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박도협의 눈빛에는 이미 판단이 서 있는 듯했다.
마당 한복판에 목검이 놓였다. 하인들이 재빨리 물러섰고, 마당 가장자리로는 이현성을 비롯한 몇몇 이가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청지기와 시종들까지 담벼락 아래 늘어서서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었다. 도훈도 마당 구석, 늙은 회화나무 그늘 아래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람이 마당을 스치고 지나갔다. 흙먼지가 살짝 일었다가 가라앉았다.
"칠 층이면, 이 정도 초식은 받아낼 수 있겠지."
박도협의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시험이라는 이름의 압박이 배어 있었다. 그의 손이 목검의 손잡이를 쥐는 방식만 보아도, 이 자리에 모인 이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서준이 목검을 쥐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긴장하고 있구나.'
도훈은 형의 등에서 그것을 읽어냈다. 어깨의 각도, 발의 위치, 숨을 들이쉬는 속도까지. 십 년 가까이 형의 등을 보며 살아온 도훈에게는 익숙한 신호였다. 십팔 세에 칠 층. 무가의 기준으로는 분명 뛰어난 성취였다. 형은 어릴 때부터 남들보다 두 배는 더 검을 쥐고 있었고, 그 성취는 결코 요행이 아니었다. 하지만 팔 층의 벽 앞에서는, 아직 신참일 뿐이었다.
박도협이 먼저 움직였다.
'휘릭―!'
목검이 허공을 갈랐다. 그저 팔을 뻗은 듯한 동작이었으나, 그 안에 담긴 속도는 마당의 공기를 밀어내는 듯했다. 서준이 재빨리 검을 들어 막았다. '챙!' 날카로운 금속음이 마당에 울렸다.
서준의 발이 반보 밀렸다. 겨우 두 초식만에 벌어진 격차였다.
박도협은 웃음기 없는 얼굴로 다시 검을 뻗었다. 이번엔 더 낮게, 더 짧게. 서준은 이를 악물고 받아냈다. 그러나 매 격돌마다 그의 자세는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발끝의 중심이 흐트러지고, 검을 쥔 손목의 각도가 어긋났다.
지켜보던 하인 하나가 조그맣게 숨을 삼켰다. 이현성은 팔짱을 낀 채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형은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런데도······'
도훈은 마른 침을 삼켰다. 팔 층과 칠 층. 단 한 단계의 차이가 이렇게까지 압도적인 것인가. 벽이라는 말이 이토록 실감 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세 번째 격돌, 네 번째 격돌. 목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점점 더 둔탁해졌다. 마치 지쳐가는 심장 소리처럼.
다섯 번째 격돌에서, 서준의 목검이 손에서 튕겨 나갔다. '텅―!' 목검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그 소리는 마당의 정적을 갈랐다가, 이내 다시 그 정적 속으로 잦아들었다.
서준은 무릎을 꿇지는 않았지만,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한쪽 무릎을 짚었다.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려 턱 끝에 매달렸다.
박도협이 검을 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초는 튼튼하군. 이 나이에 칠 층이면, 몇 년 안에 팔 층도 노려볼 수 있겠어."
칭찬이었다. 그러나 그 칭찬 속엔 명백한 상하관계가 새겨져 있었다. 격을 매기고, 그 격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 도훈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현성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다. 아들이 패했음에도 그 얼굴에는 자랑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박 가주님의 안목에 감사드립니다. 제 아들이 부족한 점이 많으니, 앞으로도 많은 지도를 부탁드립니다."
"허허, 이 정도 재목이면 지도할 필요도 없이 알아서 클 걸세."
박도협이 웃으며 마당을 둘러보았다. 그 시선이 늘어선 이가의 사람들을 하나씩 훑고 지나갔다. 그러다가, 그 시선이 다시 한번 도훈을 향했다.
이번엔 조금 더 오래 머물렀다.
도훈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다만 등 뒤로 손을 숨기듯, 굳은살이 박인 손을 자연스레 소매 속으로 밀어 넣었다.
"저 아이는 뭔가?"
이현성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 속에 이미 대답이 담겨 있었다.
"막내입니다. 이도훈이라고, 안타깝게도 천생 절맥이라······"
"절맥이라."
박도협의 눈매가 좁아졌다. 흥미롭다는 듯한, 그러나 결코 존중은 아닌 눈빛이었다. 마치 값어치 없는 물건을 살펴보는 상인의 눈초리 같았다.
"내공을 못 쌓는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대신 상인 수업을 시켜 가업을 이을 수 있게 준비 중입니다."
박도협은 잠시 도훈을 훑어보았다. 마당 구석에 서 있는 소년의 몸은, 확실히 단단했다. 어깨선이 곧고, 서 있는 자세에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눈치챈 자는 이 자리에 없었다. 아니, 눈치챘다 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절맥이라는 말 한마디가 이미 그 몸의 가치를 지워버린 뒤였다.
"내공 없이 몸만 단련해서야, 뭘 하겠나."
박도협의 입에서 나온 말은 무심했다. 그러나 그 무심함이 오히려 더 아팠다. 상처를 주려는 의도조차 없이 던진 말이었기에, 더욱 깊게 박혔다.
"무가에서 태어나 무공을 익히지 못한다면, 그저 평범한 백성으로 사는 게 낫지. 몸을 굴려봤자, 진짜 무인들 앞에서는 그저 흉내일 뿐이야."
