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3살, 감시대상 1호

2화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방문이 열렸다. 경첩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세 살짜리 몸이라 그런지 모든 소리가 실제보다 배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설도현. 어제 나를 안았던 그 남자, 이 저택의 가주이자 내 새아버지의 이름이었다. 하녀가 알려준 이름이었다. 발음이 뻣뻣해서 몇 번이나 되물어야 했다. 세 살짜리 발음으로 "설, 설또, 도현"을 반복하는 동안 하녀는 웃음을 참는 표정이었다. 나름 진지하게 발음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저쪽에서는 그게 귀여운 재롱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서른 넘어 다시 유아 발음 훈련이라니, 이건 좀 억울하잖아. "하린아, 손 좀 줘보자." 존댓말도 아니고 반말도 아닌 애매한 어조. 딱딱한 사무직 관리자가 억지로 부드러움을 흉내 내는 듣기였다. 실제로 표정도 그랬다. 입꼬리는 웃고 있는데 눈은 전혀 웃지 않는, 회사에서 상사가 부하 직원 성과 평가할 때 짓는 그런 얼굴. 작은 손을 내밀었다. 그가 내 손목을 잡고 눈을 감았다. 손끝에서 옅은 진동이 느껴졌다. 마치 스캐너가 지문을 읽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예전 회사에서 쓰던 출입 게이트 지문 인식기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이번엔 내가 그 게이트 자체라는 거였다. 【마력 수치 측정 중···】 또 그 창이 떴다. 이번엔 확실히 알았다. 이건 나만 보이는 창이다. 저 남자는 이 글자를 못 본다. 시선의 초점이 나를 향한 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걸 보면 확실했다. 만약 저 남자에게도 보였다면 최소한 한 번은 흘긋 시선을 옮겼을 텐데. 측정이 끝나자 그의 얼굴에 잠깐 안도가 스쳤다가, 곧 다시 굳었다. "오늘도... 평소보단 높구나." 낮게 중얼거리며 하녀에게 뭔가 손짓을 했다. 하녀가 종이에 숫자를 받아 적었다. 펜을 움직이는 손이 익숙했다. 한두 번 해본 동작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거, 아무리 봐도 QA 리포트 작성 아닌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절차, 같은 기록. 심지어 측정 자세까지 똑같았다. 왼손으로 손목을 잡고, 오른손으로 하녀에게 신호를 보내고, 종이에 숫자가 적히면 그제야 표정을 푸는 순서. 마치 매뉴얼에 적힌 대로 움직이는 사람 같았다. 엔지니어 출신인 내 눈에는 너무나 익숙한 패턴이었다. 버그가 있는 시스템은 이렇게 관리한다. 재현되는지, 심해지는지, 매일 로그를 남긴다. 그리고 로그가 일정 수치를 넘으면 에스컬레이션이 들어간다. 문제는, 이번 에스컬레이션의 대상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는 거였다. *** "작은 아가씨, 오늘은 산책 대신 방에서 쉬시는 게 어떨까요." 하녀가 조심스레 말했다. 방문을 나가는 발걸음이 이상하게 빨랐다. 뒤도 안 돌아보고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유난히 급하게 들렸다. 창문 밖을 보니 정원사가 나를 힐끔거리다 얼른 시선을 돌렸다. 가위질을 하다 말고 멈춘 손이 허공에서 어색하게 멈춰 있었다. 마치 방금 뭔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식사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식탁에 앉은 사람들은 나를 볼 때마다 시선을 오래 두지 않았다. 국그릇에 숟가락을 담그는 손조차 조심스러웠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평소보다 절제된 느낌이었다. 마치 뭔가 깨질까 봐 조심하는 눈빛. 옆자리에 앉은 나이 지긋한 부인은 내가 숟가락을 놓칠 때마다 흠칫 몸을 떨었다. 숟가락, 별거 아닌 숟가락이었다. 그런데 그 반응이 마치 폭탄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이거 완전히 격리 대상 취급이잖아. 세 살짜리 애가 뭘 안다고, 라는 전제가 이 저택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다들 내가 뭔가를 눈치챌까 봐 더 조심하는 느낌이었다. 마치 내가 세 살이 아니라 삼십 대 신입 팀장쯤 되는 것처럼, 다들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 위화감이 오히려 확신을 줬다. 이 집엔 뭔가 있다. 밥을 반쯤 먹었을 때, 하녀가 내 그릇을 슬쩍 밀어냈다. "이제 그만 드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웃는 얼굴로 그릇을 치웠을 뿐이다. 