛰어온 모양이었다. 옷차림도 방금 자다가 뛰쳐나온 것처럼 흐트러져 있었다.
손에는 은색 지팡이 같은 걸 들고 있었는데, 그 끝에서 옅은 빛이 흐르고 있었다.
지팡이 끝의 빛은 마치 모니터 백라이트 같았다. 은은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켜져 있는.
"괜찮다, 괜찮아. 아빠가 왔어."
아빠? 나한테? 이 몸한테?
서연이었던 나에게는 아버지가 있긴 했지만, 이렇게 젊고 이렇게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애초에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사람도 아니었다.
남자가 내 몸에 손을 얹었다.
손바닥이 뜨거웠다. 아니, 뜨거운 게 아니라 뭔가가 흘러들고 있었다.
따뜻한 기운이 흘러들었다. 배 속에서 폭발할 듯 부풀던 열기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마치 과열된 서버에 냉각수를 붓는 느낌.
정확히, 딱 그 느낌이었다. 부글거리던 압력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온도 그래프가 서서히 아래로 꺾이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마력 폭주 진압 완료. 잔여 수치 : 위험】
그 순간, 눈앞에 이상한 창이 떴다.
허공에 글자가 떠 있었다. 반투명하고, 딱딱한 서체였다.
···잠깐, 이거 시스템 알림 아닌가.
분명 회사에서 보던 모니터링 대시보드랑 똑같은 느낌이었다. 저 딱딱한 폰트, 저 사무적인 어투. 어디서 저런 걸 만들었는지 몰라도, 담당 UI 개발자한테 위로 전화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력 폭주'라니. 폭주라는 단어를 이렇게 실제로 몸으로 겪어보니 새삼 소름이 돋았다. 회사에서 서버가 폭주했다는 말은 그냥 은유였는데, 여긴 진짜로 몸이 터질 뻔했다.
남자가 나를 안아 올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이번엔... 세 살인데 벌써 이 정도라니."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말투에서 걱정과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뭔가 익숙한 걱정 같기도 했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뜻인가.
그 얼굴에는 다정함과 두려움이 반쯤씩 섞여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눈가에 잔주름이 있었다. 밤을 새운 흔적인지, 원래 그런 얼굴인지는 구분이 안 갔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진짜였다. 저건 연기로 나올 수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나는 그제야 실감했다.
돌아왔다.
다만 내가 알던 세상은 아니었다.
책상도, 모니터도, 팀장의 메신저 알림도 없는 세상. 대신 벨벳 커튼과 지팡이, 그리고 알 수 없는 시스템 창이 있는 세상이었다.
그리고 이 몸의 진짜 주인, 설하린은 이제 세 살이었고, 그 몸 안에 서른둘의 죽은 엔지니어가 눌러앉아 있었다.
이름부터 낯설었다. 설하린. 발음해보니 입에 붙지도 않았다. 앞으로 이 이름으로 살아야 한다는 건가.
남자의 품에 안긴 채, 나는 다시 한번 그 창을 확인했다.
【잔여 수치 : 위험】
···이거, 아무리 봐도 정상은 아니었다.
'위험'이라는 단어가 저렇게 태연하게, 사무적으로 떠 있다는 것부터가 이상했다. 회사였다면 저 알림 하나에 전체 팀이 비상 대응 채널을 켰을 거다. 그런데 여긴 아무도 그런 걸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아니, 이 남자만은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았다.
남자의 팔에 안긴 채 나는 생각했다.
이 '위험'이라는 상태가, 도대체 얼마나 자주 반복되는 일이었을까.
세 살짜리 몸에 눌러앉은 서른둘의 인생. 이제부터 이 몸으로, 이 잔여 수치와 함께, 얼마나 더 많은 폭주를 견뎌내야 하는 걸까.
남자의 심장 소리가 내 귓가에 닿았다. 빠르게, 불규칙하게 뛰고 있었다.
이 사람도 나만큼이나, 아니 나보다 더 겁을 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