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스승님, 정체가 뭐예요?

3화

한지운의 그 말이 협박이 아니라는 걸, 나는 도장 문턱을 넘기도 전에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낡은 간판 아래 붙은 '연무관'이라는 글씨는 페인트가 반쯤 벗겨져 있었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코끝을 스치는 나무 냄새와 땀 냄새가 뒤섞인 그 특유의 공기가 있었는데, 그건 오랜 시간 진짜로 몸을 부딪혀본 사람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냄새였다. 나는 그 냄새를 맡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적당히 흉내만 내는 도장은 아니라는 거지.' 기사단에서 다녀본 수련장들과는 확실히 다른 결의 긴장감이 감돌았고, 그 긴장감은 정작 김도진이라는 사람을 마주하고 나서야 확신으로 굳어졌다. 그는 마흔 중반쯤으로 보이는 사내였는데, 체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서 있는 자세만으로도 뭔가 다른 무게감이 느껴졌다. 어깨는 넓지 않았고 팔뚝도 특별히 굵지 않았는데, 그런데도 그가 서 있는 자리 주변의 공기가 유독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는 그 착각의 정체를 곱씹어봤는데, 아마 그건 그가 단 한 순간도 균형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있었기 때문일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서 있는 것도 무술이라면, 저 사람은 지금 이 순간에도 대련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도장 안에 도착한 최홍련이라는, 적발의 중년 여성이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어 이 대련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녀의 시선은 나를 훑는 게 아니라 이미 판단을 마친 사람의 눈빛이었다. 나중에 들으니 그녀는 김도진의 부인이자 이 도장의 또 다른 사범이라고 했다. 붉은 머리와 등불 불빛이 만나 묘하게 형형한 색을 냈는데, 그녀는 내가 들어올 때부터 그 자리에서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기사단에서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김도진이 정중하게 말을 건넸고, 나는 그 정중함 속에 숨은 여유가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정중한 말투와 정중한 태도는 보통 상대를 존중해서 나오는 법인데, 이 사람의 정중함은 존중이 아니라 여유에서 나오는 정중함이었다. 다시 말해, 이 사람은 나를 딱히 위협적으로 느끼지 않는다는 뜻이었고, 그 사실을 그는 굳이 숨기지도 않았다. "예. 이하준입니다."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이미 계산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기사단 내에서도 검술 시험 상위권을 놓친 적이 없었으니, 저 여유가 어디까지 진짜인지 한번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목검을 건네받는 그의 손짓에는 불필요한 동작이 하나도 없었다. 대련용 목검을 받아든 순간, 나는 익숙한 무게감을 느꼈고, 그 익숙함이 오히려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손아귀에 감기는 나무의 질감, 손끝에서 팔꿈치로 이어지는 균형감, 그 모든 게 몸에 새겨진 습관대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나는 그 익숙함을 근거로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이 정도 대련이야 어렵지 않게 풀어낼 수 있겠지.'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 순간까지는. 하지만 시작하고 채 십 초도 지나지 않아, 나는 내 검이 자꾸만 헛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엔 단순히 거리 감각이 틀어진 거라 생각했는데, 두 번, 세 번 반복되자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김도진의 움직임은 화려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 단순함이 문제였다. 화려한 동작은 예측이 가능하다. 크게 휘두르면 크게 막으면 되고, 빠르게 파고들면 그만큼 빠르게 물러서면 된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어떤 과장도 없이, 딱 필요한 만큼만 움직였다. 나는 매번 그 필요한 만큼의 움직임에 맞춰 헛스윙을 반복하고 있었고, 그 헛스윙이 쌓일수록 호흡이 흐트러졌다. 퍼억. 목검이 내 팔뚝을 강하게 스치며 소리를 냈고, 나는 반사적으로 물러서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팔뚝에 남은 얼얼한 감각이 뇌를 다시 깨우는 느낌이었다. 나는 재빨리 다음 수를 계산했다. 정면으로는 승부가 안 된다면, 측면으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계산이었는데, 그 계산조차도 이미 한 박자 늦은 반응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이대로면 곧 승부가 나겠다는 계산이 들었는데, 그 순간 도장 입구 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리 힘 빼." 한지운이었다. 그는 어느새 도장 입구에 기대어 서서 팔짱을 끼고 이 대련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그 짧은 한마디를 던지고는 다시 하품을 했다. 언제 들어왔는지도 몰랐다. 술 냄새가 여기까지 풍기는 것 같기도 했는데, 그 와중에도 그의 눈은 정확히 내 허리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순간 발끈했다. 허리 힘을 빼라니, 그건 검술의 기본조차 모르는 사람이나 할 법한 조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검술에서 중심을 잡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인데, 그 중심을 잡는 힘을 빼라는 건 앞뒤가 안 맞는 소리였다. 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아니, 힘을 빼면 자세가 무너지는데, 저 사람은 대체 뭘 보고 저런 말을...' 하지만 그 말이 자꾸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다음 순간 나도 모르게 허리에 들어가 있던 힘을 조금 풀어보았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검이 조금 더 가볍게 느껴졌고, 그 가벼움 속에서 지금까지 억지로 밀어붙이던 힘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흐르는 궤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치 지금까지 모래주머니를 팔에 묶고 검을 휘두르다가, 그 모래주머니가 갑자기 사라진 것 같은 감각이었다. 