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스승님, 정체가 뭐예요?

5화

우리가 그 짧은 광경을 목격하고 며칠이 지난 뒤, 청류진 밖에서 벌어지고 있던 일들을, 나는 훨씬 나중에서야 서채린을 통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정확히는 대사원 쪽으로 보낸 서채린의 보고서에 대한 회신이 늦어지다가, 뒤늦게 도착한 서신 안에 그간의 사정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서채린은 그 서신을 받아 든 순간부터 표정이 묘하게 굳어 있었는데, 처음엔 나쁜 소식인가 싶어 덜컥 겁이 났지만, 정작 내용을 다 읽고 나서는 그녀도 나만큼이나 알쏭달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보고 나서야 나는 이게 단순히 좋다 나쁘다로 정리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청류진으로 우리를 파견한 뒤, 이강철 대장님과 선보라 대사님은 한지운에 대한 정보를 계속 추가로 수집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정보라는 게 하나같이 앞뒤가 맞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서채린의 서신에는 그 불일치가 마치 서로 다른 사람 두셋을 억지로 한 사람의 이름 아래 끼워 맞춘 것 같다는 표현까지 쓰여 있었는데,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면서 실없는 생각을 하나 했다. 한지운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실은 여럿이고, 우리가 만난 건 그중에서 제일 게으른 쪽이 아니었을까 하는, 뭐 그런 생각이었다. 기사단이 확인한 공식 등급은 B랭크였고, 십여 년 전 딱 한 번 정식 시험을 통과한 기록 말고는 특별한 전공도, 토벌 이력도 없었다. 서류상으로만 보면 그는 그저 그런 중견 무인, 딱히 눈에 띌 것도 없는 이력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정작 청류진 현지에서 수집한 증언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도장 인근 주민들은 그가 몇 년 전 산맥 너머에서 벌어진 대규모 마물 소탕전에 홀로 나섰다가 아무 흔적도 없이 사흘 만에 돌아온 적이 있다고 했고, 상단 사람들은 그가 지나간 도적떼 소굴이 며칠 뒤 통째로 텅 비어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심지어 어떤 늙은 행상은, 그가 예전에 강을 건너다 갑작스레 불어난 물살에 휩쓸린 마차를 혼자서 강기슭까지 끌어올렸다는 증언까지 남겼는데, 그 힘이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는 게 그 행상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정식 기록으로는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결론이었다. 요컨대 소문은 넘쳐나는데 증거는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고, 이게 어떤 의미인지는 굳이 서채린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흔적을 지웠거나, 아니면 애초에 흔적을 남기지 않을 만큼의 여유가 있었다는 뜻이었다. "이런 인물에게 어째서 신임을 보내셨습니까." 기사단 내부 회의에서 나온 이 질문에, 이강철 대장님은 오랫동안 답을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서채린의 서신에는 그 침묵이 무려 반나절 가까이 이어졌다는 부연까지 달려 있었는데, 나는 그 대목에서 대장님의 얼굴을 떠올려 보려 했지만 잘 그려지지가 않았다. 그 자리에 있던 부관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을 때, 대장님은 이렇게만 말씀하셨다고 전해 들었다. "그 사람의 실력을 의심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그렇다면 어째서 저희에게조차 자세한 사정을 알려주지 않으십니까." "내가 아는 것도 그리 많지 않으니까." 그 대답이 회의실 안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했다. 대장님 스스로도 한지운에 대해 확실히 아는 게 없으면서, 그런 인물에게 제국의 유망한 인재를 맡겼다는 사실이 부관들 사이에서 불안한 소문으로 번져갔다는 것이었다. 서채린은 이 부분을 쓰면서 나름 자기 해석까지 덧붙여 놓았는데, 그녀 생각에는 이강철 대장님이 뭔가를 확신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언어로 옮기는 순간 뭔가가 틀어질까 봐 일부러 말을 아끼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이 있는데 말을 못 하는 것과, 확신이 없어서 말을 못 하는 것은 겉으로는 똑같은 침묵으로 보이지만 속은 전혀 다른 법이니까. 대사원 쪽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보라 대사님은 부하 대사들의 질문에 시종일관 침묵으로 답하셨다고 했는데, 딱 한 번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고 한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그를 곁에서 오래 지켜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거다. 그러니 이하준과 서채린이 그 답을 가져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 말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묘한 부담감을 느꼈다. 