마당이 순간 조용해졌다. 바람 소리조차 멎은 듯했다.
도훈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주먹을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소매 속에 숨긴 손이 자기도 모르게 힘을 주고 있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흉내······'
그 단어가 귓속에서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새벽마다 오르던 산길, 무릎이 꺾일 때까지 내지르던 주먹, 밤마다 등에 흐르던 식은땀. 그 모든 것이 한 단어로 지워지는 순간이었다.
서준이 무슨 말을 하려 했으나, 이현성이 먼저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하하, 저 아이는 상인의 길을 갈 것이니, 무공에 관해서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게 낫겠지."
박도협은 그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이미 서준에게로 돌아가 있었다. 흥미가 완전히 다른 곳으로 옮겨간 눈빛이었다.
"자네는 아까운 재목이야. 언제든 박씨세가에서 인재를 원한다면, 생각해보게."
서준이 예를 갖추며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동생 쪽을 향한 시선은 짧게 흔들렸다.
도훈은 그 이후의 대화를 듣지 않았다. 귓속이 웅웅 울렸다. 발밑이 흔들리는 듯한 감각이었다. 마당의 흙바닥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늘 걷던 길이었는데, 지금은 발을 딛는 것조차 어색했다.
***
박도협의 일행이 떠난 후, 저택엔 다시 평소의 분주함이 돌아왔다. 하인들이 마당을 정리했고, 이현성은 서준을 데리고 안채로 향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흥이 올라 있었다.
그러나 도훈에게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방으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 문틈으로 저녁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가, 문이 완전히 닫히자 끊어졌다.
'흉내일 뿐이라고······'
십 년이었다. 십 년 동안 매일 새벽 산길을 뛰고, 수백 수천 번 주먹을 뻗었다. 손바닥이 갈라지고, 다시 굳고, 또 갈라지던 시간이었다.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던 첫해, 종아리가 후들거려 산길 중턱에서 주저앉던 둘째 해, 그리고 그 이후로 이어진 무수한 새벽들. 그것이 흉내에 불과하다는 말을, 팔 층 강자의 입에서 직접 들었다.
도훈은 침상에 걸터앉아 두 손을 바라보았다. 굳은살이 박인 손이었다. 십 년의 시간이 새겨진 손이었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남은 흔적들, 손등에 옅게 남은 오래된 상처. 그것들 하나하나가 지금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럼 이건, 다 무의미한 건가.'
답은 나오지 않았다. 창밖으로 저녁 해가 붉게 지고 있었다. 붉은 빛이 방바닥에 길게 늘어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길이가 조금씩 짧아졌다.
도훈은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안쪽으로도 그 붉은 빛이 스며드는 듯했다. 절맥. 흉내. 두 단어가 번갈아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도훈아."
서준의 목소리였다. 도훈은 잠시 침묵하다 대답했다.
"들어와, 형."
문이 열리고 서준이 들어왔다. 그는 아직 목검을 든 흔적이 남은 손으로 문을 닫고, 도훈의 옆에 앉아 잠시 말이 없었다. 방 안의 침묵이 두 사람 사이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박 가주님 말씀, 신경 쓰지 마."
"······괜찮아."
괜찮지 않았다. 그러나 도훈은 그렇게 말했다.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들렸지만, 그 안에 힘이 없었다.
서준은 동생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억지로 눌러 담은 표정이 눈에 보였다. 형제로 지낸 세월이 그 정도쯤은 읽어낼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너, 오늘도 새벽에 산 다녀왔지."
도훈이 놀란 눈으로 형을 바라보았다. 숨기고 있던 것을 들킨 아이의 표정이었다.
"알고 있었어?"
"당연히 알지. 벌써 몇 년이야."
서준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는 원망도, 걱정도 조금씩 섞여 있었다.
"근데 왜 말 안 했어."
"말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네가 뭘 하든, 그건 네 몫이잖아."
짧은 침묵이 흘렀다. 창밖으로 저녁 새 한 마리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가, 곧 멀어졌다. 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덧붙였다.
"박 가주 같은 사람들 말은, 세상 전부가 아니야. 그러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
도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살짝 끄덕였을 뿐이었다. 그 끄덕임이 진심인지, 그저 형을 안심시키기 위한 몸짓인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방문이 닫히고, 도훈은 다시 홀로 남았다.
창밖의 붉은 해가 완전히 저물었다. 방 안에 어둠이 깔렸다. 어둠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방구석부터 벽을 타고 번져갔다.
도훈은 그날 밤,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박도협의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 울렸다. 흉내일 뿐이야. 그 말이 마치 벽에 새겨진 듯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밤하늘에는 별이 드문드문 떠 있었다. 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둠에 잠긴 산줄기의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였다.
'내일도 오를 거다.'
그것이 유일하게 떠오른 대답이었다. 흉내든 아니든, 몸은 이미 그 길에 익숙해져 있었다. 십 년 동안 새겨진 습관은, 말 한마디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무거운 것이 가라앉아 있었다. 팔 층이라는 벽, 절맥이라는 낙인, 그리고 그 위에 얹힌 오늘의 한마디.
도훈은 창가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밤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바람 속에서, 그는 아무도 모르게 주먹을 다시 쥐었다. 굳은살 박인 손끝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