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재앙 용사와 무능 공주

3화

다음 날 아침, 나는 눈을 뜨기도 전에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다. 창밖에서 학생들이 몰려다니는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는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고, 누군가는 웃음소리를 냈다. 나는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밤새 잠을 설친 탓인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젯밤의 일이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하지만 창밖의 소란은 그것이 꿈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아침 공기가 얼굴에 부딫혔다. 기숙사 정원 쪽에서 사람들이 하늘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용은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거대한 날개를 접은 채 나무 사이에 웅크려 있었고, 학원 경비병들이 멀찍이 둘러선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경비병 하나가 창을 든 채 다가섰다가, 용이 고개를 살짝 들자 그대로 뒷걸음질쳤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학생들 사이에서 낮은 탄성이 터졌다. '저게 왜 아직도 저기 있는 거지.' 나는 창틀을 붙잡은 채 그런 생각을 했다. '강주혁은 어디로 간 거야.' 간밤에 그 남자애가 사라진 방향을 떠올려봤지만,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나는 옷을 갈아입으며 손이 떨리는 걸 느꼈다. 교복 단추를 잠그는 손끝이 자꾸 미끄러졌다. 세 번째 시도 끝에야 겨우 단추를 다 채울 수 있었다.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서자, 학생들의 수다가 곧바로 귓가에 꽂혔다. "어젯밤에 저게 왕궁 상공을 날았대." "그 옆에 있던 게 제3공주였다며?" "진짜? 그 조용한 공주님이?" 복도를 지나며 들려오는 학생들의 수다에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누군가 정원에서 우리를 목격한 모양이었다. '누가 봤을까.' '몇 명이나 본 거지.'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몇몇 학생들이 나를 알아보고 수다를 멈추는 게 느껴졌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크게 들렸다. 나는 걸음을 빨리해 강당으로 향했다. 교장실 앞에는 이미 학원 관계자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교사들이 서류를 손에 들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사이를 지나가는데, 몇몇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윤서린 공주님, 이쪽으로 오시죠." 한 교사가 나를 발견하고 다급히 불렀다. 그 목소리에는 평소와 다른 긴장이 배어 있었다. 나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 교장실 문 앞에 섰다. 문고리를 잡은 손에 땀이 배어 있었다. 노크를 하고 문을 열자, 안쪽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교장실 안에는 교장, 학년 주임, 그리고 낯익은 얼굴 하나가 앉아 있었다. 설화 백작부인이었다. 그녀는 늘 입던 짙은 남색 드레스 대신, 검은색에 가까운 어두운 옷을 입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이 평범한 날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부인..." 나는 그녀를 보고 잠시 숨을 삼켰다. 그녀는 늘 나를 볼 때 온화하게 웃어주던 사람이었다. 내가 파벌 안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던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빛은 달랐다. 그 눈빛 하나만으로도 나는 오늘 일이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앉으세요, 서린." 교장이 손짓으로 의자를 권했다. 나는 다리에 힘을 주며 의자에 앉았다. 의자는 딱딱했고, 그 딱딱함이 등을 통해 그대로 전해졌다. "서린, 어젯밤 정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죠." 부인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제가 부른 게 아니에요." 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스스로도 낯설 만큼 작게 나왔다. "목격자들은 공주님이 소환진 앞에 함께 서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학년 주임이 서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서류에는 이미 몇 명의 이름과 진술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벌써 저렇게 많이.' 나는 그 서류를 보며 속으로 되뇌었다. "그 용이 초대 용사님의 용이라는 것도 확인됐습니다." 교장이 덧붙였다. 그 말에 방 안의 공기가 한층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초대 용사의 용은 오직 초대 국왕의 명령만 따랐다는 전설이 있죠." 부인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그 용이 하룻밤 사이 학원에 나타났고, 그 자리에 왕위 계승권을 가진 공주님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곧바로 이해했다. '그건 내가 왕위를 노리고 있다는 뜻이 되겠구나.' 속으로 그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손끝이 차가워졌다. "부인,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강주혁이라는 신입생이..." 나는 다급히 해명하려 했다. 목소리가 점점 떨려왔다. "강주혁이라는 학생은 이미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교장이 말을 잘랐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 그 학생과의 접촉은 금지됩니다." 학년 주임이 덧붙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그 애를 만나지도 못하면, 내가 어떻게 해명할 수 있어.' "다만 문제는, 이번 소환이 공주님의 왕위 계승 야심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부인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제가요? 저는 왕위 같은 거..."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지만, 그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공주님, 이 일이 왕궁까지 보고되면 파벌 간의 균형이 완전히 흔들릴 수 있습니다." 교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다른 파벌에서 이 기회를 놓칠 리 없겠지요." 학년 주임도 낮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는 그 말들을 들으며 목이 조여드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원한 게 아닌데.' '나는 그냥... 그 애를 도와주려고 했을 뿐인데.' "서린, 저는 당신을 믿고 파벌 전체를 이끌어왔습니다."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방 안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오늘 이 일이 알려지면, 그 신뢰가 어떻게 될지 저도 장담할 수 없어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방을 나갔다. 뒷모습에서 실망이 그대로 느껴졌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교장과 학년 주임도 서로 눈짓을 주고받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주님, 오늘은 일단 기숙사로 돌아가세요." 교장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 함부로 움직이지 마시고요." 나는 대답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방을 나섰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다리에 힘이 풀리는 걸 느꼈다. 복도의 창문 너머로 아직도 정원 쪽에 몰려 있는 학생들이 보였다. 용은 여전히 그 자리에 웅크려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도 그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저 용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 소문도 사라지지 않겠지.' 나는 창문에 이마를 살짝 대고 그런 생각을 했다. 차가운 유리의 감촉이 그나마 정신을 붙잡아 주는 것 같았다. 총대 연설은 이제 사흘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해명할 시간도, 방법도 없이 나는 이미 의혹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사흘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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