기사단 대장님과 대사원의 최고 지도자가 각각 신임을 걸고 파견한 이유가, 결국 우리에게 그 답을 찾아오라는 것이었다니, 이 상황이 단순히 개인적인 수련을 넘어서는 무게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셈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무게라는 게 딱히 반갑지는 않았다. 나는 그냥 도장에서 몇 달 굴러다니다가 실력 좀 늘려서 돌아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내 어깨 위에 대장님과 대사님 두 분의 판단까지 얹혀 있었던 셈이니, 이게 승진인지 짐인지 헷갈릴 노릇이었다. 한편 청류진 내부에서도 술렁임이 없지는 않았다. 도장을 드나드는 문하생들 사이에서 내가 목격한 그 짧은 순간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퍼져나갔는데, 처음에는 다들 웃어넘겼지만, 최홍련이 은근한 어조로 몇몇 사람들에게 "그 양반, 원래 저래"라는 말을 흘리는 걸 들었을 때 나는 뭔가 더 있다는 확신을 다시 굳혔다. 원래 저렇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고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최홍련은 그 뒤로 나만 보면 슬쩍 화제를 돌려버려서, 결국 나는 아무것도 캐내지 못한 채 며칠을 그냥 흘려보내야 했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도장 안에서 가장 오래 있었을 문하생조차 함구하는 걸 보면, 이건 그냥 소문이 아니라 뭔가 다들 알면서도 굳이 입 밖에 내지 않는 종류의 이야기 같았다. 그날 저녁, 나는 도장을 나서다가 우연히 한지운이 머무는 여관 쪽으로 발걸음이 이어졌다. 굳이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그의 실체가 궁금해서였을까,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이었을까 하는 건 나조차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발걸음이라는 게 참 신기해서, 머리로는 딱히 정한 목적지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발은 이미 어딘가로 향하고 있을 때가 있는데, 그날이 딱 그런 날이었다. 골목을 두어 개 지나고 나서야 나는 이게 우연이 아니라는 걸 인정했다. 여관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창문 너머로 낡은 방 안 풍경을 얼핏 볼 수 있었는데, 그 안에는 술병 몇 개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여관 여주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그를 향해 뭐라고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창호지가 낡아서 불빛이 뭉개진 채로 새어 나왔는데, 그 흐릿한 노란빛 안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얽혔다가 풀렸다가 하는 게 마치 낡은 그림자놀이 같았다. "이번 달 방값은 또 언제 낼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 박은주 씨." 그 목소리가 창문 너머로 새어 나왔을 때, 나는 걸음을 멈춘 채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방금 들은 이름이 단순히 여관 여주인의 이름이라는 걸 알아채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는데, 그 순간 나는 이 사람이 정말로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압도적인 실력을 지녔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어째서 이런 초라한 방에서 방값조차 제때 내지 못하며 살고 있는 것인지, 그 괴리감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산맥 너머 소탕전을 혼자 해치우고 사흘 만에 돌아왔다는 사람이, 도적떼 소굴을 통째로 비워버렸다는 사람이, 정작 여관 방값 앞에서는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밖에 못 하고 있다니. 이 정도면 실력과 생활이 서로 완전히 다른 사람의 것인 양 따로 놀고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창문 안쪽에서 한지운이 문득 이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나는 그 순간 숨을 삼켰는데, 그가 나를 봤는지 못 봤는지 확신할 수 없는 채로, 그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스치는 걸 나는 분명히 보았다. 그 웃음이 무슨 의미인지, 나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박은주 씨의 잔소리를 웃어넘기려는 반사적인 표정인지, 나는 끝까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순간 내 등줄기를 타고 흐른 서늘한 감각만은 또렷하게 기억에 남았는데, 그건 마치 아무 준비도 없이 서 있는 나를 상대가 이미 다 파악하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을 때의 그 감각과 똑같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다. 뭔가를 확인하러 온 것 같았는데, 결국 확인한 건 아무것도 없었고, 오히려 궁금증만 하나 더 얹고 돌아가는 셈이 되었다. 골목을 되짚어 걸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저 사람은 대체 얼마나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중 어느 얼굴이 진짜인 걸까. 그날 밤 나는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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