나는 그것을 말로 설명할 수 없었지만,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김도진의 다음 공격을 받아치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그의 움직임을 반 박자 앞서 읽어냈다. 콰크작. 목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고, 김도진이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 나는 그 표정에서 그가 조금 놀랐다는 걸 읽어냈는데, 그 놀람이 내게는 묘한 흥분으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나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검술을 익혀왔는데, 이 짧은 한마디로 완전히 다른 감각을 맛본 것이었다. ...이게, 되네? 나는 속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방금까지 헛스윙만 반복하던 검이, 단 한 마디의 조언으로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지운의 그 짧은 지시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 나는 그 여세를 몰아 다시 파고들었다. 이번엔 힘이 아니라 흐름을 따라가는 느낌으로, 김도진의 목검이 그려내는 궤적의 틈을 노렸다. 잠깐이었지만, 정말 잠깐이었지만, 나는 그와 대등하게 검을 맞부딫히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물론 그 착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부우욱. 내가 힘을 준 방향과 완전히 다른 각도로 그의 목검이 흘러들어왔고, 나는 반응할 틈도 없이 균형을 잃었다. 그 뒤로 몇 번 더 검을 맞부딪혔지만, 결국 나는 김도진에게 완패했다. 그의 마지막 일격이 내 목검을 튕겨내며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나는 숨을 몰아쉬며 무릎을 짚었다. 목검이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는데, 그 소리가 마치 내 자존심이 굴러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최홍련이 짧게 웃으며 말했다. "제법인데. 처음 온 애가 이 정도로 버티는 건 오랜만이네." "...감사합니다." 나는 그 말이 위로인지 평가인지 구분이 안 됐지만, 어쨌든 완패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채로 나는 생각했다. '기사단 검술 시험이면 나도 이 정도는 아닌데.' 자존심이 상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었지만, 그보다 더 크게 남은 감각은 패배감이 아니라 의문이었다. 방금 내 몸에서 일어난 변화, 그 변화의 원인이 된 한마디. 그런데 정작 신경 쓰이는 건 승패가 아니라, 한지운의 그 짧은 한마디였다. 나는 숨을 고르는 내내 그 한마디를 곱씹었다. 허리 힘을 빼라. 그게 전부였는데, 그 짧은 지시 하나로 헛스윙만 반복하던 검이 갑자기 흐름을 되찾았다는 게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저 사람, 정말로 뭔가를 보고 있었던 걸까. 나는 대련이 끝난 뒤 숨을 고르며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방금... 허리 힘을 빼라고 하신 이유가 뭡니까?" 한지운은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대뜬 하품을 하며 대답했다. "그냥 보기 답답해서." 그것뿐이었다.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뭔가 거창한 이유가 있을 거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무성의한 대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나는 그 대답에 더 캐물으려 했지만, 그는 이미 몸을 돌려 도장을 나서고 있었다. 슬리퍼를 끄는 소리가 도장 바닥에 저벅저벅 울렸고, 그 소리가 멀어질수록 나는 뭔가 놓친 기분이 들었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저 사람, 정말로 아무 생각 없이 술이나 마시며 사는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확신이었다. 단 한마디, 그것도 지나가듯 툭 던진 한마디로 내 검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그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모습들은 대체 뭐였을까. 하지만 그 확신을 뒷받침할 증거는 아직 아무것도 없었고, 나는 그저 방금 내 몸에 일어난 변화를 곱씹으며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최홍련이 벽에서 몸을 떼며 다가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저 양반 말은 원래 저래. 신경 쓰지 말어." "...저 양반이라뇨. 알고 지내는 사이십니까?" "알고 지내는 사이라니, 말이 좀 이상하네." 최홍련은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만 대답했고, 나는 그 웃음의 의미를 물어볼 틈도 없이 그녀가 몸을 돌려 도장 안쪽으로 사라졌다. 김도진은 그런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옅게 웃을 뿐, 별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목검을 주워들며 생각했다. 이 도장에 얽힌 사람들 중 누구 하나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어쩌면 하나의 규칙인 걸까. 아니면 그들 모두가 알고 있는 무언가를, 나만 아직 모르고 있는 걸까. 도장 밖으로 나섰을 때, 한지운은 이미 골목 끝 술집 앞에 앉아 맥주병을 따고 있었다. 나는 그를 향해 걸어가며 다시 물음을 참을 수 없었다. "진짜로 그냥 보기 답답해서 그러신 겁니까?" "어, 왜, 못 믿겠어?"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뭔데."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뭘 물어야 할지조차 정리가 안 된 상태였다. 한지운은 그런 나를 잠시 보다가, 병을 입에 대며 짧게 덧붙였다. "너 지금까지 검 잘 쓴다고 생각했지." "...예." "그거, 오늘부로 좀 다시 생각해봐."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더 이상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고, 나는 그 무심한 한마디가 대련에서의 완패보다 더 오래 가슴에 남는다는 걸 느끼며, 맥주를 홀짝이는 그의 옆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저 사람의 정체가 뭔지,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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