이유 없는 배려는 없다. 적어도 이 저택에서는. *** 오후, 서재 근처를 지나던 중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봤다. 호기심에 발걸음을 늦췄다. 세 살짜리 걸음으로는 원래도 느렸지만, 이번엔 의도적으로 더 느리게 걸었다. 안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수치가 벌써 그 정도라면, 위에 보고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 늙은 남자의 것이었다. 말투에 관록이 배어 있었다. 오랫동안 이 저택을 관리해온 사람 특유의, 함부로 흔들리지 않는 어조. "안 됩니다." 설도현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끼어들었다. "보고하는 순간, 그 아이는 우리 손을 떠납니다." ···우리 손을 떠난다니, 이건 무슨 소린가. 나를 어디 넘기려는 건가. "하지만 가주님, 은폐가 얼마나 갈 것 같습니까." "박노식." 이름이 불렸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목소리에 실린 무게로 보아, 저 노인이 이 저택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짐작이 갔다. "제가 책임집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나는 숨을 죽인 채 문틈에 붙어 있었다. 등이 벽에 닿아 있었는데, 벽의 냉기가 옷을 뚫고 스며들어왔다. 그런데도 몸을 뗄 수가 없었다. ···박노식. 이 집의 집사인가. 그리고 저 두 사람은 지금, 나에 대한 뭔가를 숨기려 하고 있다. 문틈으로 보이는 서재 안쪽 풍경은 예상보다 넓었다. 책장이 벽을 따라 빙 둘러 있었고, 그 앞에 낡은 책상 하나. 설도현은 그 책상 앞에 서 있었고, 박노식이라는 노인은 반대편에서 그를 마주 보고 있었다. 둘 사이의 거리가 묘하게 멀었다. 신뢰가 있는 관계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뭔가 조심스러운 거리감이 느껴졌다. "보고서 초안은 이미 세 번이나 준비했었습니다. 매번 가주님께서 미루셨죠." "미룬 게 아니라 지켜본 겁니다. 시간을 더 달란 말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더 필요합니까. 매일 수치가 올라가는데."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 침묵의 무게가 목덜미까지 눌러오는 걸 느꼈다. 【경고 : 관찰 대상의 마력 수치가 임계값에 근접합니다.】 갑자기 눈앞에 떠오른 창에 나는 흠칫했다. 숨이 턱 막혔다. 임계값이라니, 무슨 임계값. 넘으면 어떻게 되는데. 시스템이 이렇게 불친절할 거면 뭐 하러 경고창을 띄우나. 최소한 매뉴얼이라도 첨부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손끝이 저릿해지는 게 느껴졌다. 저번에 폭주 직전에 느꼈던 그 감각과 똑같았다.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아주 미세한 떨림. 서재 안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문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얼른 몸을 돌려 뛰었다. 짧은 다리로는 최선을 다한 속도였지만, 그래도 느렸다. 발바닥에 닿는 카펫의 질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등 뒤에서 문이 완전히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 있었나?" 낮은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나는 모퉁이를 돌아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아기 몸에 안 맞게 세차게 뛰었다. 갈비뼈 안쪽에서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뛰는 게, 이 작은 몸이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들켰나?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아니면 내 착각일까. 확인할 시간도 없이 심장은 계속 미친 듯이 뛰었다. 손끝의 저림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또 폭주가 시작되려는 조짐이었다. 몸속 어딘가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각. 뜨거운 것도 아니고 차가운 것도 아닌, 설명할 수 없는 이질적인 느낌이 손끝에서부터 팔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복도 한가운데서 뭔가 터질 것 같았다. 발걸음 소리가 모퉁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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